같이 달려볼까요

날씬한 E에게 [달리기]

by 윌버와 샬롯
어머 자기야, 살 좀 찐 거 맞지?


오랜만에 만난 E가 보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동네에서 만나는 거였지만 나름 약속된 외출이라 평소보다 신경을 썼었다. 화장도 세심히 꼭꼭 눌러 바르고, 옷에 신경도 썼고, 머리는 고대기로 좀 힘도 주고 나왔다. 몇 개 없는 액세서리 중에 입은 옷과 어울리는 목걸이로 나름 심사숙고해 포인트도 줘봤다. 그런데 여보세요, 만나자마자 살이라뇨!


그랬다. 얼마 전에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긴 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대놓고 말하다니. 정말 그렇게 티가 나나. 풍성한 옷으로도 감춰지지 않았던가. 그래도 그대여, 아무리 친하다 해도 그러는 거 아니지 않아요?


태어나 처음 보는 낯선 몸무게 앞자리 숫자에 절망했었다. 체중계에 올라선 채로 시간이 멈춘 듯했다. 정말 울고 싶었다.

여태 내 몸에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마침 간헐적 단식이 붐이었다. 운동과 별개로 먹는 양은 평소와 같아도 음식 섭취 시간을 줄이는 방안이다. 이건 해볼 만하다 싶었다. 아침은 거르고 12시부터 식사를 시작해 적어도 저녁 8시까지만 먹는 8시간 룰을 지키고 있다. 간헐적 단식으로 충격적인 첫자리 숫자는 아슬아슬하게 사라졌다. 야식 군것질을 하지 않은 게 큰 이유이지 않나 싶다. 물론 운동도 하긴 했다. 3개월 정도 전신 스트레칭 위주의 운동이었는데 이상하게 살은 안 빠졌다. 몸을 쥐어짜 내는 3개월 간의 그 운동은 하는 동안 솔직히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을에는 다시 좋아하는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편히 걷는 것만으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지 의구심이 든다. 걷기보다 한 단계 진일보 하고 싶은 다이어터들에게 이 그림책은 어떨까.











헉헉. 책을 읽으면서 숨이 차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정지되어 있는 그림만으로도 이렇게나 속도감을 느낄 줄이야! 그림책 <달리기>는 쉼 없이 달리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 운동을 평소 즐겨하는 이들인지 그림책에선 살찐 사람 하나 안 보인다. 유일하게 색깔을 가지고 있는 아이를 따라가며 눈으로 달리기를 함께 해본다. 준비운동도 빠뜨리지 않고 여럿이서 함께 달린다. 달리고 달리지만 가는 길목마다 장애물이 보인다. 사람들이 멈칫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멈춰야만 할까. 그때 짠하고 치고 나가는 아이가 있다. 용감한 아이의 질주는 사람들을 다시 달리게 한다. 길을 터주고 나서 아이는 선두에서 멀어진다. 아이의 행동에서 현명한 리더의 모습이 엿보였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위기의 순간에서야 사람들을 독려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게 도와주는 사람, 그리고 다시 사람들이 자유롭게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뒤로 물러서있는 진정한 선구자적인 사람으로 느껴졌다. 열심히 달렸다면 결국 누가 1등을 했을까. 숨이 차도록 달려 도착한 곳에선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며 자조 섞인 유행어가 한때 떠돌기도 했지만 우리는 결국 그림책에서와 같은 삶을 원하는 게 아닐까. 나만 행복한 게 진짜 행복인 걸까. 손을 잡아 이끌어 모두가 1등인 세상은 그저 환상인 것뿐일까.


그림책 <달리기>를 보고 나도 달리고 싶어졌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보는 것. 걷는 것보다 다이어트에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비가 개고 날씨가 오래간만에 화창해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이 꽤 보인다. 구름은 뭉개 뭉개, 하늘은 참으로 파랗고, 바람은 살랑거리고, 햇살은 비타민 D를 완충해주고 있다. 엔도르핀이 마구 솟아나는 것만 같았다. 이 좋은 걸 혼자 할 순 없지. 살이 쪄 보인다고 친절하게 알려준 날씬한 E에게 그때는 잠시 섭섭했지만 오늘은 같이 뛰자고 전화해야겠다. 함께 한다는 것은 예기치 않은 대단한 결과를 낳기도 하니까. 날씬하든 살이 쪘든 같이 행복할 수도 있는 하나의 뜀박질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우리 함께 달려보자!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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