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이 있는 상가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책방 너머 유리창에서 기웃거리다 들어오셔서 “여기는 뭐 하는데요?” 묻기도 하셨다. 할머니 표정은 무뚝뚝했고 눈빛은 흔들렸다. 상가 복도를 계속 서성이는 모습이 평범치는 않아 보였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았다. 허공에 욕을 큰 소리로 해대는 통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쳐다볼 정도였다. ‘좀 이상한 분이다’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그 일로 할머니를 명확히 알게 됐다. ‘아픈 분이시구나’ 하고.
할머니 얘기에 남편이 말했다. “조심해. 책방에서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어.” 남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론 할머니를 보게 되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척했다. 의식하고 있지만 의식하지 않는 척. 그래도 가끔 할머니가 책방에 들어오시면 아무렇지 않게 보통 손님처럼 대했다. 속으로는 긴장이 됐지만. 그런 할머니가 책방 단골이 되셨다. 일주일에 세 번이나 책방에 오신다. 좋아해야 할는지 조금은 난감하기도 했다. 모두가 외면하는 분인데 나한테는 고객이라니.
할머니가 주변을 배회했던 이유는 근처 학교를 다니는 손녀를 보기 위해서였다. 상가를 서성였던 것도 학원 다니는 손녀를 기다리는 거였다. 아침 등굣길에서부터 하교 그리고 학원에서까지 할머니는 손녀를 보호해야 한다며 과도한 집착과 강박을 보인다. 피해망상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할머니는 어쩌면 그런 일상이 자기에게 남은 유일한 소명이라 여겼던지 손녀 주위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할머니 특이 행동으로 손녀를 포함해 주변 모두가 감정적으로 힘든 상태라는 것이다. 이미 할머니는 아이의 학교와 학원에서 여러 번 곤란함을 겪은 상황이었다.
할머니 개인 사정은 모르지만 그녀를 이렇게 떠돌며 방치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분명 남모를 속사정이야 있겠지만 어린 손녀가 아픈 할머니를 낮 동안 힘들게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할머니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것은 아닐까.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는다면 좋아질 수 있을 텐데.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오지랖이었을까. 고민하던 차에 혹시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 용기를 내 주민센터 복지과에 전화를 걸었다. 이런 아픈 분이 계신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주민센터 직원은 그분의 정확한 인적사항도 모르거니와 특별히 해를 끼친 행위를 한 상태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행정적인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여전하다. 동네를 아침부터 배회하고 손녀를 쫓아다닌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거짓말을 하며 해하려 하는 것 같다고 욕을 퍼붓는다. 그럼 나는 애써 웃으며 얘기한다. “할머니, 저한테 하는 얘기는 아니시지만 욕 들으면 저도 힘들어요.” 할머니는 그럼 또 말한다. “미안하오, 선생님. 속에서 그냥 말이 막 나와서 그라요.” 어느 날부턴가 난 할머니에 대한 태도를 조금 바꿨다. 더워지는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밖에서 돌아다니시는 것보단 잠시 시원한 책방에서 할머니가 쉬었다 가시는 게 더 낫겠다고. 적극적으로 할머니를 돕지는 못하더라도 응대는 선을 유지하며 하자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친절한 행동’이었다.
그해 겨울, 온 세상에 눈이 새하얗게 내렸어요.
우리는 모두 마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지요.
첫째 날, 마야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어요. 하지만 나는 마야를 보고 웃지 않았어요.
『친절한 행동』 화자인 ‘나’는 전학 온 마야에게 결국 친절함을 주지 않았다. 마야가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어 했던 여러 의도적인 행동에 어느 누구도 응답해 주지 않았다. 마야도 애써 용기 낸 행동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 아이가 어떤 아이였는지 그저 겉모습만으로 판단했다. 먼저 다가서지 못한다면 다가온 자에게 적어도 한번 정도는 기회를 줬다면 어땠을까. 화자인 ‘나’는 더 이상 마야에게서 그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마음에서 뭔가 슬픔이 남아있는 ‘나’는 다음번 다른 마야에게는 그러지 않을 것 같다. 돌멩이를 떨어뜨려 일었던 잔물결을 기억할 테니.
우리가 친절을 베풀 때마다
세상을 조금씩 더 나아지게 한단다.
노트북에 뭔가를 계속 쓰며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이 할머니에게는 좋게 보였나 보다. “선생님, 계속 일하소. 앞으로 일 절대 놓지 말고. 난 아무것도 안 해서 지금 바보가 다 됐소.” 그래서 그러셨던 걸까. 할머니는 뭐라도 손녀에게 더 가르치고 싶어 주변의 학원을 서성이고 책방의 그림책을 뒤적였을지 모른다. 얘기를 들어주고 걱정 어린 조언을 드리면 할머니는 “선생이 뭘 아오. 그런 말 하지 마소.” 정색을 하다가도,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고 말씀하실 때도 있다. 할머니는 책방에서도 편히 쉬는 게 아니라 왔다 갔다 학원에 들어간 손녀를 수시로 확인하러 드나드는데 그날도 한참을 나갔다 들어오셨다. 아래층 편의점에 다녀오셨는지 할머니 손에는 아이스컵 두 개와 커피 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커피를 나눠먹자며 할머니는 아이스컵 두 개를 사 오신 것이다. 커피를 이미 마셔서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할머니는 혼자 먹을 수 없다며 내게 내미셨다. 손녀가 또 그 사이 없어질까 봐 헐레벌떡 다시 나가시는 할머니. 얼음이 반쯤 차인 커피를 보며 난 마음이 좀 이상해졌다. 그저 얘기를 들어줬을 뿐인데 성치 않은 할머니가 이런 걸 나눠 주시다니. 어느 날은 책방 창밖을 내다보며 차도로 뛰어 들어가 죽고 싶다는 얘기를 해 그럼 손주가 뭘 배우겠냐고 그러시면 안 된다고 다독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의. 할머니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시는 것 같았다. 씩씩대며 들어오던 할머니. 가실 때는 그래도 “나, 가요.”하며 인사하고 나가신다. 그러면 또 난 안도의 숨을 내쉰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구나. 언젠가는 할머니가 원하신다면 그림책 한 권 읽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도 그리고 싶고 민요도 부르고 싶다고 하던 할머니.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이제라도 시작해 보시라고, 생각보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자식 걱정하기보단 이제는 스스로를 더 돌보시라고, 그림책으로 넌지시 얘기해 드리고 싶었다.
내 작은 선의가 세상을 크게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잠시의 쉼은 가능하지 않을까. 다음 주 월요일이 되면 할머니는 또 어김없이 책방에 오시겠지. 잠깐 더위를 식히며 할머니가 여기에서만큼은 조금은 평안하셨으면 좋겠다. 솔직히 난 여전히 그 시간 동안은 좀 긴장이 되겠지만, 그래도 서서히 이는 잔물결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기억해 보겠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