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

by 옥돌

주황색 니트에 꽂혀버렸다. 열다섯 무렵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엄마와 부산 서면 시장에 갔는데 이상하게 엄청나게 튀는 핑크색 패딩 점퍼에 꽂혀버렸다. 엄마는 너무 튄다고 반대했지만 내가 우기는 바람에 3만원을 주고 결국엔 샀다. 그리고 나는 그 점퍼를 학교에서 단체로 야외 체험 학습을 하는 날 입고 갔다. 정말 튀었다. 그 날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봐도 역시 튄다. 지금 입으라면 못 입을 것이다. (꽤나 촌스럽다) 하지만 그 점퍼는 꽤 인기가 있었다. 너 그거 어디서 샀냐고, 자기도 사고 싶다고 다른 반 애조차도 물었으니. 지금 내가 꽂힌 니트는 정확히 말하면 형광빛이 약간 도는 주황색 니트인데 그냥 주황색 니트라고 하겠다. 친절히 세일까지 하는 바람에 2만원이 안되는 가격이다. 거의 매일 검정색 남색, 회색 옷만 입고 다니는 내가 의외로 그 색깔이 어울린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미 얼굴에 대보았다. 그렇지만 나는 왜 선뜻 그 니트를 사지 못할까?


몇 달전, <버리고 비웠더니 행복이 찾아왔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류의 책을 읽고 '이렇게 살고 싶어!'라고 생각하던 참이다. 그런데 그 책에 나오는 데로 생활하려면 옷을 베이지색, 아이보리색, 남색, 검정색 정도로 단순하게 갖추어 두는 것이 맞다. <버리고 비웠더니 행복이 찾아왔다>의 저자 야마구치 세이코는 나처럼 주황색, 푸르고 청명한 파란색 같은 특이하지만 예쁜 색상에 끌려 여러가지 옷을 사버리는 버릇을 지적한다. 그녀 말대로 한다면 나는 무인양품 스타일의 옷만 사야 한다. 그렇게 옷을 사면 코디하기가 쉽고 어떻게 매치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요즘 나오는 단순함, 미니멀라이프를 전도하는 책들은 무인양품에서 사주를 받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의 대부분이 무인양품 스타일로 가구, 소품, 의류, 잡화 등등이 구성되어있다. 그 책대로 하려면 나는 주황색 니트를 사면 안 된다. 아이보리, 베이지, 회색, 남색, 검정색 중에서 브랜드 마크도 찍혀있지 않고 소재가 좋은 단순한 디자인의 니트를 사야 하는 게 맞다. 굳이 포인트를 주고 싶다면 양말로 주어야 한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스타일이라면 옷은 흰색 검정색 청바지 이외에는 다 버리고 그 옷이 떨어지기 전까지 사면 안 된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그의 옷장에 구비된 옷으로 추측하건데) 방금 요가원에서 집까지 뚜벅뚜벅 걸으며 생각했다.


'그 니트를 살까? 사면 이쁘지 않을까?'

'겨울이라 그런가 사람들이 죄다 검정색 코트 검정색 점퍼를 입었군.'

'온통 검정색, 남색, 회색 옷들을 입었어. 아무리 때가 타지 않는다지만 너무 우중충한 거 아니야?'

'이럴 때 밝은 색 니트, 포인트로 사는 거 괜찮지 않은 선택인 것 같은데'


주황색 니트를 사고픈 마음을 합리화하며 걸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나는 이제 그런 충동적인 마음을 컨트롤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또 나는 그 주황색 니트가 나와 어울릴 것이라는 것도 안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 입으면 괜찮을 거야.'

'이미 집에 있는 겨울용 회색 바지랑 입으면 썩 괜찮은 코디일지도.'

'아니 아니야 너무 튀나?'

'자그마치 형광빛이 도는 주황색이라고.'

'금방 싫증날 거야.'

'그렇지만 이쁘다.'


생각 속에서 또 다시 수많은 나와 말다툼을 한다. 매일 생각은 나도 미니멀라이프로 살고싶어! 하면서도, 미니멀라이프로 살고 있지 못하다.책에 나오는 미니멀라이프스타일로 살기에 우리집은 너무 뒤죽박죽이다. 책에 나오는 사진처럼 튼튼하고 필요하면서도 서로가 조화를 이루는 물품을 갖추자고 이미 있는 가구를 버리고 무인양품 스타일의 가구 및 의류로 싹 다 바꿀 수도 없다. 미니멀 라이프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행동이다. 가구와 미니멀라이프는 그렇다 치고, 나는 과연 그 니트를 사게 될까? 일주일 정도 지나봐야 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