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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 있는 Sep 11. 2020

백지영보다 더 백지영 같은 하루

히든싱어6. 정유미편

요즘 일주일을 기다리게 만드는 프로가 있다. 바로 히든싱어6. 히든싱어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와 그 가수의 목소리부터 창법까지 완벽하게 소화 가능한 ‘모창 도전자’의 노래 대결이 펼쳐지는 신개념 음악 프로그램1)이다. 시즌제로 진행하는 히든싱어는 가수의 대표곡을 라이브로 들으며 오랜만에 감상에 빠지게 한다. 또 무엇보다 원조 가수와 원조 가수보다 더 원조 가수 같은 모창 능력자를 가려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신이 예상하는 커튼에서 가수가 나오지 않으면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르거나 입이 딱 벌어진 채로 몇 초간 정지하거나 술렁이는 순간도 빅 재미를 선사한다.


처음에는 쉽게 맞출 거 같다. 하지만 밤낮으로 갈고 닦은 실력자들은 원조 가수보다 더 출중한 능력으로 판가름할 수 없게 만든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흥분하며 누구의 청각이 더 예민한지 듣기 테스트를 한다. 매번 원조 가수를 못 맞출 때가 많다. 사실 4라운드까지 순식간에 대결을 펼치다 보면 진짜 가수를 가리는 것보다 모창 도전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이 꼭 우승하기를 바라게 된다. 원조 가수를 흉내 내기 위해 음원을 무한 반복 재생하며 노래 안에서 살았을 시간이 가히 짐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가수의 목소리를 닮고자 노력한 그들이 노래하는 순간만큼은 가수보다 더 특별하게 들린다. 시즌 6는 모창 능력자들이 4회 연속 우승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모창 도전자들이 원조 가수를 뛰어넘었다.



  

4회 백지영 리매치 편, 정유미 참가자가 우승하는 장면은 특히 감동적이었다. “하루만이라도 백지영으로 살면 어떤 기분일까?” 그 마음으로 연습했다는 참가자는 2009년 그룹 빅퀸즈로 데뷔한 가수이다. 가수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결혼과 출산으로 꿈을 접었다. 가창력이 뛰어나고 진정성 있게 노래 부르던 그녀는 못다 이룬 꿈에 대해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노래하는 것이 잘못된 느낌을 받았다는 말에서 그녀를 전부 이해할 순 없어도 공감이 되었다. 온종일을 다 쏟아도 아이에게는 부족한 하루니까.


감히 추측해보건데 정유미는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백지영만큼 가수로) 성공적이지 못했던 과거로 인해 더 이상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시도하고 싶어도 아이가 발에 걸리고, 쉽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현실에 자포자기하는 심정도 들었을 거 같다. 엄마를 필요로하는 아이 앞에서 자신을 꾹꾹 누르고, 자신의 꿈을 강하게 도리질하며 얼마나 부정했을까. 아이가 있어서 행복하고, 또 아이가 있어서 가수의 꿈은 더 멀게 느껴지는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았을까. 자신과 백지영의 차이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했을 거다. 무대에 더 뛰어들 수 없는 과거의 자신으로서가 아니라 백지영으로서의 하루라면 자신이 바란 꿈이 가능할 거 같았을 것이다. 단 하루라도 백지영처럼 살겠다는 그녀는 결국 우승했다. 꿈을 이룬 현실에서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렸고, 예상하지 못한 우승에 목놓아 오열했다. 그녀가 했던 말,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어요.”


그녀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안다. 설마 했지만 바라고 바라던 우승에 예고 없이 터진 눈물. 백지영으로 하루라도 살고 싶었던, 오히려 더 백지영 같았던 하루에 그녀는 주저앉아버렸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백지영과 이제 곧 사라질 백지영 사이를 오가며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울고 또 울었다. 우승한 순간마저 아이가 생각나는 엄마의 마음. 연습하느라 아이에게 소홀했던 미안한 마음. 자신의 일상과 아이를 떼어놓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그녀는 정상에 오른 순간에도 아이가 보고 싶다고 했다. 눈물의 근원은 나였을까, 아이였을까, 아니면 아이를 키우는 나였을까. 아마도 백지영처럼 아이를 키우면서도 가수로 살아가는 백지영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 같다.


개그맨 박준형이 위로 깊은 말을 건넸다. “단 하루라도 정유미로 살고 싶습니다. 오늘 노래하는 목소리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박준형은 백지영인지 알고 계속 정유미를 찍었다는 것. 어쩌면 백지영과 똑같았어요,라는 말보다 목소리에 위로를 받았다는 말에 이보다 더 큰 찬사가 없었다. 백지영 같은 정유미가 아닌 정유미로서 능력이 충분했으니까. 그날만큼은 정유미가 주인공이었다. 백지영은 “단 하루라도 백지영으로 살고 싶게 해주고 싶다”며 들러리를 서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의 깊은 배려심은 빛을 발했다.


모창 능력자들은 충분한 실력이 있어도 대형 가수로 클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실력은 차이가 없다는 걸 증명했다. 가수 이상으로 그들의 역량은 뛰어나다. 우리는 원조라는 이름으로 진짜 가수와 모창 능력자를 가르려고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원조는 없다. 아무리 비슷할지라도, 속고 또 속일지라도 정유미는 정유미이다. 그동안의 갈고 닦은 훈련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전설 같은 하루이기를. 백지영보다 더 백지영이 아닌 꿈이 있고, 노력하고, 노래할 때 행복해하는 정유미가 정유미 같은 날이기를 응원한다.




JTBC히든싱어6, 백지영 편





1) 히든싱어 기본정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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