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나는 햇빛같은 존재인가

by HOON
나는 햇빛 같은 존재인가.
그렇다면,
누군가는 나의 존재 때문에
그림자를 맞고 있지는 않은가.

내 삶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공존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늦게나마 돌아보았다. 2016년 겨울, 열여섯 나이에 이스탄불에서 약 3주간 홀로 여행을 했었다. 또래 나이 친구들이 흔히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었다. 특별한 경험이었던 만큼 이스탄불이라는 공간에 대한 추억을 쌓았고, '혼자'라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나는 그 특별한 추억을 마음껏 자랑하지 못한다. 여행 중에도, 돌아온 후에도 몇 번을 돌이켜 곱씹어 보았지만, 앞으로도 그 여행을 나의 아름다운 기억이라고 떳떳이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나에게 가장 꿈을 꾸는 것 같던, 가장 밝았던 시간이 누군가에겐 가장 어둡고 쓸쓸한 시간이었다. 이스탄불 여행에서 나는 가장 환한 햇빛이었고 동시에 그림자였다.


모든 것이 낯선 처음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질 즈음이었다. 여행이 막바지에 이스탄불을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까워졌다. 이스탄불을 떠나는 전날, 그 날은 야경을 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석양이 지기 시작하자, 야경 명소로 불리는 언덕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비좁은 사람들 틈을 뚫고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가방끈을 붙잡았다. 급하게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어린아이가 새까만 눈동자를 들고 나를 바라본다. 아이는 한 손에 휴지 몇 개를 들고 “원달러 플리즈”라고 되뇌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마트에 가면 200원에 살 수 있는 휴지를 1달러에 사달라며 내밀고 있다. 터키인과는 사뭇 다른 생김새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스탄불에 오기 전부터 들었던, 시리아 난민의 이야기. 테러와 내전을 피해 도망치다 이곳까지 오게 된 수십만 명의 난민. 그들을 난생처음으로 책 앞이 아닌 눈앞에서 서로의 눈동자를 마주쳤다. 예상보다 많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귀로 듣기만 했던 난민을 처음 보았다는 당혹감과 동시에 곳곳에 흙이 묻은 옷을 입은 아이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야경을 보러 가는 나에게 여느 글과 신문에서 보았던 난민에 대한 연민은 크게 다가오지 못했다. 당혹감과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망설이던 나는 아이를 향해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는 곧 포기하곤 다른 여행자의 가방끈을 잡는다. 그렇게, 나는 야경을 보러 떠났다.


야경을 보고 난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에서 가까운 정류장에 내리자, 아기를 품에 안은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몸을 벽에 의지하듯이 기댄 채 행인들의 동전을 받고 있었다. 이 사람도 시리아에서 도망쳐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숙소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잊은 채 길 건너에서 몇 분 동안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숙소로 돌아갔고, 피곤한 하루라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조금 전 길 건너서 벽에 기댄 여인을 바라보던 아이의 주머니 속에는 동전이 짤랑대고 있었다. 아이의 손은 주머니 속 동전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아이는 짤랑거리는 동전 중 단 한 개도 그릇에 담지 못했다. 왜 길을 건너서 동전 하나를 그릇에 놓지 못했을까. 피곤한 하루라는 것이 이유였을까.


다음 날,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는 나의 가방끈을 잡는 아이가 없었다. 공항 앞 정류장 건너에도 벽에 기대앉아 동전을 받는 어머니는 없었다. 그것이 이제는 버스 안 아이에게 고개를 흔들기 전에 망설일 기회가, 주머니 속 동전을 만지작거릴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이스탄불을 떠났다.


후회된다.


그때, 버스 안에서 아이를 지나쳐 온 내가 후회된다. 아이에게서 휴지를 사지 않았던 것, 빵 하나 쥐여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에 아이를 바라보았던 나의 눈빛을 후회하고, 찰나의 순간에 마음속을 후벼 판 그 생각을 후회한다. 나는 존재만으로, 나의 눈빛, 고갯짓만으로도 그 아이에게 그림자였다. 어두운 밤, 길을 건너서 동전 하나 놓고 오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피곤한 하루가 나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했다면, 몇 분이나 멈춰서 바라보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발목을 잡은 생각은 묵살했으면서 발걸음을 움직이게 한 피곤한 하루라는 이유를 왜 당연하다는 듯 내뱉는가. 그런 나의 모습이 기억을 곱씹어 보았을 때 보이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이유에 조금만 더 의지했다면 하는 후회가 남는다. 나의 행동이 나에겐 햇빛 같던 순간을 주었겠지만, 누군가에겐 그림자 같은 순간을 드리운 뿌리가 되었다.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가방끈을 잡아챈 아이의 휴지를 1달러에 살 수 있을까. 길을 건너서 아기를 품에 안은 어머니 앞에 높인 그릇에 동전을 넣을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가장 어둡고 쓸쓸한 시간을 보낼 때에, 나의 모습이 티끌하나 비추어지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없다.


약 3주의 여행 중 가장 아름다웠던 야경을 보러 간 순간에 나는 그들의 그림자가 되었다. 열여섯의 가장 찬란한 순간, 내 삶에서 햇빛처럼 가장 밝게 빛나던 순간이 누군가에게 그림자로 드리웠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부끄러워하며 살아간다. 부끄러워하며, 나의 기억을 수 없이 복기한다.


내가 누군가의 그림자를 조금이나마 걷어낼 수 있을 때까지.


#17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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