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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Sep 01. 2024

애착관계의 비밀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를 통해 본 애착관계

  제대로 성숙해 독립하는 것 양육과 가르침의 궁극적 목적이다. 인류사라는 거대한 물결도 결국 양육과 가르침의 잔물결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가 홀로 성장해 독립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 기적을 위해 신은 애착관계를 두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부모와 애착관계를 맺음으로써 세상을 이해해 나간다. 


  그런데 전제조건이 있다. 제대로 성숙한 부모여야 한다. 성숙할 기회를 놓쳐버려 어른아이로 남은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는 독립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이 한 소녀의 눈을 통해 애착관계의 비밀을 보여준다.

  아내의 출산일이 다가오자 아빠는 딸을 먼 친척 집으로 보낸다. 소녀가 맡겨지던 날, 아름다운 풍광 속을 차로 달리면서도 아빠는 딸에게 말 한마디 건넬 줄 모른다. 모든 게 낯설어 쭈뼛대는 딸을 두고도 아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버린다. 소녀 옷가방과 함께. 아빠는 그렇게 무심하고 무책임하다.

   그 반대편에 킨셀라 부부가 있다. 그들은 덩그러니 남겨진 소녀를 세심하게 돌본다. 그러자 잊혀버린 장난감처럼 구석에 박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소녀의 자아가 눈을 뜬다. 그리고 낯선 세계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소녀는 뜨듯하고 축축한 느낌에 잠에서 깬다. 그리고 뭔가 지독히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긴장한 나머지 자다가 매트를 적신 것이다. 모든 게 끝났음을 직감하고 환불 처분만 기다리던 소녀는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된다. 느닷없이 아줌마가 습기 찬 방을 내준 자신을 탓한 것이다. 그렇게 소녀는 수치심으로부터 구원을 얻는다. 세탁한 메트에 한쪽 다리를 들려던 개만 공연히 야단을 맞는다. 


  다리가 길고 말수가 적은 소녀에게 킨셀라 아저씨는 우편물 가져오기 게임을 통해 다가간다. 그렇게 소녀는 집안일과 마을의 놀이, 행사에 참여하며 연대감을 경험한다.


  막내가 생겼다는 소식과 함께 소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낯설어져 버린 익숙함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소녀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아저씨 어깨너머를 보자 아빠가 보인다. 손에 지팡이를 들고 흔들림 없이 굳세게 다가온다. 나는 손을 놓으면 물에 빠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저씨를 꼭 붙든 채 아주머니가 목구멍 속으로 흐느끼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는 소리를 듣는다.'
 ...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아버지가 달라졌다. 

  본능적으로 딸에게서 위험한 향기를 맡은 것이다. 그것은 진짜 어른이 보여준 따뜻하고도 안전한 권위다. 위험하다고 느낀 아빠는 딸을 맡겨지기 전으로 돌려놓고자 한다.


  딸이 감기에 걸리게 했다며 킨셀라 부부를 탓하는가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딸을 다그친다. 그리고 킨셀라 부부에게 달려가 애도 의식을 치르는 딸을 노려본다.


  하지만 소녀도 이제 더 이상 처분만 기다리던 딸이 아니다. 비난과 강압의 상징인 지팡이를 들고 흔들림 없이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아버지에 소녀는 저항한다. 그리고 무언의 경고를 보낸다. 자신을 치유해 성장으로 이끈 진짜 어른들을 해치지 말라고. 그리고 더 이상 나는 그저 맡겨질 존재가 아닌 의지와 바람이 있는 인격체라고. 


  이렇게 성숙하지 못한 어른은 뜻밖의 일에 집착과 의지를 발휘해 아이를 곤란하게 만든다.  


  애착관계는 극성이 있다. 새로운 애착관계를 맺게 되면 기존에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을 밀어낸다. 새롭게 친해진 또래가 다가올 때 아이가 엄마 손을 슬쩍 놓는 것도 다 그이 유다. 불편한 감정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감정과 관계를 다루는 데 서툰 아이들은 애착경쟁을 더욱 혼란스러워한다. 여러 사람과 애착관계를 맺기 힘든 이유다. 소녀 역시 킨셀라 부부와 유대감을 느낄 때마다 묘한 감정을 느낀다. ‘난 아빠가 있는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부모와 애착관계가 단절될 경우 아이는 다른 대상과 애착관계를 맺을 수 있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킨셀라 부부는 맡겨진 소녀에게 훌륭한 양육자가 되어주었다. 시들어가던 식물 위로 햇살 한 조각이 소리 없이 내려앉자 서서히 고래를 드는 광경은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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