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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Sep 01. 2024

허삼관식 정의구현법

허삼관의 가정사 헤결 과정 다시 보기

“오늘부터 나 집안일 안 해! 당신하고 하소용도 한번이고 나하고 임분방도 한 번인데, 당신하고 하소용 사이에서는 일락이가 태어났지만 나하고 임분방 사이에서는 사락이가 안 나왔잖아. 당신이나 나나 모두 잘못을 저질렀지만, 당신 잘못이 더 크다구.”

  찜통더위에 고생한다며 옆자리 친구에게만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준다면 어떨까. 받을 권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을 거다. ‘같은 돈 내고 나도 땀 뻘뻘 흘리면 왔는데’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학생 격려하려던 좋은 의도가 갈등의 씨앗이 된 것이다. 수업 끝나고 강사 눈 마주치는 게 불편해질 수도 있다. 물론 친구와의 관계, 당일 기분, 주위에 누가 있는지 등 맥락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처럼 공정성 감지 촉수는 갈수록 예민해지는데 불편부당함을 담아두는 그릇은 작아지고 있다. 인간관계 갈등이나 사회적 갈등이 많아지는 이유다.




  한 때의 실수로 기울어졌던 허삼관 부부의 관계는 어처구니없는 사건 하나로 균형을 찾는다. 장남 출생의 비밀을 빌미로 갖은 위세를 부리며 어깃장을 놓던 허삼관이 고개 숙이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일이 벌어진 거다. 


  큰 아들이 자기 씨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가슴께가 늘 답답하던 허삼관은 소싯적 마음에 두었던 임분방 다리가 부러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는 한걸음에 달려간다. 


  작업반장의 도리라고는 하지만 뒤로는 내심 억울함을 풀 절호의 기회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병상 곁에 앉아 담소를 주고받으며 마사지를 해주다보니 잊혔던 감정이 되살아난다. 그러다 급기야 병상에 누운 환자에 올라 타버리고 만다.


  일찍이 매혈의 단맛을 봤던 허삼관은 팔뚝부터 걷었다. 그 대가로 큰돈을 쥐게 되자 특유의 자라대가리 기질이 나온다. 과한 선물을 임분방에게 보낸 것이다. 결국 그게 화근이 되어 치정사건도 들통 나고 만다. 


  허옥란 특유의 “아이야” 소리와 함께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그렇게 동네 창피를 당하긴 했지만 선물하고 남은 돈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속이 틀린 허옥란은 보란 듯이 세 아들과 자신이 겨울 날 옷을 해 입는다. 피는 내가 팔았는데 왜 내 것은 없냐는 허삼관의 볼멘소리에 부인은 쌈짓돈을 보태 남편 옷도 하나 장만해준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된다.


  그렇게 자기를 따르던 장남이 자기 피 한방울도 섞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허삼관은 늘 마음에 걸렸다. 그것도 과거 연적의 자식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자기 과오도 아닌 일로 부인과 마음의 짐을 나누어진다는 게 분하다.


  부인을 괄시하고 아들을 홀대해보기도 하지만 시원하질 않다. 어린 자식들에게 커서 하소용의 딸을 강간해버리라 인간 말종에 가까운 저주도 해보지만 개운치가 않다. 부인이 차려낸 요리조차 쥐어박고 싶어진다. 그런 체증이 임분방 사건으로 한방에 내려간 것이다. 




  치졸하고 야만적이지만 우리는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 돌려줘야 직성이 풀린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알려진 인류 최초 법전도 그 본성에서 나왔다. 물리적으로 동등한 결과의 공정성을 구현한 거다. 


  허삼관도 결국 받은 만큼 돌려주고 나서야 억울함이 풀린 것이다. 결과의 공정성을 실현한 것이다. 그러고도 그는 사락이가 안 생겼으니 내가 손해라는 매 버는 소리를 했다가 부인에게 두 볼을 쥐어뜯기고 난 후에야 정신을 차린다.


  속은 뒤집어졌을망정 남편 기에 평생 눌려 살아야 했을 허옥란으로서는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날처럼 세상이 각박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원수 척진 두 사람이 용병까지 앞세워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만신창이 되는 게 눈에는 눈으로 갚아 주고 끝내는 방식보다 나은 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러고 끝낸 허삼관 부부의 방식이 인간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가장 합리적이라고 하는 법정 다툼이 결국 안 생겨도 될 추가 피해만 만들고 공멸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사락이까지는 만들지 못했다고 볼멘 소리한 허삼관이 결과의 공정성 면에서는 손해일지 몰라도 ‘의도’의 공정성 면에서는 할 말이 없다. 결혼 전 미필적 고의로 썸남과 벌인 불장난이 가정을 건사한 사람 간에 본 재미와 의도 면에서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속은 어떨지 몰라도 이런 것 저런 것 감안해 보았을 때 서로 고개 끄덕이며 화해를 볼 여건은 마련이 된 것이다.




  흥미로운 건 과거 사람들이 공정에 대한 판단을 마을사람들에게 구했다는 점이다. 억울한 사람이 먼저 동네방네 사람들을 끌어 모은 뒤 바닥에 주저앉아 억울함을 쏟아낸다. 사건 전말을 들은 사람들은 누가 더 잘못했는지 판단하고 그 결과는 평판으로 남는다.


  이 평판은 생존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소설 도입부에 밥을 두 그릇도 못 먹고 헌혈도 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약혼자를 빼앗긴 남자의 경우처럼 말이다. 


사십년만에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피를 팔지 못한 것이다.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피를 팔아 해결했는데. 이제는 자기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니.......집에 또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허삼관은 울며너 가슴을 열어젖힌 채 길을 걸었다. 바람이 그의 얼굴로, 가슴으로 밀려 들었다. 흐릿한 눈물이 눈가에서 솟아올라 양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려 목으로,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그 사건 이후 허삼관 가족 간에는 전에 없던 연대감이 생긴다. 공감들이 모여 생긴 연대감은 허삼관 일가가 숱한 역경을 넘어 살아남는데 큰 힘을 발휘한다. 


  고난의 시절이 추억이 되고 등 다습게 먹고 살만해진 허삼관 앞에 추억의 장소가 등장한다. 급전 필요할 때마다 피를 뽑고 요기를 했던 승리반점이다. 


  철 들면 죽을 때가 된 게 남자라고 했던가. 불현 듯 돼지 간볶음과 따듯하게 데운 황주 두 냥이 떠오르자 허삼관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피를 팔기로 한다. 햇살 쏟아지는 창가에 앉아 요리를 즐기며 추억 더듬을 생각에 주름진 팔뚝을 내밀어 보지만 단번에 퇴짜를 맞는다. 그것도 이혈두가 아닌 새파란 심혈두에게 빈정 상하는 소리를 듣고서. 


  피조차 못 파는 신세가 되었다는 생각에 허삼관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길을 걷는다.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풀어 헤친 채.




  일 닥칠 때마다 그가 뽑아 팔아야 했던 피의 의미는 무엇일까. 살아남아 자기 흔적을 세상에 남기려는 이기적 본성이 그 안에 녹아 있다. 장구한 세월동안 응축돼온 그 본성을 법전의 조항들로는 녹일 수 없다. 결과나 과정 더 나아가 의도의 공정성까지 따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큰 일 닥칠 때마다 팔 걷어 피를 뽑다보니 이기적 본성이 희석되어 남의 자식까지 품게 되고 세부적인 이해관계를 벗어나 큰 틀에서 주고 받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한 허삼관식 정의 구현법을 눈여겨 볼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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