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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가 권력이 될 때

인간관계를 맺는 두 가지 방식

by 장동혁
여자의 피부는 권력이다


오래전 화제가 되었던 화장품 광고 카피다. 이 광고가 방송되자마자 반응이 뜨거웠다. 외모지상주의에 혀를 차는가 하면, 이제 알았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 짧은 문구 안에 인간관계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여자의 미모 앞에서 모든 게 무력해진다는 건, 단순히 외모지상주의를 찬양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는 강자와 약자,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으로 나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보여준다.


“더 사랑하면 을이 된다.”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인간관계를 맺는 두 가지 방식인 ‘순위 매기기’와 ‘관계 맺기’에서 비롯되었다. 이 용어는 1983년 정치심리학자 리안 아이슬러와 데이비드 로이가 사용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순위 매기기'는 내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를 따지는 방식으로, 더 높은 사회적 위치로 올라가고 싶은 우리의 타고난 성향이다. 높은 순위는 곧 영향력을 의미하며 사회에서는 권력으로 불린다. 예를 들어 모임에서 누군가 ETF 투자에 대해 전문적으로 설명한다면 다들 그를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새 그를 더 높은 순위로 올릴 것이다.


이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며, 경쟁적인 환경 속에서 강화된다. 끊임없이 상대를 평가하고, 나를 그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긴장이 따를 수밖에 없다.


반대로 '관계 맺기'는 순위와 상관없이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서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며 편안하게 대한다. 일을 마친 뒤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떠는 순간, 가족과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나누는 편안한 대화가 모두 관계 맺기 방식이다.


문제는 이 두 방식이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관계 맺기와 순위 매기기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단지 순위 매기기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친목 모임 중 누가 집 평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순위 매기기 방식이 작동한다. 다른 이들과 연결되기 위해 SNS를 시작하지만 좋아요 수를 확인하며 순위 매기기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더 사랑하는 사람이 왜 을이 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 안에서도 순위 매기기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즉, 남녀관계에서도 우리는 은연중에 상대와 나를 비교한다.


“이번 주 나는 세 번이나 연락했는데, 연락이 없네...” “아직도 메시지를 읽지 않았네...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내가 좀 더 잘해야 하나?”


이런 생각에 빠지게 되면서 자신을 상대보다 낮게 평가하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매력 없는 못난이가 돼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상대에게 더 잘 보이려 애쓰게 된다. 더 많이 꾸미고, 베풀고, 희생적이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내 위치는 낮아질 뿐이다.


그런 나를 상대는 쉽게 대하고, 나는 상대의 작은 호의에 감동하며 매달리게 된다. 결국 관계 균형은 무너지고 만다.


이런 상황에 우리는 관계 맺기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래, 내가 부족했어, 더 잘하면 좋아질 거야”라고 생각하며 더 노력한다. 하지만 순위 매기기가 작동 중인 관계에서 이런 노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오히려 상황은 악화될 뿐이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순위 매기기와 관계 맺기가 우리의 특성임을 인정해야 하다. 순위 매기기를 불편하게 여겨 부정해서는 문제를 풀 수가 없다. 오히려 순위 매기기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관계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봐야 한다. 혹시 상대를 과도하게 이상화하거나,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상대가 나를 소홀히 여긴다고 느낄 때 그 원인을 분석해봐야 한다. 정말 상대가 나에게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내가 자신을 너무 낮게 평가한 결과인지.


그런 뒤 무너져버린 내 경계를 복구해야 한다. 아마 상대 마음을 얻는데 애를 쓴 나머지 경계는 처참히 무너져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상대는 내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을 것이다. 그러도록 해서는 안 된다.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매력적이다. 만일 상대가 내 시간과 에너지를 마음대로 가져가도록 방치했다면 흐름을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노”라고 말하기다. 지위가 낮아지다 보면 왠지 나보다 높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분위기에 빠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당연하다는 듯 요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쉽게 얻어가다 제동이 걸리면 상대는 당신을 주목할 것이다.


순위 매기기의 덫에서 빠져나오기란 정말 쉽지 않다. 상대의 애정 어린 한마디에 굳은 결심이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여자의 미모는 권력이란 말도 거기서 나왔다.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 수밖에 없다. 동시에 권력과 순위를 추구하는 본능도 가졌다. 이 두 가지 속성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인간관계를 더 잘해나가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전략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삶과 사랑에서 중요한 건 균형이다. 상대를 향한 애정과 관심이 우리 중심이 되되, 자신의 위치와 경계를 잃지 않을 때만이 진정한 관계 맺기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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