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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특별함에 관하여

가족, 든든한 안식처로 거듭나기

by 장동혁


큰 성! 전화 끊지 마! 전화 끊지 마! 전화 끊지 마...
큰 성 생각나? 빨간 다리?
왜, 있잖아! 빨간색 철교...


뜻하지 않게 살인을 저지른 정호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몸 웅크린 채 형과 통화한다. 혹시라도 전화가 끊어질까 두려운 듯 울다 웃다를 반복하며 절박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석규 주연의 영화 <초록물고기>의 한 장면이다.


머릿속에는 어린 시절 형들과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던 기억이 스쳐 간다. 그때는 아무런 걱정도 없었다. 내 뒤에는 늘 든든한 형들이 있었고, 엄마 품으로만 돌아가면 어떤 걱정도 눈 녹 듯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범죄자가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형과의 통화는 과거와 자신을 잇는 마지막 끈처럼 느껴진다.


이 장면이 인상적인 이유는 가족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족은 때때로 부담스럽고 벗어나고 싶은 존재지만, 동시에 마지막 순간에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렇다면, 만약 형이 정호를 숨겨준다면 법적으로 처벌받을까? 놀랍게도, 아니다. 보통 범인을 숨기면 ‘범인 은닉죄’로 처벌받지만, 가족에게만큼은 예외다. 이는 가족이 단순히 혈연이 아니라, 운명을 함께 짊어진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가족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그 영향은 개인에만 머물지 않는다. 마치 도미노처럼 가족 전체가 흔들린다.


그런 이유로 가족만큼은 법과 도덕을 초월해 서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허용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이 서로를 지키고 보호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가족이란 이름 아래서 서로 신뢰를 잃고 외면하기 시작하면, 가족은 해체될 수밖에 없다. 가족은 ‘어떤 순간에도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속 가족은 어떤가?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할 가족이 때로는 가장 피하고 싶은 곳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돌아온 배우자에게 “그건 네 입장이고, 상대방 이야기도 들어봐야지.”라며 비판적으로 대하는가 하면, 기대에 못 미친 성적을 들고 온 아이에게 “너보다 잘하는 애들은 어떻게 해서 그 점수를 받았을까?”라며 냉소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서로를 지키고 보호해줘야 할 가족이, 오히려 세상의 메마른 잣대를 들이대며 평가하고 비교하는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족 간 신뢰가 사라질 때 그 파장은 가족 구성원에게만 미치지 않는다. 그 영향은 사회까지 번진다. 실제로 가족 간 불신이 깊어질수록 가족 해체도 가속화된다. 경제 위기나 사회 불안이 심해질수록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족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적어도 가족만큼은 나를 사회적 시선으로 판단하지 않고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비교하고 판단하는 태도를 멈추는 것이다. 가족이 힘들어할 때, “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래?” “다 네가 자초한 거 아냐?”가 아니라, “많이 힘들었겠다.”라고 말하며 위로해 주는 것.


이 작은 변화만으로도 가족의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신뢰가 하루아침에 쌓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가족만큼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거야”라는 믿음이 싹트기 시작할 때 가족은 다시 특별한 의미를 갖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영화 속 막둥이가 절박한 순간 가족을 찾듯, 우리 가족도 과연 그럴까? 생각해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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