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막측(神妙莫測)한 불균형

관계의 기원

by 장동혁
무(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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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무한의 밀도와 온도 그리고 격렬함이 응축된 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이어 마술사의 심오한 동작에 화려한 꽃다발이 튀어나오듯, 점에서 세계가 펼쳐진다.


空(공)


10-43초.

프랭크 시간이라 불리는 찰나의 순간, 우주를 이루는 법칙들이 풀려난다.

먼저, 지금 이 순간 당신이 경험하고 있는 중력이 퍼져 나온다. 이어 강한 핵력이 원자핵을 묶고 약한 핵력이 사방으로 흩어지려는 원소를 붙들어 맨다.


관계의 시작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때 음성이 등장한다.


빛이 있으라!

명령에 따라 빛이 탄생했고, 광채를 타고 전자기력이 퍼진다. 그리고 이 힘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분자들을 고정한다.

이어서 강력한 에너지가 빛을 입자와 반입자 쌍으로 쪼갠다. 이렇게 해서 우주 안에 물질세계의 씨앗이 태동한다.


하지만 영원하고 불변하는 신의 속성을 가진 입자와 반입자는 공(空)의 세계에 집착한다. 서로 반응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순식간에 소멸해 버리는 파멸의 춤을 추었다. 접촉하자마자 에너지를 분출하며 사라지고 마는, 그러니까 플러스-마이너스 = 0이 되는 공(空)의 상태를 끝없이 반복한 것이다.


만약 우주가 이처럼 쌍소멸 상태로 팽창했다면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이 문장도, 질량을 가지고 빛에 감응하는 당신의 시신경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눈부신 광휘와 영광의 무게가 존재하는 신의 세계만이 존재할 것이다.


색(嗇)

사랑의 의지인 신은 거기에 신묘막측한 불균형을 심는다. 반입자 10억 개 만들어질 때 그보다 한 개 더 많은 입자를 심어둔 것이다. 영원성과 대칭성을 스스로 부정한 이 기적이 당신을 우주라는 캔버스에 하나의 픽셀로 존재하게 만들었다.


설국의 주인공이 감탄하며 바라본 은하수도, 사업자금을 탕진한 조르바가 대낮에 춤판을 벌이던 크레타 해변도 다 10억 더하기 하나가 빚어낸 은총인 것이다.


눈앞의 이익 앞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쌍소멸 관계가 만연한 시대, 그나마 세상에 온기가 남아 있는 건 누군가 관계에 더하기 일을 해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를 변화하게 하고 성장하도록 만드는 사랑도 완벽함을 넘어선 작은 불균형에서 나오는 산물일지도 모른다.


*신묘막측(神妙莫測): 엄위하고 기이하며, 비상하여 감히 헤아릴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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