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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무게의 비밀

관계 무게 줄이기

by 장동혁
삶이 가벼울수록 관계는 왜 무거워질까?

삶이 참을 수 없이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자 사람을 찾는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관계는 어느새 견딜 수 없이 무거운 짐이 되어 있다. 관계와 자유 사이 딜레마다.


숲 속 오두막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 얀에게, 어느 날 물에 흠뻑 젖은 곤들매기가 찾아온다.


안녕, 나는 카와카마스라고 해!


얀은 그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했고, 버섯이 많이 나는 숲과 맛있는 잼 만들어 보존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에 카와카마스도 물속에서 즐겁게 헤엄치는 법과 플랑크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알려준다.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된다.


문제는 카와카마스가 방문할 때마다 뭔가를 빌려가서는 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금과 버터에서 시작하더니 사모바르까지 빌려간다. 그리고는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친구가 궁금해진 얀은 그를 찾아 강가로 나선다. 그런데 이번엔 소금과 홍차다. 이쯤 되니 보는 내가 다 초조하다. 하지만 얀은 흔쾌히 빌려줄 걸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심지어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했는데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초원의 비탈을 오르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나의 마음은 말로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어떤 행복감으로 박차 올랐다 — 얀 이야기 중에서




“얀은 손해만 보는 거 아닌가?”

“저런 친구는 당장 끊고 차단해야지!.”

이런 생각이 들 무렵, 작가가 말한다.


만약 그대가 카와카마스는 늘 빌리기만 하고, 게다가 갚을 줄 몰라 교활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그대가 조금 지쳐 있다는 증거다


당혹스럽다. 그래도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찰나, 작가는 처방까지 내린다.


당신은 지쳐 있으니 학교나 회사를 쉬고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니 있을 것. 혹은 카와카마스가 사기꾼이라 여겨지면 상태가 심각한 것이니 하루 쉬는 걸로는 안 되고, 가방 속에 칫솔 하나 달랑 넣고 회사에 사직서를 내던지고 어딘가로 떠날 것


순간 멍해진다. 카와카마스를 비난한 내가 문제란다. 그것도 치유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하단다. 그의 생각을 나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우리는 ‘얀은 손해만 본다’고 생각할까?

자, 이제 강물에 달빛이 빛나고 솔체꽃이 흐드러지게 핀 숲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숲 속 친구들은 관계를 통해 필요한 것들을 주고받는다. 카와카마스는 당장 필요한 것을, 그리고 얀은 내면의 성장에 필요한 것을. 그런 그들 사이엔 아무런 문제도, 불평도 없다. 공연히 지켜보는 우리만 난리다. 얀이 아무리 '나는 행복합니다'를 흥얼거려도 그럴 리 없다며 믿지 않는다.


얀은 친구와의 관계를 손해와 이익의 관점으로 보지 않았다. 자신이 준 것보다 더 큰 것들을 얻는다. 이처럼 주고받음의 셈법에서 자유로워질 때 관계는 우리에게 내면의 평화와 성장의 기회를 준다.

대표적인 게 육아다. 아이를 돌보며 부모는 아무런 보상도 기대하지 않는다. 자기희생이나 순교로 보지도 않는다. 누군가 그랬다. 부모란 눈앞에서 해맑게 웃으며 응가하는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존재라고.


아이가 자라며 부모도 기적처럼 상장한다. 결핍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색해진 자아가 확장되며 상대를 살피고 배려하는 성숙한 자아로 거듭난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친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를 보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희생으로만 여겨 보상만을 기대한다면? 그럴 땐 성장이 멈추고 관계는 말할 수 없이 무거워진다. 그런데 아쉽게도 많은 이 성장의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 같다.

그 결과, 관계를 크기가 정해진 파이로만 여기게 된다. 상대가 더 가지면 내 것이 줄어드는. 그러니 조금이라도 손해 보면 서운하고 억울해하다 관계는 무거워진다. 모든 게 연결되어 있어 "주변이 잘돼야 나도 잘된다"는 관계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 채 우리는 관계를 불필요하게 무겁게 만든다.




이제 무거워진 관계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보자.


먼저 손익계산서 벗어나 보자. 최소한 소중한 관계에서 만이라도. 주고받음의 균형에 집착할수록 예민해지고 관계는 피곤해진다. 그럴 땐 무기력해 내 도움이 필요한 존재를 돌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반려견이든, 식물이든, 연약한 사람이든.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주는 경험이 성장점이 된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그럼에도 부담스럽다면 잠시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저자 말대로 가방에 칫솔 하나 넣고 즉흥적인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혹시 지금 관계가 무겁게 느껴진다면, 주고받음의 저울에 너무 예민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관계는 무게가 없다. 그 자체로 투명하고 아무 의도도 없다. 하지만 결코 "손해 보지 않겠다"는 성마른 태도로 관계를 바라볼 때 관계는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내가 얀을 걱정했던 것처럼 말이다.


한 번 조건 없이 베풀어보자. 그 순간 참을 수 없이 가볍던 존재감은 회복되고, 한없이 무거워진 관계가 점차 가벼워지는 걸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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