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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버의 사람들

소통의 회복이 필요한 시대

by 장동혁
“나야”
-<내가 전화를 거는 곳> 중, 레이먼드 카버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던 남자가 외출을 허락받고 전화 부스로 향한다. 흥분하여 다이얼에 검지를 걸어 돌리려던 순간, 남자가 멈칫한다. 새 애인에게 전화를 걸려다, 한 때 자기를 위해 양파를 썰고 토마토소스를 볶았을 아내가 불쑥 떠오른 것이다. 결국 망설임 끝에 꺼낸 첫마디가 “나야”다.


이 짧은 말에는 온갖 감정이 묻어 있다. 미안함과 후회, 그리고 밀려오는 그리움. 그렇다면, 잊을 만하니 나타나 속을 뒤집어 놓은 남자의 이 말에 여자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니야" 긴 시간의 간격을 넘어 다가갈 때 꺼내기 유용한 말이긴 하다.


우리 역시 그런 순간들을 경험한다. 연락하겠다고 수십 번 다짐하다가도 망설이다 포기하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첫마디를 건넸을 때. 하지만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 돌아올 때. 우리는 당황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상대방도 같은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가 소파에 앉아 책을 집어드는 광경을 지켜봤다. 그는 늘 보던 페이지를 펼쳤다. 그러나 곧 그는 책을 내려놓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녀는 그의 머리가 소파 팔걸이에 놓인 베개로 내려가는 모습을 봤다. 그는 머리 뒤로 베개를 받친 뒤, 두 손으로 목을 괴었다. 그렇게 그는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팔이 몸 옆으로 내려가는 걸 그녀는 봤다.
- <보존> 중, 레이먼드 카버 -


<보존>은 한 여름에 고장 나버린 냉장고 앞에서 부부가 겪는 기묘한 갈등을 그린다. 하필 제일 더운 날 멈춰버린 냉장고, 그리고 그걸 들어내고 보란 듯 새것 하나 놓아주지 못하는 남자는 초라하다. 그래서 그 남자는 그 냥 ‘맨발’로 불린다.


녹아버린 고기를 구워 대며 무언의 시위를 벌이는 아내 앞에서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결국 남자가 돌아간 곳은 소파다. 주요 기능을 상실해 위축된 남자를 받아줄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백 허그로 어색해진 분위기를 돌려놓는 것도 제 구실 할 때 이야기다. 소파 양 끝으로 드러난 초라한 정수리와 발끝이 그의 전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은 어떤 감정이 스쳤을까?
이런 상황에서 남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온종일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 아내 귀가 시간에 맞춰 커피를 데워놓는 일이 그의 유일한 일이다. 하지만 피곤에 절어 돌아온 아내에게 그 커피 향은 과연 위로가 될까? 아니면 또 다른 짜증을 유발할까? 이런 상황에서 소통은 엇나가기 일쑤다.


사람들은 잠잘 때마다 모두 꿈을 꿔. 꿈을 안 꾸면 돌아버려. 그런데 나는 꿈이랍시고 꾸는 게 비타민뿐이란 말이야. 내가 무슨 얘길 하는지 모르겠어?” 그녀의 시선이 내게 고정됐다. “알 듯 말 듯하네.” 내가 대답했다.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 <비타민> 중, 레이먼드 카버 -


비타민 영업에 지친 아내의 짜증에 남편은 “알 듯 말 듯하네”라며 얼버무린다. 위로가 절실한 순간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남편에 복장 터질 아내도 이해가지만, 답을 정해놓고 몰아붙이는 아내의 채근에 길을 잃은 남편의 심정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심지 없는 대답이 주는 공허함과 무력감, 그리고 서로의 마음이 엇갈리는 모습은 우리의 소통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는 종종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지만 보이지 않아 막막해 한다. 그리고 끝내 답을 찾지 못해, 상대방의 마음과 엇갈린 채 대화를 끝낸다.


도회지를 벗어나며 펼친 남편의 교외 예찬론은 부인의 “깡촌이네” 한마디에 정리되고, 일면식도 없는 맹인 불청객과의 따분함을 풀어보고자 켠 티브이에서는 하필 따분하기 짝이 없는 성당 관련 다큐멘터리가 나온다. 이렇듯 예기치 않은 상황이 우릴 더욱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카버는 이런 소통 부재와 단절 속에서 작은 희망을 제안한다. 아들의 사고로 고통받는 고객에게 롤빵을 구워 전하거나, 맹인과 함께 손을 맞잡고 대성당을 그리는 것과 같은 행동을. 작고 사소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서로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종종 서로의 간격을 크고 대단한 것으로 메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카버는 말한다. “작지만 괜찮은 것(A small, good thing)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중요한 건 떴다고 하나 보지 못하는 "눈"을 감는 것, 분명하다고 믿지만 내가 만든 이야기에 불과한 "확신"을 내려놓고 상대에게 나를 맡겨보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를 믿고 그 사람 손위에 내 손을 얹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담론이나 완벽한 해결책이 아닐지도 모른다. 작지만 괜찮은 것. 그리고 그 순간을 나누는 것. 카버는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감았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럼 계속 눈은 감고.” 그가 말했다. “이제 멈추지 말고 그려.” 그는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했다. 내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들이 내 손가락을 타고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이제 된 것 같은데. 해낸 것 같아.” 그는 말했다. - <대성당> 중, 레이먼드 카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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