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고민 끝에 김대리는 카톡방을 나가기로 결심한다. 신경 쓰이는 게 싫고, 즐거움을 나누며 힘을 얻던 곳이 이제는 에너지를 소진하는 곳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다. 그리고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나 싶기도 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나가게 된 이유를 에둘러 남기고 나가기 버튼을 눌렀다. 나가고 나면 후련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왠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갈등 상황에 우리가 흔히 쓰는 대처법이다. 이 외에도 강하게 쏘아붙여 상대가 꼼짝 못 하게 만들기, 한 수 접고 사과하기 등이 있다. 흔히 처세술이라고 부르는 갈등 대처 스타일은 술자리에도 곧잘 오르내린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갈등이 발생하면 누구가 해결 방법을 찾기 마련이다.
그런데 갈등 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 기준에 의해 움직인다. 나와 상대 중 누가 더 중요한가. 그리로 대안이 있는가이다. 위협을 감지한 순간 우리 뇌는 그걸 계산하느라 분주해진다. 상대가 중요하지 않고 대안이 많을수록 우리는 강하게 나간다. 반대로 상대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면, 게다가 취업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면? 복종하는 게 최선이다. 괜히 기분 따라 행동했다간 후회막급이 될 수도 있다.
이 두 개의 축을 기준으로 여섯 가지 대처방법이 나온다.
도피
상대방 제거와 함께 오랜 기간 애용되었고 가장 익숙한 방법이기도 하다. 대립하는 게 두렵거나 신경 쓰이는 게 싫어 갈등을 피하는 거다. 톡방을 나온 김대리의 행동이 일종의 도피다. 도피는 갈등상황을 쉽게 모면할 수 있어 위험이 적고 패배자가 없다는 점이 장점이다. 하지만 갈등이 해결된 게 아니고 유예된 것뿐이므로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갈등을 직면하고 해결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사라지므로 발전이 없다는 단점도 있다.
상대방 제거
원시 수렵사회부터 애용되던 방법으로 잠재적 경쟁자인 상대방을 없애 버리는 거다. 김대리의 행동은 제거이기도 하다. 상대만 없어지면 다시 행복해질 거란 환상에서 나온다. 상대를 제거함으로써 승리자가 되고 갈등은 종료되지만 상대와의 관계로부터 얻던 좋은 것들을 얻지 못하게 된다.
정복
상대방을 완전히 제거하기보다는 정복하여 복종케 함으로써 자기 뜻대로 다루는 거다. 원시수렵 사회와 달리 농경사회가 되면서 일손이 더욱 필요해졌다. 그런데 갈등 상대를 제거만 하다 보니 일손 부족으로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다. 이에 상대를 제거하기보다는 굴복시켜 노예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방법의 경우 갈등은 사라지지만 일방적인 승리만 있을 뿐이다.
제삼자 위임
갈등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어 갈등을 반드시 해결해야만 할 때 쓰는 방법이다. 갈등 상황과 무관하고 보다 높은 위치에서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제삼자에게 갈등 해결을 위임하는 거다. 이해관계가 없는 제삼자가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고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 하지만 갈등 당사자가 자발적이면서 자율적으로 해결에 나서기보다는 제삼자 가 이끄는 절차 안에서 움직여야만 한다. 도출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타협
제삼자 위임의 결과가 못마땅하거나 갈등당사자 간 어느 정도 뜻이 맞을 때 가능하다. 파이를 양분하여 나누어 갖는 것이다. 기계적 평등을 이룰 수 있지만 파이를 키우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합의가 부분적 손실이 되기도 한다.
합의
상대로부터 도망치거나 제거해 온 역사에 비해 서로 합의를 이룬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강력한 본능을 거슬러 이성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율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공통의식이 필요하다. 합의는 양측 입장이 모두 정당하지만 서로 이해가 상충할 때 그리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원할 때 이루어진다. 즉 나와 너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 가능하다.
모든 문제에는 해결 방법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다. 물리적 파이는 정해져 있지만 심리적 파이는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 끈을 놓지 않은 채 자기 쪽으로 당기려고만 할 때 그 방법들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잘 훈련된 갈등 조정전문가가 양측 입장을 충분히 들어 적대감을 낮춘 뒤 그 방법을 찾아나가게 된다. 패배자가 없고 서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하지만 해결과정이 길다는 단점이 있다.
갈등 상황에서 우리가 쉽게 선택하는 '굴복'이나 '강요', '도피'는 갈등을 종결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그 한계도 명확하다.
굴복은 대개 갈등 상대가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 자기 보가 강하다고 느낄 때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굴복하는 사람은 상대방이나 주변 사람들의 평가와 해석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나의 굴복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평화를 위한 자발적인 행동으로 볼까? 상대를 배려한 현명한 행동으로 볼까? 약하거나 비굴하게 보지는 않을까? 도덕적 우위를 과시하려는 오만으로 보지 않을까? 등.
이런 이유로 굴복은 갈등상황을 일단락 짓는 데 의미가 있지만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자아상이나 상대방과의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문제와 위험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강요 또한 마찬가지다. 당장의 승리를 가져다주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상대가 강요로 인한 분노, 적개심, 보복심 등을 가질 수 있어 잠재적 갈등요인은 남는다. 도피 역시 관계 단절이라고 하는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없다.
바람직한 갈등 대처법은 힘의 논리로 설명되는 본능의 영역에서 벗어나 상호 합의에 의해 갈등 해결에 나서는 것이다. 하진만 훈련 없이 그 방법을 택하기는 쉽지 않다. 두려움이나 열등감, 분쟁으로 인해 상대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 등이 걸림돌이 된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갈등 대처 스타일이 있다. 가정환경을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강력한 흡인력을 가져 거기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바람직한 갈등 대처법은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 갈등 상황을 분석해 보고 그에 맞는 대처법을 선택하되 가급적 서로 원하는 것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윈-윈의 방법으로 나가는 거다. 그러기 위해 우선 필요한 건 자신만의 갈등 대처 스타일을 제대로 이해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