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는 지방 출장 중 찍은 풍경을 모임 카톡 방에 올렸다가 낭패를 당했다. 한 회원이 왜 사적인 걸 공적 대화의 장에 올리냐며 핀잔을 주었기 때문이다. 좋은 마음에 올렸다가 뜻밖의 반응에 속이 상했다. 그게 그렇게 공개망신까지 줄 일인가 생각하니 화도 치밀었다.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바로 반박할 걸 그랬나 후회도 되었다. 혹시 평소 나에게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겪는 갈등의 모습이다.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별 게 아닐지 몰라도 당사자는 며칠 동안 맘고생 할 수도 있다.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은 왜 벌어지고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우리가 겪는 갈등은 생물학과 사회심리학 측면에서 생존 이슈와 관련이 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의 제1 정체성은 "생명체"다. 살아서 존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살아간다. 생명체가 생명을 잃으면 비생명체, 그냥 물체가 된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광물체로 변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 생명체들은 치열하게 살아간다.
특히 이동하는 습성을 가진 동물들의 경우 생명을 보존하려면 안전망이 필요하다. 그 영역이 침범당하면 불안해지고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 반응은 매우 단순하다. 위협을 주는 대상을 공격하거나(fight) 그게 불가능하면 그 대상을 피해 달아난다(fly).
인간도 다르지 않다. 이 걸 얼마나 잘 실천하느냐에 따라 위기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는가가 결정되었다. 이걸 잘했던 인간들이 살아남았고 그 유전적 특성을 우리가 전해 받았다.
문제는 인류가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가 사라지고 불과 지붕에 의존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과거 생존에 유용하고 바람직하던 것이 이성적으로 해결하는데 걸림돌이 돼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신체적 생존보다는 사회적 생존이 더 중요해졌다. 손 한번 잘못 놀렸다가는 금융치료(피해보상) 받기 십상이고, 부장님의 스트레스를 피해 멀리 달아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복잡한 체계 안에서 장기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오랜 세월 몸에 베인 그 본능은 잘못된 반사작용(wrong reflex)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안에 새겨진 유전적 특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위협이라고 느낄 때 우리는 여전히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보고 둘 중 누군가는 이기고 나머지는 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갈등상황에 놓이면 관계에서 도망치려 하거나 그게 불가능하면 힘을 이용해서라도 제압하려 든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 방법이 좀 더 세련되어졌다는 점이다. 돌도끼를 휘두르는 대신 뒤에서 조용히 소장을 쓰거나 상대팀 예산을 삭감하는 방법으로 또는 계곡으로 줄행랑 치는 대신 전화를 받지 않거나 회의를 참석하지 않는 식으로 말이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의 자기영역이란 것이 덜 지리적이고 더 추상적으로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먹잇감이나 번식 기회라는 분명한 영역을 가진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의 영역은 복잡하면서 모호하다. 그러다 보니 영역 침범 사실에 대한 오해나 다툼이 자주 일어난다.
모임 카톡방에 등장한 사진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영역 침범 또는 위반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돌멩이를 던졌다. 생존에 위협을 느낀 김대리는 과연 어떻게 대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