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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Jul 16. 2023

module 3: 관계의 색깔

평화 유지를 위한 전략

"행복한 표정을 지어야 행복해질 수 있단다"

- 찰스부코스키의 <호밀빵 햄 샌드위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형형한 반항아 치나스키에게 그의 어머니가 던진 교훈이다. 정글과도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CS(customer swervice) 교육인 셈이다. 나 역시 이런 류의 잔소리를 듣고 자랐다. 아니 여전히 듣고 있다. "그렇게 재채기를 크게 하면 남들이 놀라잖아" '하품할 때 소리 내면 나이 들어 보인다" "종업원 귀찮게 하지 말고 주는 대로 먹어라" 등 등.


 다양하게 해석되겠지만 한 마디로 남 불쾌하게 하지 말란 말이다. 왜 그래야만 할까. 그게 평화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니까. 욕구를 드러내는 것보다 상대를 의식해 감출 때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모든 동물들은 환경이 보내는 신호를 해석해 그 결과에 따라 반응한다. 그러니 괜히 상대가 '불안'이나 '주의 및 경계'로 해석할 만한 신호를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렇게 상대를 의식해 맞춰주기만 하다 보면 그만큼 나에게 집중하기 힘들어진다. 그런 행위에는 에너지가 투입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을 의식해 우호적으로 행동하는 건, 평화가 깨져 갈등으로 가는 것보다는 에너지 관리 면에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관계가 좋을 때는 없던 에너지도 생기지만 갈등에 돌입하면 적대적 대립으로 인해 에너지 소모가 급증한다. 그렇다고 볼 때 남이 불편해할 만한 행동을 억제하거나 미소를 짓고 스몰토크를 만들어 내놓는 건 일종의 평화 유지비용인 셈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비용이 들어 보유한 에너지 총량을 넘어설 때다. 감정 노동을 하는 서비스직종 근로자가 그렇다. 갑을관계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등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쪽이 에너지를 과도하게 쓰는 경우가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서 요조가 그렇다. 그는 상대 심기가 불편해질까 봐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한다. 이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당신은 어떤가. 타인을 많이 의식하는 편인가. 아니면 마이웨이인가. 부드럽게 보이려 노력하는가 아니면 얕잡아 보이지 않도록 강하게 나가는 편인가. 상대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디폴트 값이 있다. 나는 되도록 좋은 인상을 주려 애쓰는 편이다.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가 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관계를 평화롭게 유지하는 비용은 어디까지 지출하는 게 적절할까. 한없이 배려하면야 좋겠지만 가용한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대개는 자라며 습득한 대로 또는 직감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에 대한 전략을 세워보는 것도 좋다. 그러기 위해 먼저 관계 상태를 이해해야 한다.

 



 관계에는 세 가지 상태가 있다.


 먼저 조화(Harmony)다. 이상적인 상태로 색으로 치면 파란색이다. 사교모임을 떠올려보면 된다. 다들 미소 일색에 상대에 맞추려 애를 쓴다. 이게 조화다. 누군가가 "저기... 그 옆에 치즈 좀 주실래요?"라고 하는데 인상을 쓰거나 주먹을 움켜쥐는 사람이 있겠는가. 마치 오랜 시간 합을 맞춘 댄서들처럼 액션과 리액션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묵뚝뚝한 사람도 그때만큼은 안면근육을 쓴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도 않는다. 자기 욕구를 억제하고 타인을 용인하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런 까닭에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본색이 드러나게 된다.


 다음은 평화(peace)다. 무채색이다.

 그런데 우리는 평화를 너무 환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홀리한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 보고, 그 위로는 월계수 잎을 입에 문 비둘기가 날갯짓하는 이미지랄까. 그건 평화가 아니라 거룩이다. 평화는 그저 폭력 없이 소통하는 거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관계다. 에너지 소모가 가장 적다.


 마지막으로 불화 또는 갈등(Conflict)이다. 빨간색이 되겠다. 서로 뿜어대는 파괴적 에너지로 관계가 타오른다. 긴장이 되고 불편하다. 스트레스가 생기고 적개심도 올라온다. 욕구 해결을 위해 폭력이 동원되기도 한다. 폭력이 무엇인가. 불법한 방법으로 행사되는 물리적 강제력이다. 여기에 언어적, 정신적, 정서적 폭력도 추가된다. 험악한 표정이나 지위, 냉랭한 분위기를 이용해 상대가 원치 않는 걸 하도록 만드는 거다.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폭력도 있다. 나도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마치 안개(Fog)가 몰려오듯 두려움(fear)이나 책임감(obligation), 죄책감(guilty)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바라는 걸 들어주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거다. 상대는 협박이라 하지 않지만 그건 분명 협박이다. 당하고 나서야 또 당했음을 깨닫는다.




 조화나 평화로 시작한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색깔이 변한다. 사랑이 변하니? 변한다! 상대에 대한 관심이 줄면서 에너지를 긴축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부정적인 상호작용이 는다.


 우리가 지양해야 할 관계는 당연히 평화다. 따라서 평화를 위해 신경을 쓰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평화가 깨지는 걸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관계에 너무 신경 쓰느라 자기에 집중하기 힘들어진다. 이른 나이에 '희생'과 같은 가치를 주입할 때 생기는 문제이다. 무조건 배려하고 희생하는 게 선이라는 그릇된 신념을 갖게된다. 그 결과 늘 자기 자신을 억압하고 상대를 신경 쓰느라 에너지가 고갈되기 쉽고,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면서 죄책감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 이기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적당한 이기심은 서로 윈-원 하는 진정한 평과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조화를 바라는 것도 좋지 않다. 서로 너무 맞추려고만 하다 보면 오히려 관계가 불편해질 수도 있다. 조화는 북극 하늘의 오로라처럼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거지 지속될 수는 없다. 폭력 없이 소통하는 정도면 된다. 가끔 평화가 깨질 수도 있다. 불화나 갈등으로 고조되지 않도록 관리해 주면 된다. 지나치게 조화를 추구할 경우 관계가 피상적으로 될 수 도 있다. 가끔 실수도 하고 불편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가 온 뒤 땅이 굳듯 관계도 단단해진다.


 그리고 평화는 관계를 맺는 사람 모두의 책임이다. 따라서 에너지는 균등하게 투입해야 한다(카톡 메시지에 답글 다는 행위 등). 관계의 결속이나 유대, 평화를 혼자서 책임지려는 경우가 있다. 늘 구원자로 나서기, 선한 사람이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다. 혹시라도 그 균형이 무너졌다고 판단되면 스스로 투입 에너지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그 사실에 대해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도 좋다. 그럼에도 시정되지 않는다면 그 관계를 지속할 것인지 말지를 판단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끊지 못한다면 관계 구조에 문제가 있는 거다. 관계에 예속되거나 지배받는 경우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관계없이 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도 하다. 관계 자체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는 뜻이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관계가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모든 개체의 욕구가 충족되거나, 서열에 이견이 없을 때 평화가 유지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그걸로만은 충분하지 않다. 강자들이 그랬는지 약자들이 그랬는지 모르지만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힘의 논리를 벗어난 도덕이나 윤리, 종교란 것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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