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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Jul 10. 2023

module 2: 관계의 구조

 물분자는 두 개의 수소원자와 한 개의 산소원자로 만들어진다. 수소원자와 산소원자는 공유결합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물은 다른 물질과 잘 섞이고 다른 물질을 잘 녹이기도 한다. 그리고 생명의 근원이다.


 그렇다면 관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길을 걷다 누군가와 부딪칠 뻔했고, 서로 미안하다는 말을 나눈 뒤 각자의 길을 갔다. 그 사람과 나는 관계가 있는 걸까. 아니다. 그렇다면 소개팅에서 만나 즐겁게 대화를 나눈 뒤 헤어진 사람은? 조금 애매하다. 직무 관련 워크숍에 참석해 서로 인사를 나눈 사람들은?


 이들과는 달리 가족이나 직장 동료가 나와 관계가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길 가다 마주친 사람이나 소개팅녀 그리고 직장 동료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 걸까. 관계가 있다 없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관계를 크게 확대해서 보면 액션(action)과 리액션(reaction)의 고리가 보인다. 이를 상호작용(interaction)이라고 한다. 이것이 관계의 기본 구조다. 이 블록이 쌓여 관계가 된다. 우호적인 상호작용이 많으면 관계의 끈은 파란색 즉 평화가 된다. 반대로 적대적 상호작용이 지속되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처럼 빨간색 관계인 불화 또는 갈등이 된다.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처럼 관계는 의도를 담은 액션과 그에 대한 리액션으로 시작된다. 일종의 에너지가 투입되는 거다. 아무리 액션을 취해도 상대의 리액션이 없다면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에너지를 투입할 가치가 없어서 일 것이다.


 관심이 있음에도 액션을 취하지 않고 마음만 품고 있다면 그저 관심으로 끝날 것이다. 누군가 의도를 갖고 행동을 하고 상대가 반응해야만이 관계가 만들어진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가다 우연히 전공 서적을 가슴에 품은 채 걸어가는 여학생과 부딪치면서 관계가 시작되기도 한다. 다만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그렇다. 그런 만남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건 망상이다.


 그런데 한두 번 만나고서 관계있다고 말하긴 좀 그렇다. 블록을 두세 개만 쌓아서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것처럼.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켜 가며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지속될 때 진짜 관계(relationship)가 된다.

.



 그러다 관계가 지속되고 서로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커지면서 구조(structure)가 된다. 틀이 생긴다는 뜻이다. 둘 만의 약속을 만들기도 하고 의식도 생긴다. 이런 것들이 구조의 뼈대가 되고, 감정이라고 하는 접착제로 단단히 결합된다. 중요한 건 이때부터는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시간이 갈수록 틀의 모양도 굳어져 쉽게 바뀌지 않는다.


 처음에는 구조가 편하고 안정감도 느껴진다. 원하는 걸 효율적으로 얻을 수도 있다. 뭘 좋아하는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고, 함께 영화볼 사람을 찾는 데 애먹을 필요도 없다. 에너지 효율적이다. 심지어 에너지를 몽땅 쏟아부어놓고도 그런 줄 모른다. 그런 날이 영원할 것만 같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관심이 줄어들면서 부정적 상호작용이 늘기 시작한다. 작은 거 하나 해주고 엄청 생색을 낸다. 기꺼이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거다. 레스토랑에서 의자를 빼주는 매너를 잊는다. 더 이상 차 문을 열고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편안하게만 느껴지던 구조가 불편하고 답답하다. 그제야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참을 수 없어 탈출해보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사람이 관계를 만들지만 나중에 가서는 구조가 사람을 움직인다. 나도 모르게 퇴근하며 문자를 보내고 있고, 맘에도 없는 주말여행 계획을 짜고 있다.




 이 고통스러운 구조를 바꿀 수는 없을까? 있다. 구조를 깨는 거다. 혁명 말이다. 아니라면 전문가와 함께 구조변경을 위한 지난한 과정을 견뎌야 한다.  


 그런데 요즘 흐름이 심상치 않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던 구조가 이제는 선택지가 되어버렸다. 멋모르고 덫에 들어갔다 땅을 치고 후회하는 대신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굳이 덫에 손을 넣지 않고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구조의 위험성을 사람들이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이다. 경험한 뒤에는 이미 늦다는 사실도. 구조의 이점보다는 부산물과 부작용을 먼저 겁낸다. 그러다 보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작용이 적은 관계로 눈을 돌린다. 그게 게임일 수도 있고 반려견일 수도 있다.


 관계를 관리한다는 건 관계를 이루는 언행을 관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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