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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jjung Aug 16. 2020

그 정도로 초보는 아니지만 운전연수는 해야 하지

[사내북클럽] 장류진 작가의 ‘연수’를 읽었다.

사내에서 북클럽이 결성되고 처음 읽게 된 책은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수록작 중 하나인 장류진 작가의 ‘연수’였다. 작가와 제목을 듣자마자 예전에 운전연수 듣던 나의 경험에 빗대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 운전연수는 기묘하고 스트레스였던 경험으로 남아있다. 몇 년 전 미국으로 가게 되어 급하게 한국에서 도로주행 연수를 몇 번 받고 또 미국에서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운전연수를 받았다. 소설에도 나오는 골프채 같은 금색 연수봉을 든 강사님이었다. 주인공 ‘주연’ 만큼의 운전 공포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 또한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에서의 차선 변경과 도로에서 엑싯하기, 그리고 특히 비보호 좌회전은 당시 운전감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나는 순간들이었다. 또 잘 모르는 타지에서의 운전으로 사고 나면 더 골치 아파진다는 압박감에 엄청난 집중력과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면허시험 패스 날 강사님이 옆에서 갑자기 하나님에게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크게 부르는 바람에 난감하면서 웃기고 어이없고, 도대체 잘한 건 난데 왜 하나님에게 감사를 하는 건가 (나는 천주교지만)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작가는 짧은 이야기에서 결혼 적령기인 여자 직장인이 마주한 세상을 ‘운전’이라는 매개로 빠르게 보여준다.

책에서 ‘주연’은 운전은 인생에서 유일한 실패의 경험이다. 살면서 마주했던 여러 관문—대학입시, 취업, 자격증—은 한 번에 성공했지만, 남들이 때 되면 쉽게 하는 것 같은 운전만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반기 인센티브로 시원하게 계약한 신형 아우디와 원활한 출퇴근을 위해 ‘아무래도 운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며 겨우 마음을 먹고 운전 연수를 신청하게 되는데, 그 신청하는 소스를 얻는 곳이 또 지역 맘카페이다. 맘카페에서 생생한 기혼의 삶을 마주하고 비혼을 결심했지만 엄마들의 입소문은 믿게 되는 아이러니함. 그리고 실제로 연수 마지막으로 갈수록 (그녀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엄마들의 후기가 역시 맞았다는 것까지.


성인이 되고 누군가에게 아기 취급을 받으면서 혼나 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운전 강사는 초면에 무례하게 반말로 구박을 준다. 심지어 결혼 간섭 등 사적인 부분까지 빠르게 선을 넘는다. ‘주연’은 필요한 부분(출퇴근 루트)만 빠르게 배우고 싶었지만 강사님의 생각은 다르다. 가타부타 이유 설명 없이 일단 내 말대로 하라고 한다. 나는 이 부분이 정말 공감 가는 포인트였는데, 나의 운전연수도 아주 비슷했기 때문이다. 거두절미하고 그냥 내 말대로 하라고 해서 이유도 모른 채 해야 하는 것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 또한 그 당시 당장 출퇴근이 급한데, 왜 자꾸 상관없는 동네만 돌라고 하는지, 인과관계없이 왜 여기서는 이때 좌회전하고 저기서는 다르게 하라고 하는지 등등.. 나중에야 그 코스들을 시킨 게 도움이 되었지만 요즘 시대에 매사 이유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어디 익숙한가. 하물며 회사에서도 요즘은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위해 해야 하는 ‘이유’들을 명확히 하고 넘어가지 않는가. 그래도 나보다 나았던 점은 — 나는 마음속으로 화만 내고 말았지만, ‘주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사님에게 결국에는 인간적으로 마음을 열고, 강사님의 격려, 안정감에 힘입어 앞으로 나아가고, 동시에 같은 여자로서 한국 사회에서 겪는 어떤 동질감과 이질감을 동시에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작가는 초보운전자가 겪는 연수에서의 여러 단면을 통해 비혼, 기혼 여성의 삶, 일상 여기저기서 불쑥 나타나는 여전한 세대의 간극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장류진 작가의 이전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도 느꼈듯이 너무도 리얼한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다가도 책을 덮으면 여전히 불편하고 찝찝했다.


이런 복합적인 느낌은 북클럽에서 각자의 후기를 나누면서 내가 왜 불편함을 느꼈는지, 여전히 책을 다 읽고도 거북 했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주로 느꼈던 ‘운전연수’에서 오는 생경한 느낌에 더불어, 다른 사람들은 젊은 직장여성의 관점에서 느낀 불편함, 세대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혼자 책을 읽는 것보다 폭넓은 감상을 느낄 수 있게 된 계기였다.


다음 북클럽 모임은 내가 리드하게 되었는데 어떤 책을 고를까-부터 벌써 설레고 어떤 후기들을 공유할지 기대된다. 건조한 재택근무 중 한줄기 소셜라이징 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길!



안녕 내 첫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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