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 여행에서 만난 인연
사람의 인연이란 참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회사에 합격. 입사일까지 나는 자유인이었다. 하고 싶은대로 '입사일'이라는 정해진 날짜까지는 마음껏 놀아도 됐다. 불안감 없이 여유롭게. 나는 여동생과 세부 패키지 여행을 가기로 했다. 12월에 동남아에 가서 신나게 태닝을 하고 바다 속을 헤어치는 상상을 하며.
여행 뒤의 나의 연애계획은 이러했다. 이제 회사에 들어가니 그 곳에서 괜찮은 사람을 만나 둘이 맞벌이하며 안정적으로 잘 사는 미래.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하게 들리지만 그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얼마나 안정적이고 완벽한가.
세부에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첫 날 공항에 도착하자 여행사에서 우리를 픽업해갔다. 일행 중에 가족과 함께 온 고등학생~스무살 즈음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얼굴에 잘생김을 묻히고 다니는 아이였다. 몇 번 힐끔거렸지만 왠지 흔히 말하는 '노는 아이'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만 두었다.
투어를 하는 동안 몇 번의 대화 끝에 이 남자아이는 붙임성 좋고 사교적이고 친절한 아이로 이미지가 바꼈다. 그래도 여전히 여자를 많이 울렸을 것 같아 그만 두었다. 거기다 그는 스무살이었다. 만으로는 무려 18살. 안정적인 오빠를 찾는 25살이었던 나에게는 너무 어린 그였다.
한국에 돌아와 우리는 몇 번 만났다. 누나와 동생 사이로. 나는 어느새 그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된다며 계산하기 바빴던 나는 내 감정을 무시했다. 그리고 20살에 만난 사랑은 끝까지 가지 못할 거라는 불신이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다. 어차피 헤어질 인연에 감정과 시간을 쏟는게 아까웠다. 하지만 마음의 소리를 끝까지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의 고백을 받고 YES라는 답을 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많이 고민했고, 속는 셈치고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이번에 사귀다 헤어지만 그냥 조건맞는 사람 아무나 만나서 결혼하자. 이건 억지로 누군가를 사랑하려 노력하는 관계가 아닌, 내가 나도 모르게 설레고 두근거리면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연애일꺼야.
나는 한동안 스트레스를 받았다. 남자친구가 5살 연하라는 사실을 알게된 주변의 격한 반응 때문이었다.
"너 도둑이냐"
"니 남친은 왜 너처럼 나이 많은 여자를"
"남친 학생이겠네. 몇 학년이야?"
"군대는 갔다왔어?"
"나중에 버림받는다"
"미쳤다"
나는 이런 말들을 웃으며 태연하게 넘길 수 없었다. 연예인들 보면 띠동갑도 많던데...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남들이 하는 저 말들이 나에게는 현실처럼 다가왔다. 여동생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남자친구가 여동생보다 어렸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반응도 좋지 않았다. 내가 결혼할 생각이 없는 걸로 비춰졌을 것이다. 아니면 아직도 철없는 20살로 보이거나.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ㅠㅠ
아무튼.
이렇게 불안불안한 스타트를 끊으며 만난 우리지만 지금은 2년 넘게 잘 사귀고 있다. 내가 의심했던 남친은 사실은 속이 깊고 왠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소나무같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