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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정 Apr 14. 2022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구청 자전거교실 수강기

자전거를 탈 줄 알았더라면, 내 인생이 바뀌었을까? 그랬을 리는 없고... 내 여행이 좀 더 풍요로워지긴 했을 것이다. 루앙프라방 강가에서 친구들이 자전거를 탈 때 혼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도 좋았지만, 함께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은 맛보지 못했다. 삿포로에서, 제주도에서, 그리고 한강에서도... 자전거를 못 탄다는 이유로 많은 기회를 흘려보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교토 여행을 예약했었다. 벚꽃이 만개한 봄의 교토에서 자전거를 타야지. 어떻게든 교토에 가기 전에는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워야지 결심했는데, 코로나로 교토행 티켓은 자동 환불되고 자전거를 배우겠다는 결심도 희미해졌다.


자전거를 배우려는 시도는 항상 있었다.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간헐적으로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며 가르쳐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레슨으로 자전거를 타기란 어려워서, 잠깐 흔들거리면서 타고 다시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는 날들이 반복됐다. '나는 겁이 많아서...'라는 이유로 도저히 두 바퀴 위에 올라서는 것을 시도하지 못했다. 자전거를 꼭 배워야지, 여행 가서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결심한 지 3년째가 되는 2022년 올해, 나는 드디어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


시작한 계기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다른 이유로 현재 살고 있는 곳 구청 홈페이지에 가입해서 이런저런 공지사항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중 '자전거 교실 초급반 모집'이 눈에 띄었다. 토, 일 이틀 2시간씩 무려 4주간 진행되는 코스가 30명 선착순 무료로 진행된다고 했다. '정규 커리큘럼'과 '공짜'...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 조건이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남들은 한 시간 만에도 타던데 자전거를 배우는데 무려 16시간이 필요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정규 커리큘럼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 숙취로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서도 첫 수업에 늦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이번엔 정말 내가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초급 자전거 교실엔 누가 올까? 


도착하고 나니 어머니 나이 또래의 분들부터 중년 여성 분들이 많았다. 연령으로 치면 내가 최연소 그룹에 속한다. 남자도 두 명 있어서 여자만 오는 게 아니구나 했는데, 수업이 시작되면서 그들은 응원하러 온 남편분들이라는 걸 알게 됐다. 30명 정원의 자전거 교실은 전원 여성, 특히 50~60대 분들이 많았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어머님들은 "젊으니까 잘 탄다"며 칭찬과 푸념을 동시에 늘어놓으셨다. '젊을수록 잘하는 활동'에서 '젊은이'를 맡게 된 게 얼마만이더라... 요즘 푹 빠져 있는 풋살 모임에서 30대끼리 모여 '20대는 달라...'라고 감탄했던 게 생각났다. 


첫날은 뭘 배울까? 


구청에서 운영하는 이 수업의 장점은 모든 장비를 지원해줘서 몸만 가면 된다는 점이다. 자전거 헬멧, 무릎 보호대, 팔꿈치 보호대, OO구청이 적힌 형광색 조끼를 모두 착용하고 연습용 자전거를 하나씩 끌고 공터에 모였다. 첫 한 시간은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자전거를 주차(?)하고, 올라타고 내리는 방법을 배웠다. 한 시간 동안 배워야 하나? 싶겠지만 꼼꼼하게 모두가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하다 보면 한 시간이 지나갔다. 진짜 쌩초보에게는 이 자전거가 다루기 힘든 고철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 한 시간은 중심 잡기를 배웠다. 자전거 안장을 낮춰서 바닥에 다리가 닿게 한 다음에 자전거를 그냥 밀고 중심을 잡아보는 거다. 선생님은 중심이 잡히고 나서 페달에 발을 비로소 올리는 거라고 가르치셨다. 


선생님은 한 명, 그런데... 


수강생 전원이 공터에서 자전거와 사투를 벌이는 시간 동안, 자전거 도로와 인도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우리는 무료로 자전거 강습을 받는 대신, 자전거를 탈 줄 아는 구민 여러분의 자존감 지킴이 역할도 하고 있었다. 다들 자전거 배우기, 그리고 가르치기에 대해 정말 많은 의견을 쏟아냈다. 여러분, 잘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조용히 좀 해주시겠어요? 우리야 자전거와 사투를 벌이느라 잘 듣지도 못했지만, 그중 몇 명은 선생님에게 접근해서 여러 불만을 개진했다. 우리 아이 자전거 가르치러 나왔는데 왜 이 공터를 쓰고 있냐 전세 냈냐는 항의부터 (사실 전세를 내긴 했다... 우린 아니고 구청에서) 공터를 쓸 거면 미리 공지를 하라는 불만까지... (공지도 플래카드를 내걸어 하고 있다... 그것도 구청에서)


현재 자전거 초보 커리큘럼의 절반, 2주가 지났다. 포기하지 않는 선생님과 절대 포기하지 않는 수강생들이 2주 동안 자전거와 씨름한 결과, 우리 중 대다수는 이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오늘 무려 처음으로 자전거 연습이 아닌 이동을 위해서 왕복 30분 거리를 자전거로 이동했다. 처음 자전거를 배우려고 했던 스무 살 때를 생각하면, 거의 20여 년 만에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된 것이다. 정말... 어머님들 말씀처럼, 환갑 전에 시작하길 잘했다. 


덧붙여 


선생님은 '이제 탈 줄 안다고 시건방 떨지 말고' 나머지 2주 수업도 성실히 참석하라고 하셨다. 2주 후에는 지금도 페달에 발을 올리지 못한 어머님들과 함께 전원이 중랑천 라이딩을 떠난다. 그때 다시 후기를 남기겠다. 검색해보니 많은 구청에서 구민을 위한 자전거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자전거에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전거 타는 사람'이 되는 즐거움을 경험해보시길. 


유느님의 자전거 레슨, "페달을 돌리면 절대 안 넘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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