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파두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정 Mar 16. 2023

걷다보면 마파두부, <킹수제만두>

최근 읽은 책에서는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현대인의 도파민 중독, 특히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 방법 중 하나로 그 무엇에도 연결되지 않은 채로 걷는 걸 추천했다. 현대인이라면 귀에 팟캐스트든 케이팝이든 뭐라도 들려야 한 발자국을 뗄 수 있는 것 아니었나? 요즈음의 나는 종종 아무것도 귀에 꽂지 않고 걷는 시간을 가지고는 있다. 신설동 킹수제만두에 간 그날은 아마 음악을 들으면서 걸었을 것이다.


코로나가 한창이고, 회사는 사정이 어려워져 휴직을 반복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회사 생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매번 같은 고민이라는 게 답답하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나를 다그치는 내 안의 내가 버거웠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거의 나와의 시간만 가지던 때였는데, 나 자신에게 친절하기가 쉽지 않던 때이기도 했다. 그날은 퇴근하고 나서 어쩐지 집으로 바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코로나 시국에 집합 인원을 제한하던 때라, 웬만하면 집-회사만 오가던 시절이었다. 마파두부로 유명하다는 킹수제만두를 목표 지점으로 삼았다. sns에 올라온 마파두부 사진을 유심히 관찰했는데, 이 색깔… 모양… 이 정도면 합격이다 싶었다. 회사에서 킹수제만두가 있는 신설동까지… 걸었다.


회사에서 킹수제만두까지의 거리는 오늘 카카오맵으로 확인해 보니 3.1km이다. 1시간 정도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현대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권장되는 걷기, 사색하기, 산책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 그날의 나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그 길에서 생각에 잠겨 아무렇게나 걷다가는…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길은 꽤 낯설었고, 오토바이들이 정신없이 오갔다. 마스크를 뚫고 계속 들어오는 담배 연기도 곤혹스러웠다. 서울 어느 곳이 안 그럴까 싶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 속을 느리게 스쳐 지나갔다. 날이 꽤 더웠고, 그만 걸어도 좋았을 것이다. 옅은 우울이 날 멈추지도 못하게 했고, 결국 그렇게까지 원한 건 아니었던 킹수제만두 앞에 도착했다. 가게는 문전성시였다. 다들 시끌벅적 또 부지런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줄을 선다면, 한 테이블만 빠지면 내가 들어갈 수 있었다. 다 귀찮아졌다. 기다렸다가 이 틈바구니 속에 들어가 2인석을 차지하고 마파두부를 먹는 나의 모습이… 나는 마파두부 하나를 포장해 달라고 하고 거리에 서있었다. 그곳에서 집에 오는 길은 걸어올 수 없었다. 마파두부를 들고 나는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서 아직은 김이 빠지지 않은 마파두부를 밥에 얹어 먹었다. 맛있게 매운 마라맛. 맛있긴 했는데, 내가 기대했던 사천 마파두부의 맛은 아니었다. 신설동에 갈 일이 생긴다면 추천해 볼 만 하지만, 이 마파두부를 먹기 위해 3.1km를 걷는다면 (그럴 사람도 없다.) 말리고 싶은 그 정도의 마파두부의 맛. 


유튜브 채널 <더 밥 스튜디오> 분식 오마카세 EP.20 킹수제만두 편


그날의 마파두부는 옅은 우울의 맛이었다. 눅진한 기분과 엉켜 붙은 마파두부의 매운 냄새… 를 떠올리다 보니 지금 다시 먹어보면 어떨까 싶어 (가는 김에 업로드용으로 매장에서 사진도 찍어오고…) 퇴근하는 길에 킹수제만두까지 가는 경로를 검색했다. 걸어서가 아니라, 대중교통으로 50분… 그냥 집으로 바로 가기로 한다. 나는 그때의 걸음들을 따라, 킹수제만두에서 더 먼 곳으로 회사를 옮겼다. 그때의 고민은 또 지금의 새로운 고민으로 이어져있다. 생각이 버거워지는 어느 날 문득, 퇴근 하고 다시 처음 보는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마 그 길의 끝엔 또 마파두부가...  



킹수제만두

- 마파두부덮밥 12,000원

서울 동대문구 한빛로 3 1층 

매거진의 이전글 마파두부의 기준, <명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