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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를담다 Jul 16. 2021

쓸모 인간(나의 쓰임새에 대하여)

엄마가 죽기 전에 엄마와 화해할 수 있을까?

아빠가 살아계실 때 친했던 동생분이 있었다. 마트 앞에서 그 삼촌의 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언니, 저희 막냇동생 결혼해요. 문자 받으셨어요?"

속으로 '무슨 셋째까지 연락을 하나..' 하며 조금은 볼멘소리가 나오던 그때였다.

"저희 아빠가 아파요. 그래서 일찍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이야기를 듣자 하니 삼촌이 암에 걸린 지 두 달 만에 알게 되었고 전이가 심하게 되어 손쓸 수 없어

서울에서 내려와 이 병원에서 생명을 겨우 연명하고 계신다고 했다.

아빠도 뇌출혈 10년을 병상에 계시다가 돌아가신 지 8년 차 되는데,

내가 어릴 때부터 그전까지 왕래하며 지냈던 삼촌이라 그런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나서 그 자리에서 동생과 둘이 엉엉 울어버렸다.

아빠가 돌아가신지도 좀 됐고, 그간 왕래도 많이 없었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던 걸까?

"응, 엄마한테 전화해서 이야기 전해줄게"라 이야기하며 나섰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서 병원에 가면 병문안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서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했는데 (마침 엄마도 무릎 인공관절 수술로 병원에 계신다.)

"어~ 그렇나? 저도(자기들도) 우리 결혼식 때 안 왔는데 무슨.. 연락은 받았는데 모르는 척할 수는 없고 5만 원만 니 이름으로 보내라."

"엄마, 삼촌 암이 온몸으로 전이돼서 호흡기 끼고 오늘내일한데, "

"맞나. 아마도 장기기증 신청을 해놔서 죽게 되면 대학병원에서 싣고 갈 거다"

'잉?

뭐지?

내가 잘못 들었나?

대화의 흐름이 이게 맞는 건가?'

너무 당황해서 "맞나"라고 해버렸다.


보통 "어쩌니, 상태가 어때? 얼마나 심한 거고? 불쌍해서 어쩌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게 먼저 나오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내가 예민한 건가? 내가 너무 감정적인가?

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물어봤더니,
언니도 "당연히 병원을 가야지. 그래도 우리 가게도 가끔 오고 아빠랑도 친했는데."

그러면 이건 뭔가? 그런 식의 상황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언니 말이 엄마는 예전부터 감정 공감능력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늘 자기밖에 모른다고,

우리를 생각한다는 일이 결국은 엄마 본인이 좋은 일로 되는 것,

심지어 그게 엄마 본인에게도 좋은 일이 된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면서도

우리를 위해 도와주는 거라 생각한다.

늘 우울증 걸린 사람처럼 싫은 소리 한마디만 들으면  앓아눕는 일 밖에 없던 예전의 엄마가 떠올랐다.






어릴 때는 너무 가난했으니까 사는 게 힘들어서 엄마가 저렇겠지.

조금 크고는 아빠가 쓰러졌으니까. 그래서 힘들어서 그렇겠지.

그런데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엄마가 극도로 싫어졌던 이유가 어제부로 명확해졌다.

'이거였구나..'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급격히 병환이 나빠졌을 때,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는 할 일을 다했다는 태도

속에서도 어제의 그 모습을 보았고,

8년 전 아빠 상을 치를 때도 사람들 앞에서 울어야 할 타이밍에 기가 막히게 울고,

울다가도 사람들이 오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주변 사람을 의식한다는 건 알았지만,

엄마가 스스로의 감정을 드러낼 때 남의식을 심하게 한다는 것을 그날 확실히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생각해보면 나도 행동 하나하나를 할 때마다 지나칠 정도로 남을 의식하고 있었다.

(하... 이만큼 자식에게는 엄마의 영향이 크다..)


이럴 땐 웃어줘야 저 사람이 좋아하겠지?

상갓집을 가서 울어주면 저 사람이 좋아하겠지?

나 스스로의 감정으로 울고 웃은 게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울음과 웃음을 늘 생각하며

모든 인생을 내 감정의 주인이 아닌 노예처럼 살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엄마가 늘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자식은 낳았으니 저절로 큰 거라고 (자기 입은 타고 나온다고 늘 이야기하셨다)

그래서 많이 낳으면 낳을수록 좋다고,

그리곤 생각이 떠올랐다.

자식이 일꾼이 되던  엄마 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 나를 키워왔구나..







어린 시절부터 듣던 말이 있다.

"우리 막내딸 안 낳았으면 어쩔뻔했니~"

난 그게 칭찬인 줄 알고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부단히 도 애쓰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남 이목을 너무나도 많이 신경 썼고, 나를 희생하면서 칭찬받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칭찬받으면 너무 행복했다. 내 존재가 그때만큼은 빛난다고 해야 할까?

어린 시절부터 내 머릿속에서는 '이러지 않으면 엄마가 날 좋아하지 않을 거야' '기특한 딸이 돼야지'

라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았다.




5살 때부터 혼자 집에 있었던 나는 스스로 생각을 표현할 기회를 갖는다거나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할 때 그 생각은 아니야라며  반박해주거나, 달래 줄 그 누구도 없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학교를 마치고 늘 집에서 혼자 뒹굴며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걱정의 걱정을 얹는 일을 주로 했었던 것 같다.

책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집에는 내가 원하는 책을 사줄 형편이 안됐으니까,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순전히 내 생각이 었던 것 같다.


아빠는 배를 타고, 엄마는 명태 공장을 다니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 없는 살림에도

오빠는 시리즈별로 나오는 책들과(만화책도 포함이다..)  과학상자, 컴퓨터, 학원, 비비탄총, 검도, 카메라, 그림, 인라인, 가게 오픈,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취미생활과 원하는 건 빚을 내서 다 해줬으니까.

(큰아들이 잘되야한다나 뭐라나.)


그냥 82년생 김지영처럼, 어린 시절부터 딸이니 그게 당연하다고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한 번도 무얼 사달라고 말해 본 적이 없었다.

옷도, 신발도 사달라고 떼써본 적이 없었다.

우리 집은 가난하니까 못 살 거야, 라며 단정 지어버렸던 것 같다.

다들 그러니까, 아니 다들 그럴 거야, 원망할 시간도 여유도 형편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다들 그렇지 않았더라...)


엄마는 내가 어떻게 컸는지 하나도 기억이 없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손가락 빨고 저녁못먹고 자고 있는 모습밖에 기억이 없다고.. 그거 하나 안쓰러웠나 보다.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대학을 어떻게 다니고, 졸업하고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늘 본인 다리 아프고, 아들일이 안 풀리고, 아들이 낳은 손녀 봐주고..

오빠와 사이 안 좋았던 새언니 걱정, 엄마 기준에서 약간의 아픈 손가락인 언니 걱정,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터라

돈을 번 이후 단 한 번도 손을 벌린적 없었다.  

(사실 내가 떼를 쓴다고 해서 돈이 나올 데도 없었다.)

결혼도 10원 하나 받지 않고 내 돈으로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아이를 낳고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 내 인생이 정말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마와 나의 시대가 달라서 그렇다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엄마를 더 이해하기 힘들었고, 너무너무 싫어졌다.

그리곤 문득 생각이 났다.


"존재로서 사랑받지 못하고 쓸모로서 사랑을 받았구나"

그거였다.

그간 엄마가 한 말을 내 생각으로 조합해 보자면,

아이를 키우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사건 사고 많았던 오빠와 언니와는 다른,

남들처럼 공부를 잘하거나 뛰어나게 잘나진 않았지만, (이만큼 평범하게 살아온 게 대단한 상황이다..)

평범하고 성실하고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하는 엄마 아빠를 닮지 않은 이쁜 얼굴을 가진 막내딸인

나의 존재가  엄마의  삶의 성적표 같다고나 할까?

엄마의 얼굴이고, 심부름꾼이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본인 스스로가 필요한

한마디로 존재로서의 사랑이 아닌 엄마에게 쓸모가 있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딸인 거였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떠올려보면

존재로서의 사랑을 받아본 기억은 거의 없다.

5살? 7살? 너무 어릴 때 혼자 두고 일하러 갈 때 그때 안쓰러워하던 마음 말고는

(그 기억 하나로 38년을 우려먹다니...)

그냥 존재로서의 나를 사랑받아본 기억은 없다.

늘 내가 무언가를 해줘야 좋아했고,

사실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너는 너 알아서 잘하니까. 걱정 없다 라는 식의 쇠뇌가

나 스스로에게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못하면 어쩌지?라는 부담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일이 잘 되지 않았을 경우

자책하는 횟수도 늘어나고 작은 일에도 금방 무너져 버렸다.

그 이유를 이제야 드디어 알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많은 고민 끝에 깨달은 것은,


이 모든 일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이고

지금의 나는 스스로 인생을 선택할 수 없었던 8살의 내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38살이 되었으며,

그간 억울했던 내 어린 시절의 그 일들은 이미 지나가고 없으며,

지금 이곳에 있는 현재의 내 모습만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나는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


별안간 큰일이 있지 않는 한 엄마는 앞으로도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며,

(큰일이 있더라도 사람.. 그거 잘 안 바뀌더라.)

죽음의 경계에 나보다는 가깝다고 생각되는 엄마에게

모질게 할 성격도 되지 않고,

지나간 일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도 앞으로 내 삶이 나아가는 방향에서는

분명 독이 될 것이므로,

얼른 현실을 깨닫는 일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그리곤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나처럼 어둡고 눈치 보는 삶이 아닌, 밝고 행복한 삶이 되도록

든든하게 옆을 지켜 주며, 그릇에 다 담기 힘들 만큼의 넘치는 사랑을 줘야 한다는 생각도

다시 한번 더 깊게 새기게 되었다.

 

아이들이 나만큼이나 커서 본인의 기억을 회상해 볼 때,

어린 시절의  그 기억들 중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겠지만


엄마로서 욕심을 좀 부리자면,

어른이 되어 여러 위기가 왔을 때

내가 준 그 따뜻한 기억을 통해 가장 힘들 때 그 사랑이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고,

남들 눈을 신경 쓰는 것보다 그 어떤 길이라도 본인이 스스로 선택하여 당당하게 나아갔으면  좋겠고,

만약 내가 곁에 없더라도 나에게 받았던 사랑을 힘들 때마다 꺼내먹으며, 세상에 주눅 들지 말고, 힘차게 살아갔으면 하는 것.


그러기에 나는,

내 아이에게는 절대로 쓸모의 이유를 붙이며 사랑하지 않고,  늘 존재로서의 사랑만을 하기를.

이유가 붙는,  그 무언가가 되어서가 아닌,

존재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랑만을 주기를,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더 다짐해본다.


나도 꾸준히 노력하겠지만,

나, 우리 아이,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세상의 모든 이들이 쓸모로서가 아닌

지금 살아있는 존재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되새기며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오늘도 각자의 영역에서 크고 작은 족적을 찍으며 하루를 견딘 우리는

모두 이 지구라는 별을 굴리고 있는 길동무다.

걷는 사람 하정우 - 하정우/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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