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가 1명밖에 등록이 되지 않아 내가 병원을 오고 가고 했더니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용돈 20만 원을 손에 쥐어 주셨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뭐지.. 돈 때문인가? 왜 안 하던 짓을 하지? 근데 그 와중에 왜 나는 뭉클하지?
나라는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간사하다.
그렇게 밉다고 하소연하던 내가,
나이를 먹고, 인정받는 것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다가도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에, 봉투에 든 돈에 넘어가는 것도 그렇고,나를 알아주는 것 같은 그런 말 한마디에 금방 풀려버리다니,
거기에다 내가 너무 심하게 생각했나 하는 자책까지 생겼다.
어쩜 나는 이렇게나 단순하고, 아둔하다.
한 가지 생각으로 끝없이 우주를 헤맬 때는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것처럼
세상 일들을 다 가져다가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면서
따뜻한 행동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아이스크림 녹아버리듯 흘러내리는 이 줏대 없는 마음을 어찌할꼬. 이럴 때마다 지나치게 화를 냈던 상황이나. 깊은 어둠 속에 빠졌었던 마음들이 부끄럽다.
나라는 사람은 어제는 죽도록 밉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허무할 정도로 단순할 때도 있다.
그래서 이제껏 이렇게 견디며 살아왔나 보다.
퇴원을 해서 다리의 아픔이 줄어든 뒤라 그런지
엄마는 예전의 엄마가 아닌 여유롭고 따스한 사람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나도 아프면 짜증이 많이 나듯이 엄마도 나이가 많아 고통이 심해서 그랬던 걸까?
나도 아이를 낳고 하나씩 고장이 나는데 없는 형편에 셋이나 낳아 길렀으니 오죽했겠나,
갑자기 같이 늙어가는 모습이 조금 안쓰러웠다.
어린 시절부터 속았다는 기분으로 살다가
답답한 심경의 글을 올리며 마음이 누그러 진 걸까?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화가 나서 써 놓았던 글을 읽다 보면어느 순간 마음 정리가 되고 오히려 상대에게 미안해지는,더불어 나는 잘한 게 있나? 하는 반성까지 하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내가 힘든 그 어린 시절에 엄마라고 힘들지 않았을까?
그 힘들고 슬펐던 어린 시절을 이제 와서 보니 나만 겪은 것도 아닌 것 같다.
내 이야기 속에는 엄마도 있었고, 오빠도, 언니도, 하늘에 계신 아빠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들 하나도 빠짐없이 다 불쌍하구나..
나만 불쌍하다고 또 철없는 막내 짓을 했구나..
가슴이 찡한 게 눈물이 나는 걸 보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미운 엄마도, 서운했던 언니도, 오빠도, 아빠도 없다.
철없는 아이에서 이제야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여성의 배움이 지금처럼 허락되지 않았던 시절에
외할머니도 없이 자란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헷갈리고 어렵고 괴로운 일이 많지 않았을까?
애는 셋이나 낳았고, 돈벌이도 시원찮은 술 좋아하는 뱃사람과 결혼해서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을 본인의 팔자소관처럼 여기며 이혼하지 않고 키워냈고, 10년 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던 아빠를 돌보았던 것도 알게 모르게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지 엄마가 아니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내가 판단했으니,
이쯤에서 보자면
가족 모두 똑같이 겪었던 과거 속에서
내 마음 하나도 달래지 못한 내가 미웠던 건 아닐까?
버려 버렸으면 되었을 것을
그간 느꼈던 슬펐던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을
낡은 보자기에 꽁꽁 싸놓고힘들 때마다 꺼내어 책임 소지를 물었었다. 그리곤 두고두고 괴롭히며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