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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를담다 Aug 27. 2021

엄마는 알고 있을까?

오천 원의 서운함

엄마가 내가 대신해서 냈던 요구르트 값을 주셨다.

총 만 오천 원이었는데

이만 원을 주면서 5천 원을 거슬러 달란다.


아...

무슨 마음인지 도통 모르겠다.

남들이 들으면 '당연한 거 아니야?'

'뭐 계산이 정확한 집이겠지' 하겠지만

딸에게 오천 원 받으려는 그 마음이 마냥 서운한 걸 어쩌나.


오천 원이라는 그 한마디에

생각이 돌고 돌아 타임머신을 타고

나의 슬픈 어린 시절로 돌아가버렸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다 보니,

밑도 끝도 없이

나에게 미안한 맘이 들지 않은 것에 화가 났다.

(모호한 내 기준이긴 하지만)

난 이만큼 해주고도 내 자식들이 안쓰럽고 미안한데

엄마는 내가 안쓰럽다거나 미안한 마음보다

당장의 본인 이익이 왜 더 중요한 건지.

난 또 그 상황이 얄미워

굳이 돈을 받고, 잔돈을 거슬러준다.




엄마와 나는 아주 오래된 같은 아파트에 산다.

이 아파트는 지독한 가난과 내 어린 시절을 함께 한 곳이다.

같은 동네에 살던 동생이  내가 그 아파트를 샀다고 했더니 

오죽하면 "언니는 거기서 또 살고 싶나?"라며 되물었을 정도다.

(그 동생도 함께 가난을 느끼며 홀대를 받았었다.)


대학 다닌 기간을 빼고 지금의 아파트에서 살다가 원룸 1년, 언니 가게 단칸방에서 3년,  

그리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곳으로 다시 오게 된 것인데,

(당시 단칸방에 살면서 첫 아이를 낳아 집을 고민하던 상황이었고, 내 아이는 시작부터 단칸방에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아빠가 첫아이 임신 8개월에 돌아가셨으니 엄마가 힘들지 않을까 는 생각에 이사를 왔었으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핑계가 아녔을까 싶다.

그때 당시 다른 데 갈 수 있는 돈도 없었을뿐더러,

빚을 내어서 좋은 아파트를 가더라도

아이를 낳은 직후라 내 성향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엄마들과 비교하며

내 경제상황을 탓할 것만 같았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겠지만...


내가 태어나고 7살 때까지 자란 곳의 기억은

바닷가 한 블록 앞 옆집과 옆집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사람 한 명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골목길이 있었던 곳이었다.

우리 집은 방이 두 칸이었고, 그사이에 마루가 있었고 옥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당시에 냉장고도 없었고, 가스레인지도 없었다.

아이스박스 안에는 늘 얼음을 넣어놓고 썼고

가스레인지 대신 기름 넣는 스토브를 썼다.

(같은 시대에 살던 신랑은 냉장고는 물론 침대에 식탁까지 있었다나)

그곳이 철거되면서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입주권을 주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아빠는 배를 타러 가셔서 한 달에 한 번쯤 오셨고,

엄마는 새벽 5시에 공장에 가셔서 오후 5~6시쯤에 집에 오셨다.

일을 하지 않는 날에는 집 거실에 바지락을 널어놓고

까셨다. 손이 느린 탓에 시간 맞춰 해낸 적이 없어

언니와 나도 늘 옆에서 바지락을 깠다.

언니는 학교 가기 전 간까지 까고 간 적도 있었지만

오빠는 전혀 시키지 않았었고, 그땐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한동이라고 불리는 양을 다 까면 3천 원~8천 원까지 주었다. 시간으로 계산하자면 5-6시간에 6-8천 원이었던 셈이다)

그 기억 때문인지 어른이 된 뒤 웬만해서는 바지락을 사서 먹진 않는다.


쉬는 날도 특별하지 않았으므로 기억이 잘 없고.

일을 마치면 저녁을 차려주고는 매일 앓아누우셨다.

그때 나는 어김없이 슈퍼에 가서 박카스를 사 왔었고,

그래서인지 엄마는 지금도 박카스가 만병통치약이라 생각하신다.

아빠는 배가 들어와 집에 오실 때면 늘 만취상태였고, 엄마와는 자주 부부싸움을 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니 배를 탈 때에는 바다에 빠질까 봐 술을 아예 먹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가 퇴근길에 술 한잔 하고 집에 가는 것처럼 그렇게 드신 것 아닐까?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서 해소하는 게 문제였지만.)

나는 아빠가 오실 때마다 또 싸우게 될까 봐 늘 공포심에 휩싸였었다.

언니와 오빠는 커서 그런지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밖으로 나가버렸고,

나는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내가 없으면

혹시나 실수로라도 엄마를 죽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늘 그 공포의 공간을 떠나지 못했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 보니 부부간의 표현방식은 아무도 모르는 거였더라.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아이들 앞에서 절대로 싸우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엄마가 고단 하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엄마 편이었다.  그렇게 안쓰러웠다.

크면 효도할 거라는 마음도 굳게 먹었었다.




나는 어려웠던 가정형편 탓에

학교를 다니면서도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학원은커녕 공부를 따로 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성적은 늘 바닥이었고 학교 갈 때에는 혹시나 내 옷에

조개 냄새가 베이지 않았을까? 나의 가난이 들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미 다들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영화 기생충에 나왔던 '지하철 냄새' 장면에서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었다.)

나는 아이들이 놀리지는 않았지만 놀릴까 봐 두려웠고 소외될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늘 괜찮은척했고, 씩씩한 척했고, 나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친구들을 굳이 찾아가며 비교하고 위안을 삼았다. (고치려 하지만 무섭게도 그 습관은 지금도 남아 있다.)

'친구들과 같이 놀고 있는데 길가다 술 취한 아빠를 보지 않을까?

비린 냄새가 나는 초록색 통을 들고 공장에서 오는 무기력한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만약 보게 된다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를 생각하며 친구들과 즐거운 순간에서 까지도

나의 부끄러움과 초라함을 상상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이답게 놀기는 힘들었고 동네에서 조차 인정받을 리가 없었다. 

엄마 아빠가 돌봐주지 않은 그 시간은 온전히 나 혼자 보내야 했다. 

밖에서 뛰어놀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말을 덧붙이며 혼을 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랑 오빠도 나와 같은 경험을

4년 먼저 6년 먼저 했을 텐데.. 참 안타깝다.

그래서인지 언니는 이 동네 어르신들을 정말 싫어한다.

언니가 동네 사람들에게 느끼는 그 감정을 나도 충분히 이해되기도 한다.

(우리 언니는 아직 그때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나오지 못했다.)


어느 날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다 모여 있는 슈퍼 앞에서

동네 아저씨가 가슴을 만져보자며 성희롱을 했었고,

아무도 말리는 사람 하나 없이 시선이 집중되었었다.

내가 울면서 들어왔더니 엄마가 한소리 한다며 나가서는 음료수 세트를 받아왔었다.

그 충격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엄마도 나에게 이쯤 하고 넘어가라는 뜻이었겠지.

내가 화가 나 날뛰었지만 음료수를 먹으라 건넸다.

어린 나이지만 다 알고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관심이 없구나'

'오롯이 엄마만 생각하는구나'


아마 좋은 게 좋은 거니 이쯤에서 넘어가자는 뜻으로 받았겠지.

우린 한동네 사람이고 그런 것쯤 넘어가지 못하면

동네에서 생활하는 게 서로 불편해질 테니까.

내가 받은 상처보다 엄마의 면이 더 중요했을 테니.


늘 함께 사는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뱃속에 낳은 나보다 잠깐씩 인사하는 아저씨와의 관계가 더 중요했던 걸까? 엄마의 판단력이 제로였을까.

아무리 사는 게 고단했더라도 딸을 가진 나는,

내 아이에게 상처 준 그 아저씨를 가만뒀을까?

혹시나 음료수를 받아올 수 있었을까?

아무리 입장을 바꿔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대적 배경을 운운하며 핑계를 댄다면

순간적인 마음이라도 편하겠지만,

다시 생각을 해도 나라면 그럴 수 없었을 것 같다.

집안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언니도 바깥으로 돌았고,

오빠는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았다.

인형을 한번 사본적도 없고,

여행을 한번 가본 적도 없고,

외식을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쥐어짜려고 해도 아이답게 사랑받아본 기억이 없다.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없다.


가난과 부모님의 잦은 부부싸움 탓인지

나는 점점 자라면서 감정조절이 힘들었고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아 참을성 없이 덤비거나 때론 끝도 없이 움츠려 들며 숨어버리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스스로를 위로한다는 이유로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무시하는 성향이 몸에 배었었고

내 기분대로만 생각하며 불쑥 행동하는 일이 많아졌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감정적인 사람인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어른의 시각으로 엄마를 다시 보았을 때

엄마도 정말 견디기 힘들었겠다 싶다가도,

사실 내가 그 상황의 엄마였다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한다.

우리들이 있으니 조금 참아도 되었을 감정을

늘 지지 않으려 아빠와 붙어 이기려 했던 기억.

그로 인해 집이 더 크게 시끄러워졌고,

고성과 집안 집기들이 날아다녔다.

엄마가 맞기도 했고,  말리던 우리가 맞기도 했다.

그 상황에서 엄마도 많이 힘들었겠지만

우리를 생각했었다면 왜 조금 더 현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러던 사이 어느새 내가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 버렸다.

물론 나는 내 아이를  엄마와는 다른 시절에 낳았지만

가난의 되물림처럼 엄마 시절과 다를 바가 없는 형편 속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일까?

내가 아이를 낳고 보니 엄마가 더 미워지고 싫어졌다.

엄마의 시대와 상황을 이해해보려 했지만,

잠깐은 안쓰러웠다가도

다시 생각하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걸 어쩌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엄마 앞에서 꺼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럴 때마다

"다들 그렇게 살았어. 옆집은 더했어.

 그랬었나?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세상의 모든 이야기의 주체는

오로지 엄마의 감정 그 자체이다.

자신의 감정으로만 세상을 보고, 주변을 보고,

우리를 보고, 나를 보았다. 물론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엄마에게서 5천 원이 서운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엄마는 내 어린 시절의 그 상처에는 관심이 없는데

나는 어린 시절을 감싸 안아줬음 하는 마음과

그때의  받지 못했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무언의 기대감 때문인 듯하다.

( 엄마에게는 그 마음이 내 욕심인 듯했다.. 자식이 위로해달라는데 과연 그게 욕심일까?)

하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엄마 본인의 몫을 나에게 떼어 주려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런 순간순간이 참 서운하고 서글프게 다가오는 것 같다.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자식에게 듣는 원망이란다.

내 것을 내어주어야 상대도 그 마음을 알 텐데

그 근본적인 진리를 깨닫지 못한 엄마는

자기 자식에게도 그렇게 정확하다.

칭찬보다는 욕먹기를 싫어하는 그 성격.

그 와중에 나는 또 엄마를 닮아있었다.


엄마를 보며 늘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도 그렇게 살진 않았는지.

나는 우리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내가 원하는 것인지, 상대가 원하는 것인지.

나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상대의 시선도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기분이 나쁜 일은 상대도 기분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는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욕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게 그렇게 끊임없이 되돌아본다.


이미 복잡한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산다는 게

긴장의 연속이긴 하지만

그동안 별생각 없이 살면서 그때그때의 대처가 미흡해

여러 군데에서 마음 졸이던 것을 생각하면

이까짓 수고로움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나도 아직은 어렵고 많이 서툴지만,

몸에 베일수 있도록 실천하고 또 노력하고 있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는 사실"만은 불변 진리니까.


아직은 엄마에 대한 미움만이 가득한 글이지만,

엄마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도 꾸준히 하며

하루빨리 진심으로 화해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어떤 귀로 歸路


새벽 서릿길을 밟으며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

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

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


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 커녕

먼지만 부옇게 쌓여 있는데,

빚으로도 못 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것들이

방안에 제멋대로 뒹굴어져 자는데,


보는 이 없는 것,

알아주는 이 없는 것,

이마 위에 이고 온

별빛을 풀어놓는다.

소매에 묻히고 온

달빛을 털어놓는다.


(박재삼 시집/박재삼/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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