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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나래 Apr 14. 2019

구글 플러스가 망한 이유

페이스북 때문이 아니다


요약

'넥스트 페이스북'을 꿈꿨던 구글 플러스가 망했다. 세계 최고의 자본과 인재를 가진 구글조차 페이스북을 넘지 못한 것이다. 페이스북이 난공불락의 소셜 네트워크이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구글 플러스는 페이스북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초기부터 존재했던 몇 가지 크리티컬 한 기획적 결함 때문에 실패했다. 비대칭적 팔로잉 모델과 지나친 랭킹 기반 설계, 기존 사용자들을 활용한 부자연스러운 성장이 문제였고 이 모든 문제는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과 그룹 싱크의 함정 때문에 적절하게 고쳐지지 못했다.




구글 플러스가 망한 이유



2010년 구글 플러스 론칭 뒤 나는 블로거 팀에서 옮겨와 잠깐 그 팀에 머물렀다. 3년을 프로젝트를 위해 보냈고 처음에는 프로필팀, 나중에는 성장과 참여팀 (Growth and Engagement team, GET), 마지막에는 구글의 실명제 정책을 폐지하는 프로젝트 마돈나 소속으로 팀에 머물렀다.


레벨 5의 낮은 레벨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참고 :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기술 정도에 따라 수치화된 레벨로 나눠질 수 있다)로서 나는 프로젝트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위치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구글 플러스의 초기 개발 동안 이뤄진 많은 내부 결정들에 대해 증언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많은 심각한 실수들이 이 초기 단계에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단지 결과론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돌이켜봤을 때 당시 이 결정들이 장기적으로 해가 될 것이라는 강한 느낌이 있었다. 달라진 점은 내가 이제는 내 주장을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묘사할 것들이 구글 플러스가 맞닥뜨렸던 유일한 문제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궁극적인 실패에 분명히 중요한 원인들이라고 믿는다. 물론 내가 말하는 것들은 모두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나의 현재 고용주나 다른 이들과는 관계가 없다.




1. 비대칭적 팔로잉 모델

대칭적 팔로잉 모델(그때 우리가 사용했던 전문용어에 따르면)은 커넥션을 만들기 위해 양자 모두 동의해야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페이스북과 링크드인에서 사용되는 모델이다.


구글 플러스의 설립자들은 소셜 그래프의 빠른 성장을 원했다. 그들은 페이스북을 이기는 것이 규모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비대칭적인 팔로잉 모델한쪽이 다른 한쪽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팔로잉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트위터와 구글 플러스에서 사용되는 모델이다.


구글 플러스의 설립자들은 소셜 그래프의 빠른 성장을 원했다. 그들은 페이스북을 이기는 것이 규모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어떤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에 가는 것은 그것이 최고의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친구들이 있는 곳에 간다.


그들은 비대칭적인 팔로잉 모델이 양 쪽이 친구가 되는데 동의한다는 '악수'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더 빠른 소셜 그래프의 성장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최소한 처음에는 옳았다. 동시에 그들은 구글 플러스가 사람들이 친구, 가족과 연락을 유지하는 네트워크의 '가까운 끈'도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비대칭적인 모델은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는 약한 채널이라는 약점을 가진다. 당신이 누군가를 '팔로우'하는 것은 당신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기를 원한다는 신호이다. 하지만 당신이 단지 누군가를 팔로우했다고 해서 그들이 반드시 대꾸를 해준다는 뜻은 아니다. 이 일방향적인 모델은 사실 친밀한 네트워크에서는 좋지 않은 선택인데 그 이유는 친밀한 관계는 빈번한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안녕, 오늘 어땠어?"

"괜찮았어. 애들은 어때?"


나는 내 여동생 크리스티를 내 구글 플러스 서클에 추가할 수 있었고, 그것은 내가 그녀가 포스팅한 콘텐츠들을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내가 포스팅하는 것을 본다는 보장은 없었다.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에 동기부여받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정말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만 동기부여받는다. 단순히 빈 공간에 소리 지르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동기를 저하시키는 일이다. 또 다른 동기 저하 요인은 피드백이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신호가 없을 때,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은 그 커뮤니케이션 채널 사용을 중단하고 다른 것을 찾는 일이다.


구글 플러스의 초기 단계에 분명해진 것 중 하나는 메시징이 매우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구글 플러스가 메시지를 잃어버린다거나 그것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도 그것을 읽기 위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이메일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수신자가 당신의 메시지를 읽었다는 신호가 없을지라도 당신은 이메일 클라이언트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 메시지가 그들이 뭔가를 하기 전까지 수신함에 남아 있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메시지가 지금 또는 나중에라도 읽힐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


그것은 역시 트위터에서도 문제가 아닌데, 트위터는 친밀한 사이의 네트워크가 아니기 때문이다. 트위터에서 커뮤니케이션은 통계적인 현상이다. 당신은 메시지가 당신의 팔로워 전부에게 전달되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당신이 신경 쓰는 것은 팔로워의 수와 그들 중 많은 비율이 당신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2. 랭킹 기반 노출

구글 플러스의 전체적인 커뮤니케이션 불신에 기여한 다른 요소는 랭킹의 사용이다. 당신이 구글 플러스의 콘텐츠 스트림을 볼 때, 콘텐츠들은 '중요하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상위에 올리고 중요도가 낮은 커뮤니케이션은 페이지의 아래에 위치시키는 복잡한 알고리즘에 의해 순위 매겨진다. 


추가로, 페이지는 페이지가 끝없이 스크롤되는 것을 뜻하는 '인피니티 스크롤'에 기반했다. 당신이 스크롤을 계속하는 한 구글 플러스는 당신에게 더욱더 많은 포스팅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그것은 당신이 실제로는 절대 '다 볼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끝이나 종료가 없다. 그것은 각각의 사용자가 결국에는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멈춰야 한다는 뜻이다.


엄마의 편지처럼 중요한 것들의 경우, 당신은 당신이 읽는 것을 완전히 컨트롤하고 싶어 한다.


내 생각에는 이 두 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친밀한 관계" 목적의 커뮤니티 형성은 사실상 끝장이 났다. 내 여동생이 내게 메시지를 보낼 때 그것이 내 스트림의 상위에 노출된다는 보장이 없었고 그것이 만약 하위에 노출된다면 내가 포스팅을 보는 것을 멈추기 전에 그것을 볼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내 여동생이 내가 그녀의 메시지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모른다는 것은 더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랭킹이 가진 문제는 그것이 독자의 통제권을 앗아가 버린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도 누가 무엇이 중요하고 흥미로운지를 결정하는가? 구글 플러스의 리더들은 랭킹이 중요한 키라고 확신했지만-구글의 모든 성공은 랭킹 알고리즘에 기반한다-더 괜찮고 더 개인화된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었다.


랭킹은 우선순위가 낮은 정보를 브라우징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신문을 읽는 것 같은 '훑어보는' 행동). 왜냐하면 누구도 읽을 것과 읽지 않을 것에 대해 수백 가지의 결정을 하기를 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동화된 '큐레이터'를 가지는 것은 이 맥락에 어울린다. 그러나 중요한 정보-엄마의 편지 같은-에 대해서는 당신은 당신이 읽는 것에 대해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기를 원한다(이것은 '구글 수신함'이 사용되지 못한 또 다른 이유이다). 결과적으로 사용자들은 친구나 가족에게 게시물을 보내는 것이 높은 확률로 수신자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빠르게 학습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메일이나 Gchat을 사용하는 것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구글은 당신을 특정해서 보내졌거나 중요도가 높은 메시지 리스트를 보여주는 모든 구글 애플리케이션에서 확인 가능한 별도 인터페이스의 "알람" 기능을 넣었다. 그러나 이것은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 너무 늦었다. 그리고 둘째, 핵심 문제를 고치는 대신에 별도의 독립 인터페이스를 창조함으로써 구글은 전체적인 사용자 경험을 약화시켰다. 그것은 당신이 완전한 구글 플러스 경험을 하기를 원한다면(스트림과 친밀한 개인 메시지 둘 다), 당신이 많은 메시지를 두 번씩 익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랭크의 더 많은 문제점으로 나는 인피니티 스크롤 뷰를 언급해야겠다. "여기까지 읽었음" 마크가 없었기 때문에 스크롤할 때 당신이 어떤 포스트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아는 방법은 그것을 확인하는 것밖에 없었다. '포지티브'한 문제은 당신이 그 아티클을 이미 읽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다시 보여주지 않는 것이고 '네거티브' 한 문제는 당신이 똑같은 포스팅을 계속해서 봐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유저 인터페이스 디자이너가 인터페이스를 가능한 단순화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각각의 포스팅 당 '읽었음' 표시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들이 그들 자신의 똑똑함과 사랑에 빠져 그 결정의 부정적인 면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페이스북의 뉴스 피드도 랭킹을 포함하여 내가 여기서 언급한 것과 동일한 디자인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다이렉트로 보내지는 중요한 메시지는 이메일처럼 기능하는 전용 채널을 가지고 있고 랭킹보다도 철저하게 시간순으로 정렬되며 명확한 '읽었음' 기능을 지원한다. 랭킹과 알고리즘은 오직 필수적이지 않은 포스팅에만 적용된다.


페이스북의 디자이너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일어날 때 모든 상황에 맞는 단 하나의 만능 수단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특히 사람 간의 관계에서는 필수적인 것과 필수적이지 않은 것, 긴급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차이가 있으며 그것들은 유저 인터페이스를 단순화하려는 목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단일한 틀에 함께 던져져서는 안 된다.




3. 부자연스러운 성장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구글 플러스가 처음에 론칭했을 때 그것은 꽤나 신선하고 활기차 보였다. 참여도가 높은 사용자들도 많았고 흥미로운 주제로 이야기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었다. Wil Wheaton을 처음으로 팔로우했을 때 내가 느꼈던 그 흥분을 기억한다. 네트워크는 느리게, 자연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구글 사용자들을 구글 플러스에 한 번에 넣어버리면서 바뀌어버렸다.


다시 말하지만 경영진들은 페이스북을 이기기 위해 규모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구글 계정을 가지고 있는 수억 명의 사용자가 있었다. 어떻게 구글 사용자들 모두가 구글 플러스를 사용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프로젝트 Hancock은 그것을 하기 위해 디자인된 프로젝트의 코드 네임이었다. 그것은 모든 구글 사용자들을 위해 구글 플러스 계정을 마련했다. 이것은 실제로는 듣기보다 훨씬 복잡해서 그것을 위해 한 팀의 엔지니어가 석 달을 매달려야 했다.


갑자기 구글 플러스는 수백만명의 신규 사용자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중 다수는 그 사용자들을 우리의 구글 플러스 서클에 넣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단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신규 사용자의 많은 이들이 대답하지 않거나 어떤 방식으로도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작업 이후에 나는 즉시 사람들로부터 구글 플러스가 '고스트 마을' 같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전통적인 의미의 텅 비고 버려진 고스트 마을은 아니었다. 그것은 고스트들이 거주하는 마을에 가까웠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고스트 계정' 말이다. Hancck은 수백만명의 새로운 구글 플러스 사용자를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한 것은 수백만 개의 계정을 만든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계정들이 문제가 되었다.


GET에서의 업무의 일부로 나는 분석팀과 긴밀하게 협업했다. 매주 우리는 그 팀의 멤버로부터 심도 있는 통계법 또는 분석을 사용한 한 시간짜리 프레젠테이션을 들었다. 프레젠테이션 중 하나는 비활성화 상태 계정의 영향에 관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속담은 말한다.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 즉 당신의 서클이 클수록 당신은 참여도가 높은 사용자이기 쉽다. 그러나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 상황은 "활성화된 친구가 많을수록 좋다." 사실은 사용자 참여도와 당신의 서클 내에서 비활성화된 친구들의 숫자 사이에 약간의 부정적 상관관계가 있었다.


근본적으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서클 내에 비활성화된 친구가 많이 있으면 당신이 좋지 못한 사용자 경험을 가지게 되고 결국 참여도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서클은 작고 활성화된 사용자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낫다. 불행하게도 사용자들은 그들의 친구 중 누가 활성화되어 있고 누구는 아닌지 알기가 어려웠다.


페이스북 같은 대칭적인 팔로잉 모델에서는 "친구"가 되기 위해서 처음에 활성화 상태에서 초대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가 덜 된다. 내 생각에는 Hancock 프로젝트가 구글 플러스를 회복할 수 없는 쇠락의 길로 이끌었다. 이 세 가지 요소의 결합-비대칭적 팔로잉, 지나친 랭킹 의존, 그리고 많은 숫자의 비활성화된 계정들-은 가족이나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이것을 상대방이 볼 수 있을지를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페이스북에서는 내 여동생과 빠르고 불꽃 튀는 1:1 대화가 가능하며 우리 모두 이 메시지가 상대방에게 도착하고 읽힐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구글에서는 그런 대화를 하기 위해서 구글 플러스를 나가 지메일이나 행아웃 같은 다른 앱을 사용해야 했다. 더 중요하게는,  구글 플러스의 서클과 팔로잉 모델을 나가서 지메일 계정 같은 다른 연결 세트를 사용해야 했다. 이 약점은 '친밀한 관계'의 소셜 네트워크에 제공해야 하는 전체적인 디자인 목표를 경시한 것이다.   




왜 이 문제들을 고치지 못했을까? 그룹 싱크의 문제점

구글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왜 이들이 이 문제를 일찍이 발견하고 해결하지 않았을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인식하고 바꾸기 위해 경영진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2011년 초, 나는 구글에 있는 카페 중 하나에서 구글 플러스의 리더인 Vic Gundotra와 점심을 먹었다.  Gundotra는 보통 나 같은 미드레벨 엔지니어와 밥을 먹지 않지만 나의 게임 개발자로서의 이전 커리어를 듣고 흥미를 느꼈던 것이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나에게 구글 플러스에서 무엇을 바꾸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비대칭적 팔로잉 모델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매우 열정적으로 반론하면서 비대칭적 팔로잉 모델이 그가 지금까지 이 프로젝트에서 만든 결정 중에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경영진들이 당신보다 열 배는 더 버는 매우 똑똑한 사람일 때, 그들은 당신이 하는 말을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언급한 다른 문제-랭킹, 인피니티 스크롤과 자연스럽지 않은 성장- 역시 매니저와 다른 다양한 의사결정자들에게 제기되었다. 그것들이 바로 기각당했던 것은 아니다. 대신에 담당자들로부터 자세하고 논리 정연한 논거로 왜 그들의 방식이 최선의 결정이었는지 반박당했을 뿐이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맞는 것인지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현재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명확한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경영진들이 당신보다 열 배는 더 버는 매우 똑똑한 사람일 때, 그들은 당신이 하는 말을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그러나 경영진들이 그들이 맡고 있는 프로덕트의 한 부분에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완전히 몰입해있었다. 그들은 그들과 똑같이 생각하는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 결과는 클래식한 그룹 싱크 시나리오와 동일하다. 어떤 일을 특정한 방법-사용자가 그들이 볼 것을 스스로 선택하게 두는 대신에 똑똑하고 복잡한 알고리즘으로 추천해줘야 한다는-으로 해야 한다는 강한 편향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제나 구글에서 효과가 있었고 페이스북에서 그보다는 덜 효과가 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몇 년이 지나서 초기 디자인 가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점차 확실해졌다. 하지만 이미 바꾸기에는 늦었다. 이미 수억 개의 관계가 쌓아진 팔로잉 모델을 개편하는 것은 사용자에게 너무 방해가 되는 일이었다. 우리가 어떤 길을 한 번 가기 시작하면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후유증

2014년에 구글 플러스는 "넥스트 페이스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나는 새 리더인 David Besbris가 주최한 많은 오픈 전략 회의에 참석했었다. 그의 전임자와는 다르게 그는 프로덕트의 근본적인 변화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전략은 일종의 진정제에 불과했다. 요약하면 구글 플러스는 '친밀한 관계' 네트워크를 포기했다. 대신에 그들은 '관심사' 네트워크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즉,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되 반드시 서로 실제로 알 필요는 없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말이다. 구글 플러스의 많은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들은 여전히 잘 동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집중한다면 아마도 프로덕트가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본 것이다.


달리 말하면 '넥스트 페이스북'이 되는 대신에 '넥스트 텀블러'가 되려는 것이었다.


그 시점에 나는 구글 플러스 팀을 떠나 자바스크립트 시스템 그룹에서 일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작업이 구글 플러스와 연관되어 있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프로덕트 팀 소속은 아니었다. 나는 구글을 2015년에 떠났고 그 뒤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구글 플러스가 그 해 4월 2일에 마침내 서비스를 닫기까지 계속 내리막을 걸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구글 플러스가 성공하기를 바랐다.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듯이 구글 플러스에는 미묘한 디자인 요소를 포함하여 페이스북이나 다른 소셜 네트워크보다 월등한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 많았었다. 그리고 나는 프로덕트로서나 회사로나 페이스북을 정말 싫어한다. 그 말 뜻은 내가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페이스북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페이스북의 단점을 가지지 않은 새로운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일견 희망이 없어 보인다. 엄청난 자본과 능력을 가진 구글조차도 결국 실패했다. 그러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구글 플러스는 페이스북이 물리칠 수 없는 상대이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가졌던 심각한 결점 때문에 실패했다. 그리고 그 결함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다음 원문의 번역입니다.

저자 : Talin

번역자 : 곽나래

원문 링크 : https://onezero.medium.com/why-google-failed-4b9db05b97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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