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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나래 Oct 04. 2020

차도르에도 디테일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우리는 아는 만큼만 본다



인스타그램은 추억을 기록하는 데 좋은 도구다. 더구나 기록에 그치지 않고 1년 전 오늘, 3년 전 오늘에 올린 사진을 불러와서 잊고 있던 기억을 상기시켜 주곤 한다.


띵동. 알람이 울렸다. 1년 전 내가 아부다비에 있었다고 한다. 아부다비라니.. 코로나로 해외 여행길이 막혀버린 이 시국에 정말 이질적인 기억이다. 자유롭게 아랍 거리를 누비던 과거의 나 자신이 부럽다. 불과 1년 전 나를 이렇게 부러워하게 될 줄이야.. 그래서 쓰기로 했다. 아부다비 여행 1주년 여행기.


아부다비는 아랍 에미레이트 연합의 수도이다. 한국에서 유럽가는 길목에 자리해 있어 유럽여행시 환승지로 많이 이용한다.



왜 갑자기 아부다비였나?

목적지는 유럽이었는데 환승으로 좀 색다른 곳을 가고 싶었다. 그리고 중동 항공사가 좋았다. 산유국의 위엄으로 대한항공이 몇 대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A380을 잔뜩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네 나라에 스탑 오버하게 하려고 각종 특전을 제공하는데 그 클라스가 어마어마했다. 당시 에티하드 항공은 스탑 오버하면 4성급 이상 호텔 숙박을 최대 2일까지 제공했다. 그야말로 산유국 클라스! 이론 상으로는 프라이빗 비치가 딸린 5성급 호텔도 예약 가능했다. 물론 나는 출발 2주 전에 예약해서 그런지 그렇게 좋은 호텔은 가지 못했지만..


암스테르담을 거쳐 포르투갈을 여행하고 마드리드에서 귀국하는 길. 마드리드를 이륙한 비행기가 한 밤 중에 아부다비 국제공항에 내렸다.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이국적인 느낌. 차원이 다른 더위. 영화 속에서 보던 하얀색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들이 에어팟을 꽂고 슬리퍼를 끌며 돌아다니는 곳. 아, 여기가 중동이다!



슈퍼리치 만수르. 그가 바로 아부다비 왕자다. 아부다비에서는 이런 전통의상 입은 남자들이 돌아다닌다.


여행 준비가 귀찮아서 강제로 씩씩해지는 타입

평소에 귀찮아서 여행 준비를 잘 안 하는 편이다. 비행 편과 호텔 정도만 사전에 예약해놓고 나머지는 그냥 공항 내려서 찾는다. 특히 이번 여행에서는 환전하는 것도 잊어버려서 in이었던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ATM 환전했던 터였다(8만 원 정도 손해 봤다). 고작 1박 2일 스탑 오버하는 아부다비 여행에 대해서 준비를 해갔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예전에 두바이에 한 번 가봤던 터라 낯선 중동에 대한 두려움 대신 '글로벌 도시니까 괜찮겠지' 하는 근자감이 자리한 터였다.


그래서 그냥 내렸다. 아, 그런데 구글 지도로 길 찾기가 안 된다. 지도가 보이긴 하는데 경로 찾기도 안 되고 대중교통 정보 연결도 안 되어 있다. 아무래도 외국기업에 상세 지도 반출을 안 하는 것 같다.. 여하튼 그래서 자력으로 길을 찾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런 것도 안 알아보고 한밤 중에 홀로 중동의 공항에 내려서야 깨닫는 나의 대책 없음이란....



그래도 뭐, 약간 어려움이 있어야 여행이 재밌으니까^^; 정신 승리하면서 인포메이션에 나 어디 어디 호텔에 가야 하니 길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공항버스 타고 어디서 내려서 걸으라고 알려줬는데.. 알고 보니 정류장에서 내려서 한참 걸어가야 하는 거였다.


벌써 밤 10시가 넘은 시간. 무슬림 국가라 길거리에 술집도 없고 연 가게도 많지 않고 그냥 밤거리에 사람이 거의 안 다니더라. 그 낯선 땅에서 나 혼자 캐리어를 끌고 호텔을 찾아가는데 무섭고 힘들고 후회가 막심했다. 돈 아낄 생각 말고 그냥 택시 탈걸.. 이럴 때 쓰라고 돈 번 건데.. 이미 늦었으니 어쩔 수 없이 씩씩하게 걸었다. 강제로 자립심이 상승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밤뿐만 아니라 낮에도 외국인 여자 혼자 다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뭐 딱히 혼자 올만한 여행지는 아니라 그런 것 같고 치안도 좋아 보여서 위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갔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생각 없이 다녀서 몸도 고생하고 돈도 손해 볼 때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고 본다. 첫 번째로, 재밌다. 원래 퀘스트가 너무 쉬우면 시시하고 너무 어려우면 좌절하지 않나. 적당한 난이도의 퀘스트는 인생에 활력을 가져다 주니 정신 건강에 좋다. 이렇게 글 쓸 콘텐츠도 나오고.

두 번째로 사전 조사가 없었기 때문에 내 눈에 보이는 생경한 정보들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충격과 함께 사고가 확장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렇게 글 쓸 콘텐츠가 나온다. 




아부다비에서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정말, 아는 만큼만 본다는 것.


아부다비 한 쇼핑몰의 차도르 옷 가게. 자세히 보면 디테일이 다 다르다.


차도르에도 당연히(!) 디테일이 있다

사람이 입는 옷에 개성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아부다비에 가기 전까지는 차도르에도 디테일이 있다는 것을 인지해본 적이 없었다. 무슬림 여성이 지나가면 "전통 의상을 입었네" 정도로만 생각했고 갖가지 전통 의상 종류를 배운 뒤에도 "히잡이네" 아니면 "부르카를 입었네" 정도로만 생각했다. 옷마다 디테일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본 적도 없었다.


잠깐 상식. 무슬림 전통의상의 종류. 아부다비에서는 주로 차도르를 입고 다닌다.


아부다비에 있는 쇼핑몰에서 수십, 수백 벌의 차도르가 각각의 디테일을 뽐내며 걸려 있는 모습을 보고 난 뒤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 이슬람 전통의상도 각각의 디자인이 있구나. 이 사람들이 각기 다른 옷을 사는 것이구나. 너무 당연한 데도 한 번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정말 신기하게도, 지나가는 무슬림 여성들의 옷에서 디테일이 보였다. 저 사람의 옷에는 소매에 자수가 있고, 오른쪽 여자 옷에는 옷깃에, 왼쪽 여자 옷에는 치맛단에 장식이 있었다. 이제는 보인다. 그리고 사람은 정말로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본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 아닐까?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갈등이 개인이 처한 입장과 경험 차이로 인해 빚어지는 것들이 많다. 그 입장에 처해보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공감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서로를 쉽사리 비난하고 논의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부다비 셰이크 자이크 모스크. 일명 그랜드 모스크에서 차도르를 입고 찍은 사진. 여기 들어가려면 여자는 얼굴 빼고 몸을 모두 가려야 해서 이 옷을 빌려준다.



우버를 부르면 렉서스가 온다

아랍 에미레이트는 산유국이고 아부다비는 그 수도이다. 부자나라라는 뜻이다. 그래서 왕궁 화려하고 호텔 좋고, 부유한 도시인 것이 잘 느껴졌다. 그런데 또 놀람 포인트가 있었다. 우버를 부를 때마다 렉서스가 오는 것이다.


산유국이자 만수르(아부다비 왕족이다)의 나라니 돈이 많겠거니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우버 기사들이 모두 렉서스를 타고 다닌다고..? 다섯 번을 불렀는데 네 번을 갓 뽑은 것 같은 렉서스가 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우버의 평균치와 너무 다르지 않은가. 미국에서 우버 부르면 낡은 도요타 캠리 정도가 오곤 했는데.. 의아함이 커졌다.


세 번쯤 탔을 때 비밀이 밝혀졌다. 우버 기사가 아주 투머치 토커였기 때문에 묻지도 않은 정보까지 술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여기 우버는 그냥 개인 사업자가 드라이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회사가 낀 프리미엄 서비스였다. 어쩐지 우버를 부를 때 나오는 서비스 명이 기존에 흔히 봤던 우버 X가 아니라 우버 셀렉트 더라니.. 렉서스는 회사 소유로 주로 파키스탄 등지에서 리크루팅을 해서 아랍에미레이트 연합 취업 비자를 주면서 우버 기사로 고용하는 것이었다.


사실 아부다비 원주민들은 공기업이나 정부 기관에서 관리자로 일하는 경우가 많고(국적이 금수저..) 실제 우리가 여행 가서 부딪히는 우버 기사, 호텔 직원, 음식점 직원 들은 대부분 이민자라고 한다. 어쩐지 대화하는 사람마다 파키스탄 사람이어서 여기가 아랍 에미레이트인지 파키스탄인지 의아하던 터였는데.. 이 곳은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으로 굴러가는 도시였다.


아부다비 다운타운. 분노의 질주 7 촬영지로 유명하다.


빛나는 미래를 꿈꾸며 낯선 타국에서 땀 흘리는 그들. 그런데 여기서 먹고사는 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버 기사 Farid 왈, 회사에 사납금을 내야 하는데 자신의 경우 그 금액이 월에 7000 디르함(한화 220만 원가량)에 달한다고 한다. "헐, 그렇게 많이 내면 남는 게 있어?"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여름 비수기이기 때문에 관광객이 없고(아부다비는 여름이 비수기고 겨울이 성수기다. 여름은 한낮에는 밖에 5분 이상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덥기 때문), 그래서 남는 게 없어서 저번 달에는 손해를 봤다고 한다. 노동 계약도 표준 계약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각 기사가 각각 체결하기 때문에 기사마다 계약이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보통 기사가 아주 불리한 위치에 놓이며 조건이 회사의 니즈에 따라 자꾸 바뀐다고 했다.


"그럼 그만두고 다른 일 찾는 게 좋지 않아?" 그럴 수가 없다고 했다. 비자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직장을 잃으면 비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아랍 에미레이트에서 출국해야 하고, 그래서 쉽사리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했다.


게다가 어쨌든 우버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으니 우버에도 수익을 정산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택시가 있던 시장에 우버가 들어왔는데 형태가 변형되어 수수료를 가져가는 체계만 늘어나지 않았나.. 잠시 아부다비 외국인 노동자의 처지와 불합리한 계약구조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주제에 대해 내 평생 가장 많이 생각한 시간일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독자분들도 이 글 덕분에, 혹시나 아랍에미레이트에 가게 되면, 직원들이 다들 파키스탄 사람이라는 걸 눈치채시겠죠. 이렇게 잡지식이 늘어납니다.


산유국 클라스, 진짜 24K 금가루를 뿌린 카페라떼. 에미레이트 팔리스 호텔에서 판매한다.


산유국 클라스! 진짜 금을 뿌린 커피를 판다

아부다비는 호텔의 호화로움이 상상 이상이다. 특히 국내에는 7성급으로 알려졌을 만큼 엄청나게 화려한 에미레이트 팰리스 호텔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이 호텔은 실내가 온통 금색인데 소문에 의하면 진짜 금을 발랐다고 한다. 투숙객이거나 호텔 1층에 있는 Le Cafe에 예약한 사람이 아니면 출입할 수조차 없다.


Le Cafe에서는 사치의 끝판왕, 진짜 24K 금가루를 뿌린 커피를 판다. 이게 정말 사치를 위한 사치인 것이, 사실 금은 아무 맛도 안 난다. 단지 사진이 잘 나오고, '내가 24K 금을 뿌린 커피를 마셔봤다'는 경험적 측면에서 가치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말 인스타그래머블한 콘텐츠였다. 그래, 장사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놓치지 않고 Le Cafe에 예약까지 걸어서 깨알같이 마시고 왔다. 커피에 마카롱, 대추 과자(이나라 특산물이다)까지 세트로 나왔는데 한화로 3만 원대였던 것 같다. 호텔 급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별로 안 비싸다. 그래요, 저, 금가루 뿌린 커피 마셔봤습니다. 여러분도 코로나 사태가 끝나게 되면 꼭 한 번 가보시길.


온통 금으로 바른 호텔이다.



P.S. 결국 요약하자면 생각 없이 여행을 막 다녀서 좋은 점은, 썰 풀 콘텐츠가 나온다는 것인데. 콘텐츠가 밥 벌어 주는 시대에 참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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