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희
삶은 배추의 물기를 짜서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조물조물 무치니 향긋한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아궁이 솥에서 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자 어머니가 뚜껑을 열고 주걱으로 조심스럽게 밥을 퍼 냈다. 미리 구워 놓은 생선과 구수하게 끓어오르는 된장찌개까지 상에 올리니 진수성찬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성스러운 밥상이 차려졌다.
부엌문을 열고 내다보니 앞마당에서 상연이 아들 희준과 비석 치기를 하고 있었다. 희준은 이리저리 천방지축 뛰고 상연은 그런 아들이 귀여운지 연신 웃었다. 병원에서는 보지 못한 행복한 얼굴이다.
“식사합시다! 희준아! 밥 먹자!”
소리치자 희준이 돌을 던지고 달려오고 상연은 걷어붙인 셔츠 소매를 내리며 걸어왔다. 초가집 작은 마루에 밥상을 놓고 넷이 둘러앉자 집안이 풍성해진 느낌이었다. 어머니가 신경을 써서 요리한 음식은 오늘따라 더 맛이 있었다.
씻어 나온 상추에 밥을 얻고 된장을 푹 넣어 입 안에 넣으니 꿀맛이었다. 그런데 앞에 앉은 상연은 젓가락으로 밥을 깨작거리고 먹었다. 사내가 좀스럽게! 커다란 상추에 밥을 얹고 생선 한 조각을 떼어 된장과 함께 올려 상추쌈을 만들고는 상연 앞으로 내밀었다.
“입 벌려요!”
상연이 눈이 커지더니 당황했다.
“두세요! 제가 먹을게요.”
옆에서 보던 어머니가 거들었다.
“얘가 만드는 상추쌈이 진짜 꿀맛이에요. 그냥 받아먹어요.”
상연이 민망하게 보더니 입을 벌렸다. 커다란 상추쌈을 입에 넣어 주자 그가 우걱우걱 씹는데 너무 마음이 좋았다. 뭘 많이 먹는 걸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먹여주니 보는 내가 배가 부른 것 같았다. 그도 처음에는 약간 찡그린 얼굴이었다가 점점 펴졌다. 끝까지 알뜰하게 씹었다.
“아저씨! 맛나지? 우리 엄마 상추쌈이 제일 맛있어.”
희준이 묻자 상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같이 놀아주는 걸 보니 상연이 환자를 대할 때와는 달리 참 다정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그가 자주 웃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가는 그를 배웅하는 동네 길, 밤하늘에 둥근달이 탐스럽게 떠 있었다.
“전 최 선생님이 동경 의대를 나온 천재라는 얘기를 듣고 당연히 일본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지금까지 일본인 행세하셨어요?”
그의 얼굴이 좀 굳었다. 불편한 질문이었나?
“조선인인 게 싫었습니다. 일본인이 되고 싶었어요.”
뭐라고? 발을 멈추고 그를 노려 보았다. 그가 찌푸린 얼굴을 보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이 나라가 일본에게 합병된 게 누구 탓인 거 같아요? 조선 왕이 잘못해서 그런 겁니다. 통치를 잘못해서 백성들을 굶어 죽게 만들면서 자기 자리 보전하느라 일본한테 나라를 팔아넘긴 거 아닙니까?”
할 말이 없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멀리서 개 짖는 소리만 들리고 너무나 고요했다. 그리고 너무나 오랜만에 남자랑 단 둘이 걸어서 그런지 조용한 게 어색했다. 아무 말이나 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어떻게 조선인인 걸 모를 수 있어요?”
“동경 의대 스승님이 있었는데 여기 추천하면서 일본인으로 써서 보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침묵이 시작되고 발소리만 들렸다.
“남편은 어디 갔어요?”
침묵을 깨고 상연이 물었다.
“남편은 죽었어요. 희준이 2살 때.”
“그럼 간호사는 어떻게 된 거예요?”
“남편이 죽자 아이랑 계속 시집에서 사는 게 너무 싫었어요. 시어머니 구박받으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그렇게 죽을 때까지 사는 건 정말 싫더라고요. 그래서 희준이 업고 시집 패물 훔쳐서 도망 나왔어요. 패물은 양육비 아니겠어요? 친정어머니 모시고 수원 가서 고등 여학교랑 간호조무사 학교를 나왔지요.”
나도 모르게 어쩌면 좀 위험할지도 모르는 과거사가 줄줄 흘러나왔다. 세미를 빼면 남들한테는 하지 않았다. 상연에게 마음이 풀어졌나? 마음이 졸여졌다. 그가 어떤 반응을 할지.
“여자 대장부네. 하하!”
상연이 크게 웃자 안심이 되었다. 욕을 하거나 비웃을 줄 알았는데 마음이 넓은 남자구나.
“학교 다닐 때 제가 왕언니였어요. 동급생들보다 항상 3살이 더 많았거든요. 선생님도 저보다 두 살 아래죠?”
상연이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이제부터는 나를 누님이라고 부르세요. 하하!”
상연이 피식 웃었다.
“그래요. 남들 보지 않는 데서는요.”
그 말이 참 다정했다.
“난 상연 씨라고 부를게요.”
“좋아요. 남들이 보지 않는 데서요. 하하”
상연도 웃고 나도 마주 보고 웃었다. 밤하늘에 떠 있던 보름달도 환하게 웃는 것 같았다.
고향에서 도망 나와 창덕궁에 온 건 순전히 화강 때문이었다. 궁궐 문 앞에서 수문장에게 ‘고등여학교 동창 임서경이 찾아왔다’이라고 밝혔다.
잠시 후 상궁이 나와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이렇게 궁 안으로 들어온 건 처음이라 정신없이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궁궐 담을 따라 조용히 상궁을 따라가면서도 어마무시한 인정전, 상대적으로 작은 집무실인 희정전을 먼발치로 보았다. 한참을 걸어 왕과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을 지나 내전으로 들어가 대비가 사는 통면전 뒤편 침전 구역으로 갔다.
기와지붕 아래에는 방들이 많았는데 한 곳에서 피아노 소리가 났다. 익숙한 쇼팽의 피아노 곡이었다. 그 방 앞에 상궁이 멈추더니 ‘마마, 동무 오셨습니다’하고 아뢰고는 문을 열었다. 안에는 피아노를 치다가 멈춘 화강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궁중 공주복 차림으로 피아노라니 좀 어색했다.
“어서 오거라”
화강이 근엄하게 말하는데 ‘뭐야! 고등학교 친구한테...’ 말할 뻔했다. 하지만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상궁의 눈치를 살피고는 입을 다물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 상궁이 뒤에서 문을 닫자마자 화강이 근엄한 얼굴을 펴더니 냉큼 일어나 포옹했다.
“반가워. 함흥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대!!”
공주의 품격은 사라지고 고등 여학생 얼굴이 되었다.
“공주 노릇 하느라 애쓰지비.”
화강이 몸을 떼더니 넓은 비단 치마 자락을 손으로 쓸며 울상을 지었다.
“휴. 숨 막히다 너 보니까 숨이 돌아가네. 그런데 너 차림이 이게 뭐니? 아직도 흰 저고리 검은 치마야?”
외모에 신경 쓰는 공주한테 딱 걸렸다. 궁에 들어오는데 좀 신경 쓸 걸 그랬나? 그러기에는 정신이 없었다.
“이거이 어때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슴둥. 부모님 몰래 도망 나왔잖니?”
“도망?”
“길치. 방문을 밖에서 걸어 잠갔는데 창문은 잠그는 걸 잊으셨음메. 주신 용돈 챙겨서 창문 넘어 왔슴둥.”
“음 하하하! 이 천하의 불효녀야!”
화강이 공주 체통 따위는 버리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웃었다.
“인차 내레 함흥에서 못 살겠슴둥. 어케 경찰이 쫓아다니는지 숨을 쉴 수가 없지비. 경성에 있어야 하겠슴둥.”
화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하려고?”
“여성 야학을 열까 하지비. 기래도 내레 교사 아니갔니?”
“여성 야학? 쉽지 않을 텐데. ”
“기래 내레 생각하는 거이 좀 있슴둥. 강연회를 해서 돈을 모을까 함메.”
“오! 함흥의 처녀 애국자? 너가 전국적으로 유명하지. 신문에서 봤어.”
그때 밖에서 상궁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마! 밖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우리는 말을 멈추고 문 쪽을 돌아보았다.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문이 열리고 상궁이 들어와 화강에게 접힌 종이를 건넸다. 종이를 펴 본 화강의 얼굴이 갑자기 하얘졌다.
“필용 씨가!! 믿을 수 없어!”
화강이 벌떡 일어나더니 방을 뛰쳐나갔다. 마루에서 뛰어내리더니 고무신도 신지 않고 미친년처럼 뛰어 나갔다. 달리다가 치마 자락에 발이 걸려 철퍼덕 땅으로 넘어졌지만 다시 벌떡 일어나 아프지도 않은지 버선발로 달려 나갔다. 하얀 얼굴에 정신이 없었다. 화강을 쫓아 달렸다.
이불 위 남자는 퀭한 얼굴에 눈이 쑥 들어가 있었고 덮고 있는 이불에 핏자국이 흘러 있었다. 화강은 보자마자 미친년처럼 소리 질렀다.
“필용 씨! 필용 씨! 정신 차려! 죽은 거 아니지!”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 않고 화강은 시체로 달려들어 얼굴을 잡고 몸부림은 쳤다. 공주의 체면도 잊고. 뒤에서 울던 사람들도 다 쳐다보았다.
시체 위에 엎드려 몸부림을 치는 화강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감옥에서도 화강은 가끔 필용의 얘기를 했다. 경성역에서 자신을 보호해 주었으며 지금 남자 옥사에 있다고.
필용의 부모마저 당황해 보고 있어서 화강을 진정시켜야 했다.
“정신 차림둥! 다들 보고 있슴메.”
그러나 화강은 멈추지 않았다.
“일어나! 필용 씨! 일어나라고!”
너무 몸부림을 쳐서 화강을 안아 일으켰다.
“놔! 놓으라고!”
화강이 내 손을 뿌리치더니 필용의 얼굴로 다가가 엉엉 울면서 두 손으로 필용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시체가 되어 창백한 얼굴에 자기 얼굴을 가까이 대더니 입술을 맞췄다. 헉하는 소리가 나며 주변에서 흐르던 울음소리마저 멈췄다.
나는 몸을 잡아당겼지만 화강은 한번 더 시체와 입을 맞췄다. 좀 소름이 끼쳤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마저 들렸다. 하인들이 와서 화강을 시체에서 떨어뜨렸다. 화강은 그대로 내 품 안에 무너져 흐느꼈다. 부스러지는 허수아비 같았다.
시체와의 입맞춤 사건 이후 화강은 궁 안에 갇혔다. 나도 만날 수 없었다. 어쩌면 화강 자신이 시체가 된 것 같았다. 필용의 장례식에서도 화강은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조선 최고의 신여성이 애인의 죽음을 맞아 저토록 쉽게 무너지다니. 너무 안타까웠다. 자신조차 주체하지 못하고 연애 속에 자신을 내던지다니. 이토록 엄혹한 시기에.
나는 원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일단 종로극장을 찾아갔다. 종로 경찰서 맞은편 가장 번화한 종로 거리에 있다. 극장 입구에는 영화 ‘장한몽’ 간판이 크게 걸려 있었다. 무조건 안쪽으로 들어가 사장을 찾았다.
“강연회를 하려고 함메.”
사장에게 얘기하자 처음에는 비웃는 얼굴이었다.
“댁은 뉘시오?”
“함흥에서 온 임서경이라고 함둥”
“임서경? 오! 처녀 애국자!!”
사장은 금세 알아보았다.
“근데 무슨 강연회입니까? 애국 운동 이런 거 안 됩니다. 경찰 허가 안 나요.”
물론 알고 있었다. 미리 생각해 둔 대로 알려 주었다.
“신여성의 연애이기요.”
사장의 얼굴이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