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스텔라 작가의 푸드 에세이
결혼을 하고 처음 시댁 제사에 가서 음식 준비를 하는 데 놀랐다. 시어머니가 배추 전을 잔뜩 부쳤다. 그때 이미 나는 서른 살이 넘었지만 배추로 전을 부치는 건 그때 처음 보았다. 배추처럼 맛없는 채소로 전을 만들어 먹다니. 내게 전은 동태 전, 육전, 고구마 전, 호박전 같은 것들이었다. 바삭바삭하고 맛났다.
그런데 밍밍하고 아무런 맛이 없는 배춧잎으로 전을 만들어 먹는 건 내게 신세계였다. 시댁에 명태 전 같은 건 없었다. 나는 강원도 강릉이 고향이라 동태로 전을 만들어 먹었다. 짧쪼름하고 고소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두터운 배춧잎을 깨끗이 씻어 소금으로 간을 하고 얇고 묽은 밀가루물을 묻혀 기름을 달달 두른 팬에 붙여서 금방 익은 배추 전을 내게 내밀었다. 익숙하지 않아 억지로 예의상 먹었다. 조금 먹고는 먹지 않았다.
해마다 명절에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와 큰 형님은 꼭 배추 전을 잔뜩 만들었다. 그리고 남은 배추 전을 집에 가서 먹으라고 싸주셨다. 나는 마뜩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정성을 생각해서 받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먹지 않고 ‘너네 집 배추전이다’하고 남편에게만 데워 주었다.
그렇게 10년이 흐르자 배추전이 맛있어지기 시작했다. 설날 명절에 시어머니가 금방 부쳐주시는 혹은 내가 금방 부친 배추전이 달달해졌다. 나도 시댁 문화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거다.
이명진 작가가 쓴 에세이 ‘한 입 가득 위로가 필요해’는 그런 이야기가 펼쳐진 요리 에세이이다. 음식 하나마다 엮어진 사연을 소개하며 인생의 의미를 풀어놓는다. 작가는 큰 어려움 없이 자라고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았는데 남편이 갑자기 큰 사업 실패를 겪으며 집을 팔고 시댁으로 들어가게 된다. 당시 시댁에는 시어머니가 치매로 누워 있었고, 시아버지는 암투병을 하고 계셨다.
작가는 시부모를 챙기며 하루 종일 요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세끼 아픈 시부모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아이들을 먹여야 했다. 숨 막히는 상황이었다. 이 책에는 아픈 노인들에게 어떤 음식을 준비했는지 어떻게 요리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모든 요리에는 작가의 어려움과 마음이 담겨 있다.
아픈 시부모에 대한,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남편에 대한, 엄마가 우주인 아이들에 대한 그리고 무엇보다 숨이 막히는 절망을 겪어낸 자신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음식들이 기록되어 있다.
작가는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는 요리를 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요리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그만 힘을 내어 칼질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잘하고 능숙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하나씩 생길 것이다.’ 요리는 절망에 빠진 작가를 살게 하는 행위였고 음식들은 힘을 주었다.
이 요리 에세이를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은 음식의 맛에 대해 표현이 생생하고 찰지다는 것이다. ‘뭉근하게 오래 끓인 배춧국을 한 그릇 크게 떠먹으면 몸속 혈관들이 확장되며 땀이 흐르고 콧물이 살짝 흐르기도 한다. 그러면 그 순간 몸은 개운하고 속은 든든하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면 오늘도 수고했다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느낌이 든다. 온몸의 근육들이 풀리고 답답한 마음도 뻥 뚫린다. 스산한 계절에는 배춧국만 한 것이 없다.’ 마치 내가 배춧국을 한 국자 입속에 넣고 먹는 것 같았다.
배추 전을 어떻게 되었냐고? 나는 요즘 시장에서 배추를 사다가 스스로 배추 전을 해 먹는다. 금방 한 배추 전은 진짜 달달하고 고소하다. 배추 전을 씹으면 이제는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고생과 착하고 순한 마음이 생각이 난다. 브런치에서 스텔라로 활약하는 이명진 작가의 요리 에세이 ‘한 입 가득 위로가 필요해’를 읽으면 다양한 요리에서 그런 맛과 마음과 그리고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 책 안에는 작가님이 직접 찍은 음식 사진들이 있어서 눈을 즐겁게 합니다.
* 오늘은 브런치 북 발행일이 아니지만 좋은 책이라 급히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