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널 보낼 용기'를 읽고

송지영 작가 에세이

by 김로운

내게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들이 있다. (책 속에 나온 군대 갔다 온 아들은 아니다) 대학도 안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새벽 1시, 안방으로 들어와 ‘엄마 때문에 내 인생이 비참해졌어’ 소리치며 나를 흔들어 깨웠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전혀 그런 말을 할 애가 아니었다. 정규 학교가 아니라 대안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성적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다. 누구보다 자유분방하게 학교 생활을 했고 친구들과 친했다. 선생님들은 헌신적이었다. 나는 양육에 있어서는 밥만 해주는 방임형에 가까운 엄마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고 왜 그러냐고 물었다. 아이는 ‘자기 피부 때문에 살 수가 없다’고 울었다. 아들 피부엔 여드름 흉터가 있었긴 하지만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었다. 정신과에 상담을 가자고 했다.


그 말이 그 애 가슴에 칼날이 되었나 보다. 그 후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에겐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내가 뭐를 잘못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남편과도 계속 얘기하며 의논했다. 결국 나는 아들이 비싼 피부 치료를 받게 한 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아들은 우울증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아들의 병은 엄마인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브런치 작가인 송지영 작가의 에세이 ‘널 보낼 용기’를 읽고 딸이 지구별을 떠나기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자책하는 엄마를 만났다. 송지영 작가는 나보다 더 딸을 사랑하는 엄마였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딸이 적응하도록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보살폈다.


딸은 좋은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엄마가 성적 스트레스를 주는 일은 없었다. 딸은 스스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밤을 새우며 노력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우울증으로 무너지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는 병원을 데리고 다니며 고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일은 일어났다.


그럴 때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안다. ‘내가 뭐를 잘못했을까?’ ‘내가 더 잘 알아챘으면 고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마음 상하지 않게 다가가야 했는데’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그건 엄마의 잘못이 아니다. 엄마는 너무나 최선을 다했다. 조심스럽게 얘기하자면 그건 아이들이 경쟁 사회형 인간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널 보낼 용기’에도 그런 얘기가 나온다.



우리는 무엇을 놓쳤던 걸까. 기대야 할 제도는 멀었고, 이제 질문은 다르게 던져져야 한다. ‘왜 몰랐을까?’가 아니라 ‘왜 몰라보는 구조일까?’ 구조 요청을 보냈던 아이보다 손 내밀어야 했던 어른과 사회는 훨씬 더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독한 경쟁에 길들여진 경쟁 사회 전투형 인간이다. 공부를 잘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사회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경쟁 전투를 벌였다. 그게 깊숙이 뿌리 뽑아낼 수 없을 만큼 내면에 새겨져 있다. 지금도 나는 내 책이 얼마나 많이 팔릴까 매일 신경 쓰는 경쟁형 인간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아닌 것 같다. 경쟁 전투형 인간인 나는 이해하기 힘든 인간형인 것 같다. 경쟁 프레임 밖에서 존재하는 것 같다. 경쟁은 싫은데 그런 시스템 안에서 존재하려니 사는 데 의미가 없고 재미가 없다. 사는 이유를 몰라 무기력하다. 혹은 경쟁에서 숨 막히도록 실패하니 자존감이 매일 무너진다. 그게 우울증이 되는 것 같다.


딸을 잃은 자살 사별자 엄마의 기록인 ‘널 보낸 용기’에서는 자살 생존자인 엄마가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을 딛고 스스로를 세워 나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지구별을 떠난 예쁜 딸을 시간을 넘어 사랑하는 마음이 길게 이어진다.


그러나 내게는 이 책이 현재 지독하게 숨 막히는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혹은 매일 실패하는 우리의 자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든 부모가 읽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keyword
이전 11화‘젊은 작가상 2025년 작품집’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