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위안부의 자식들

by 김로운

기지촌 여성들은 미군과의 관계에서 아이를 많이 낳았다. 비극적인 일이 많았다. 김연자의 에세이에는 동두천 미군 위안부 여성의 10대 아들이 자살한 경우가 나와 있다. 80년대 미군 아버지가 미국으로 떠나며 아들을 데려가려 했으나, 미군 위안부 어머니는 자식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애원해서 아들은 한국에 남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10대가 되었을 때, 혼혈인 아들은 학교에서 수석을 하는 등 공부를 잘하였고 김연자는 미래를 위해 미국 아버지에게 보내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끝내 아들을 곁에 붙잡아 두었고,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과 자신의 출생을 둘러싼 고통을 견디지 못한 아들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처럼 미군 위안부의 자식들은 어머니에게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으나, 동시에 한국 사회라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 비극의 상징이 되었다.


1970년대에 미군 위안부들의 자식들은 미국으로 입양이 많이 되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은 ‘홀트 아동 복지회’가 한 일이다. 당시 홀트 아동 복지회는 기지촌을 돌며 미군 위안부의 혼혈 자녀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냈고, "미국으로 보내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 최선"이라며 어머니들을 설득했다. 가난과 차별 속에서 아이를 지킬 힘이 없던 어머니들은 눈물로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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