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최초의 한국인 여성은 즉 미국 시민과 결혼한 한국 여성이 1950년에 최초로 발견되었다. (출처: 여지연 펜실베이니아 교수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 1951년에는 11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1960년 648명이 되었고 1969년에는 1,954명이 되었다. 1972년에는 2,148명이 되었고 1970년대 전반에 걸쳐서는 4만 명에 달했다. 이들의 남편은 대부분은 미군이었고 여자들은 대부분 기지촌 출신인 것으로 여지연 교수는 추정한다.
대부분 모병제로 한국에 온 미군들은 시골 출신들이 많았고 미군 캠프 또한 대도시와는 떨어져 시골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1950년대와 60년대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은 대부분 아시안인은 거의 보기 힘든 동네에 살았다. 1950년대 미국의 시골은 수돗물, 수세식 변소, 전기도 부족했다. 그녀들은 한국에서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살기도 했다. 영어마저 서툴렀던 그녀들은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진한 향수병에 시달렸다. 그리고 보수적인 백인 사회로부터 심한 인종 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한국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미국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그녀들은 김치 같은 한국 음식에 진한 향수병을 느꼈다. 지금처럼 대도시에서 한국 김치가 각광을 받고 큰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따라서 어떤 여자들은 양배추를 사서 소금에 절여 서양식 고추를 으깨서 넣어 먹었다. 젓갈 따위는 구할 수도 없었고 시댁 식구들이나 남편이 냄새를 역겨워해서 넣을 생각마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한국식 음식을 해 먹으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성은 행복한 축에 속하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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