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하얘져 있었다. 큰일이 난 건 알겠는데 무슨 일인지 금방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동생이 의자에서 일어나 얼굴을 구기며 한 손으로는 턱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얼굴을 긁으며 발을 굴렀다. 원숭이 모양이었다.
“ลิงเอามือถือไป! (원숭이가 핸드폰 가져갔어요!)”
동생이 원숭이가 핸드폰을 가져갔다는 뜻으로 손짓발짓했다. 나는 바로 원숭이가 가는 방향으로 튀어 나갔다. 원숭이는 맞은편 가게와 가게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원숭이를 쫓아 가게 사이를 빠져 시장 도로에 나갔다.
원숭이는 망고, 바나나, 파파야를 파는 가게, 생선을 파는 가게, 부처님께 기도할 때 올리는 조화를 파는 가게, 옷 가게를 지나 낡은 스쿠터들이 부릉거리고 지나가고 버스가 매연을 내뿜는 사이를 달려 나가고 있었다. 나도 온 힘을 다해 쫓아갔다.
어느새 옆에 한국 남자가 따라붙어 있었다. 헉헉거리며 빨개진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쫓아왔다.
“어디 가요?”
한국 남자가 이렇게 외친 것 같다. 나는 대강 갈 곳을 안다. 과연 원숭이는 시내 중심가로 달려갔다. 나는 지름길을 가로질러 달렸고 한국 남자는 한국말로 뭐라고 외치며 따라왔다.
원숭이가 드디어 도로에서 보이지 않고 눈앞에 원숭이 사원이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 여기 있는 원숭이들은 가끔 이렇게 시장으로 사냥을 나온다.
사원 앞에 서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한국 남자가 옆에 와서 섰다.
“ลิงเข้าไปในวัดแล้วครับ (원숭이 사원에 들어갔어요.)”
내가 헉헉거리며 겨우 말하자 그가 알아 들었다.
“원숭이 사원 아니에요? 여기 갔어요?”
그가 손짓으로 원숭이 사원을 가리켰다.
“เป็นอย่างนั้น (그렇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사원 앞을 지키는 경비원에게 다가갔다.
“ลิงตัวนั้นเอามือถือไปค่ะ. ผมจะไปหามือถือนะครับ (저기 원숭이가 핸드폰을 가져갔어요. 핸드폰 찾아올게요.)”
경비원은 원숭이들이 사납다며 조심하라고 말하며 막대기를 2개 내주었다. 나는 막대기 하나를 한국 남자에게 건넸다.
“ต้องเข้าไปข้างในนั้นแล้วหาโทรศัพท์ครับ. พอลิงมาแล้วก็เอาไม้กั้นไว้แบบนี้ครับ. (저기 안에 들어가서 핸드폰 찾아야 돼요. 원숭이가 오면 이렇게 막대기로 막으세요.)”
나는 막대기를 휙휙 휘저으며 원숭이를 막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이미 여러 번 원숭이 사원에 와 봐서 익숙한 기술이다. 이번엔 핸드폰의 도움 없이도 한국 남자가 찰떡같이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함께 돌계단을 뛰어올라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돌탑 사원이 무너져 내릴 듯 서 있었다. 층층이 진 사원 벽 여기저기에 원숭이들이 무리 지어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녔다. 좀 무서웠다. 하지만 한국 남자의 핸드폰을 돌려줘야 한다.
원숭이들이 다가가는 나와 한국 남자를 경계의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워낙 관광객들을 많이 본 탓인지 함부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원숭이가 다가오려고 하면 나는 ‘꺅꺅!’ 사나운 소리를 내고 막대기를 세차게 휘저으며 위협했다. 한국 남자는 무서워하는 얼굴로 내 뒤에 따라붙었다.
이리저리 둘러보자 사원 뒷벽에서 핸드폰을 들고 앉아 있는 원숭이가 보였다. 어떻게 핸드폰을 무사히 들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손에는 핸드폰이 멀쩡하게 들려 있었다. 한국 남자도 봤는지 달려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얼른 막았다.
그리곤 막대기를 세차게 사방으로 휘저으며 ‘꺅꺅!’ 사나운 소리를 내고 원숭이에게 다가갔다. 한국 남자도 ‘꺅꺅!’ 거리고 막대기를 휘저으며 나를 따라 했다. 핸드폰을 든 원숭이가 구석으로 도망을 갔다.
우리는 원숭이를 쫓아가 합동 작전을 펼쳤다. 양쪽에서 막대기를 휘두르며 원숭이를 벽 쪽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경비원이 뒤에서 와서 다른 원숭이들이 다가오는 걸 막아 주었다. 드디어 원숭이가 구석에 갇히자 나는 막대기를 휘둘러 원숭이 손에 있는 핸드폰을 쳐냈다.
‘탁!’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얼른 땅바닥에서 핸드폰을 집는데 원숭이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순식간에 한국 남자가 내 앞에 나섰다. 동시에 ‘으악!’하는 남자의 비명이 들렸다. 오른쪽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원숭이가 남자의 다리를 긁었다. 나는 바로 달려든 원숭이를 막대기로 쳤다. 원숭이가 다행히 도망갔다.
남자는 허리를 구부리고는 피가 나는 다리를 보며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그의 겨드랑이 밑에 어깨를 넣고 부축해 절뚝거리며 나왔다. 사원의 원숭이들이 ‘꺅꺅!’ 거리며 돌아보았지만 경비원이 익숙한 솜씨로 다른 원숭이들을 막아줘 무사히 사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사원 앞 도로에 나오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한국 남자는 계속 다리에 흐르는 피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손에 꼭 쥐고 있던 핸드폰을 그에게 건넸다. 내 앞에서 원숭이를 막아 주다니. 너무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เลือดออกเยอะค่ะ. ผมจะกลับบ้านไปฆ่าเชื้อให้ครับ. (피가 많이 나요. 우리 집으로 가서 치료해 줄게요.)”
내가 말했지만 못 알아 들었는지 그가 찡그린 얼굴을 펴지 않고 도로에 오가는 차들만 봤다. 나는 우리 집에 가서 치료해 주겠다고 손짓발짓을 했다. 그러자 그가 화를 냈다.
“집에 가서 치료해 주겠다고요? 무식해 빠져서는. 병원에 가야지 집에 왜 갑니까?”
그리고는 도로에 지나가는 택시에게 팔을 흔들더니 택시가 멈추자 얼른 타 버렸다. 그가 한국말로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무시했다는 건 알겠다. 나는 화가 났다. 그러다 문뜩 그의 배낭이 식당에 아직도 있다는 게 생각났다.
식당에 돌아오니 그의 커다란 배낭이 그대로 의자 위에 놓여 있었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엄청 무거운 배낭이다. 동생은 다가와 안에 뭐가 있는지 열어 보자고 졸랐다. 나도 호기심이 일었지만 남의 가방을 함부로 열어보면 안 될 것 같았다. ‘안 된다’고 동생에게 얘기하고 가방을 들어 식당 부엌 구석에 가져다 놓았다. 아쉬우면 지가 찾으러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