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가장 빠르게 배우는 직업
24년 새해를 맞이하여 제 얼룩소 방에 새로운 코너를 론칭합니다.
타이틀은 <이작가의 스토리 타임>입니다.
딱히 작법이라 볼 순 없지만 그래도 극작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 망생이들이 잘 모르는 업계 돌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망생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들을 해볼까 합니다.
그럼, ‘이.스.타’의 첫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드라마를 가장 빠르게 배우는 직업>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들에게 극작술을 가르쳐 봤습니다.
소설가, 시인, 다큐 작가, 예능 작가, 교양 작가 등 작가군들과 간호사, 변호사, 국회 보좌관, 기자, 선생님 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가르쳐 봤습니다. 그외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작가의 꿈을 꾸는 지망생들도 많이 가르쳤구요.
이들 중에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평범한 직장인들이 극작술을 빨리 깨우치더라구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그들은 대개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말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믿는 경향이 있더라구요. 일단은 제가 말하는 것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받아 들이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받아 들이다 보면, 점차 뭐가 똥이고 뭐가 된장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 오고, 바로 그 지점부터 실력이 쑥쑥 느는 겁니다. 똥은 버리거나 피하고, 된장으로는 다양한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취사선택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가령, 제가 외우라는 영어 문장을 수백개를 무조건 달달 외우다 보니까, 그 안에 규칙들을 발견하면서 문법을 알게 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이런 친구들은 약간 무식하게 극작술을 연마합니다.
좋아하는 대본을 구해서 필사를 해보라고 하면, 연필로 꾹꾹 눌러가면서 미니 시리즈 전편을 무식하게 써봅니다. 매일 한 씬 씩 일기처럼 써보라고 하면, 몇 개월 후에 대학노트 몇 권의 1일 1씬 노트를 가지고 나타납니다. 드라마를 보고 대본을 만드는 작업도 틈틈이 열심히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기본적인 테크닉을 다 마스터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 영문법을 다 외운 학생이 이번에는 책을 통째로 암기한다고 할까요?
이런 친구들이 갈고닦은 실력으로 극본을 써옵니다.
어떤 작품을 써올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거짓말 한 마디 보태지 않고, 정말 거지 같은 작품을 써옵니다. 하하하.
근데, 이런 친구들의 작품은 수정을 하면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아 듣습니다. 아, 그래, 이 문장은 문법적으로 이렇게 써야 더 좋아. 이럴 땐 이런 식으로 답해야 자연스러운 것이지. 여기선 이런 관용어구(클리셰)를 쓰는 게 좋겠어.
이런 친구들의 작품을 클리닉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그런 작품을 열 번 스무 번 고치면 정말 좋아집니다.
망생이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방송에 나오는 작품들이 서너 번쯤 수정한 다음 나온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근데 사실은 우리가 볼 때 정말 후진 작품도 수십 번의 탈고와 퇴고 끝에 나옵니다. 때문에 공모를 준비하시는 분들은 백 번까지 뜯어고칠 각오를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번에는 제가 위에 언급했던 직업군들 중에 극작술을 제일 못배우는 직종은 어떤 것일지 한 번 맞춰 보실까요?
왠지 시인일 것 같지 않습니까?
시는 대체로 한 페이지로 끝나지만 극본은 기본 서른 장이잖아요.
아니면 다큐 작가?
본인 습관대로 극본을 픽션으로 안 쓰고 다큐로 쓸 것 같잖아요.
아니면, 변호사? 왠지 대본을 준비서면 쓰듯이 쓸 것 같습니다.
뭐,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이 극작술을 제일 더디게 배우지는 않습니다.
제가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또한 저의 지극히 편협하고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극작술을 가르치기 제일 힘들었던 직업군은 바로 '소설가'였습니다.
좀 의외이지 않습니까?
극본가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 바로 소설가일 것 같은데 말이죠. 근데 극본가와 소설가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건너기 힘든 강이 있습니다.
이런 비유를 해보겠습니다.
극본가가 축구선수라면, 소설가는 농구선수입니다. 같은 구기 종목(스토리텔링)이지만, 서로 다른 종목인 거죠. 농구선수가 축구를 하게 되면, 드리볼할 때나 피봇할 때 움직임 등이 도움이 되겠지만 기본적으로 발기술을 새로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길들여진 자신의 버릇이 있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소설은 의식의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극본은 선택과 행동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즉, 소설적 내용을 선택과 행동이 형태로 바꿔야 하는 겁니다. 제 오랜 기억으로, 소설 <카미유 클로델>을 보면 카미유의 정사 장면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나옵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의식은 하늘에 구름도 흘러 갔다가, 천둥 번개와 함께 소낙비가 내리다가, 바다 심연 속으로 한없이 침잠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극본에서는 '카미유가 옷을 벗는다. 상대에게 키스를 한다. 정사를 한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맙니다. 좀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면, 몽타주를 써서 정사 장면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면 그만 입니다.
근데 소설 쓰시는 분들은 이런 게 처음에 잘 적응이 안 됩니다. 자기가 잘하는 것을 굳이 극본에 보여주려 하거든요.
소설가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또 있습니다. 바로 감정 표현입니다.
소설에서는 어떤 슬픔에 대한 정도 표현을 가령 1의 강도부터 100의 강도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소설의 강점입니다. 하지만 극본에서는 '조금 슬픈', '슬픈', '많이 슬픈' 정도로 단순하게 표현합니다. 소설 쓰시는 분들은 이게 처음에 정말 적응이 안 됩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래서 지문에 연기와 연출로 표현되지 않는 내용을 씁니다.
그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깊은 슬픔에 빠진다, 같은 지문 말입니다.
여기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어떻게 연기와 표정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소설가 출신의 지망생들은 이런 지문을 정말 줄기차게 씁니다(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소설은 진행 중에 조연이나 조조연 캐릭터가 재미있으면, 그 이야기를 상당부분 끌고 가도 됩니다. 하지만 극본에서는 절대 안될 말입니다.
극본에서는 연기자의 분량 배분이 중요합니다. 배우의 개런티와 이름값에 비례해서 분량을 배분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주인공 중심으로 가야 하고, 조연이나 조조연의 캐릭터가 너무 재미있어도, 주인공보다 중요하고 재밌으면 안 됩니다.
대장금에서 한상궁이 대장금보다 더 인기를 끌자, 작가와 연출이 한상궁을 죽여 하차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소설에서는 주인공 중심으로 스토리를 진행시키다가 막히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도 됩니다. 대체적으로 소설 독자들이 인내심이 강한 편이라 주인공이 돌아올 때까지 참아줍니다. 하지만 드라마 시청자들은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리모컨을 누르게 됩니다.
따라서 극본을 쓸 때에는 주인공을 물고 늘어져야 하고, 주인공 얘기에서 다른 얘기로 넘어갈 때는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지 못하도록 주인공의 앞으로 행보에 대해 최대한 궁금하게 해놓고 가야 하고, 최대한 빨리 주인공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또한 소설은 기본적으로 페이지의 귀퉁이를 접어가며, 여러 번에 걸쳐서 보게 됩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앉은 자리에서 다 보게 해야 합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멈춰 뒀다가 다시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문 편입니다. 그냥 그렇게 하차하는 걸로 끝나는 거지요.
때문에 드라마는 소설보다 훨씬 다이내믹해야 하며, 설명을 극단적으로 자제해야 합니다.
이렇게 소설과 드라마 극본은 다릅니다.
소설가 출신이 드라마 작가가 되려면, 이 차이점을 극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 다음 제 경험으로 볼 때 드라마 극작술에 적응하기 힘든 직종은 예능 작가입니다. 하하하.
의외죠?
예능작가의 장점은 '시바이'를 잘 만든다는 겁니다. 시바이는 예능이나 코미디 쪽에서 주로 '코믹한 상황'이란 뜻으로 쓰입니다. 시바이를 잘 만들면 그쪽 바닥에서 유능한 작가로 인정을 받죠.
근데 그 재능이 드라마 쪽으로 오면, 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량이 짧은 개그나 예능에서는 그런 시바이가 웃음과 재미를 동반하지만, 장강의 흐름과 같은 장편 드라마에서는 금방 식상하게 됩니다. 게다가 스토리가 산으로 가게 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가끔 개그맨 출신의 감독이 장편 영화를 만들었다가 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의 재능인 시바이를 맘껏 발휘하다가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예능작가가 드라마 작가로 성공적으로 변신하려면, 시바이를 치려는 예능작가적 본능을 억누르고 재밌는 씬을 쓰기보단 필요한 씬을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게 긴 호흡으로 봤을 때 훨씬 재밌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시인은 의외로 드라마에 잘 적응하는 직종입니다.
시를 전공한 분들이나, 시로 등단한 분들이 드라마로 오면 제일 돋보이는 것이 바로 대사력입니다. 그들이 쓰는 대사는 매우 함축적이고, 서브텍스트도 풍부하며, 매우 핵심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사가 장황하지 않죠.
다만, 이 분들은 구조나 구성에 취약합니다. 그런데 이런 단점은 이론을 좀 공부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극복이 됩니다.
다큐를 하신 분들이나 기자분들은 대체로 상상력을 발휘하시는데 취약합니다. 팩트와 팩트로 연결하면서 상상력을 제한하는 작업들을 해온 탓입니다. 살아오면서, 그들에게 가장 치욕적인 말은 '소설 쓰고 자빠졌네'가 아니었을까요?
때문에 이쪽 분야에서 오신 분들은 최대한 빨리 '소설 쓰고 자빠져'야 합니다. 여태까지 애써 무시해 왔던 음모론 같은 것을 탐독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하.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다 좀 치워놓고 오셔야 하는 거죠.
교양작가는 드라마를 통해서 '교훈'을 주겠다는 강박만 버리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교양 작가로서 '무너져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전문 직종인 변호사과 국회 보좌관, 그리고 간호사 등 의료인이 드라마 작가가 되려면, 자신의 특장점을 모두 쏟아넣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시청자는 전문성이 있는 드라마는 좋아하지만, 전문 그 자체를 드라마 형식을 보여주는 드라마타이즈는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전문가적 식견으로 볼 때 드라마에서 고증 실패에 격분해 왔던 분일 확률이 높습니다. 내가 작가가 되면, 고증에서 완벽한 드라마를 쓸 거야.
하지만 진정한 드라마 작가가 되려면, 역설적으로 '일부러 고증을 실패'할 수 있는 열려 있거나, 플랙서블한 마음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때론 고증보다 중요한 것이 극적 상황일 수가 있는 겁니다. 즉, 고증을 드라마적 상황에서 가지고 놀 수 있어야 드라마 작가인 겁니다.
물론, 무지에 의한 고증 실패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학교 선생님들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 도전을 많이 합니다. 아무래도 정규직보다는 직업적 안정도가 떨어지는 기간제 교사들이 드라마를 배우러 많이 옵니다.
선생님들은 일단 드라마투르기를 잘 배우고, 극본에 잘 적용을 하는 편입니다. 이분들의 직업적 특성이 쉽고 명료하게 설명하는 일이기 때문에 드라마와 잘 맞습니다. 다만, 이쪽 분들도 교양 작가처럼 교훈을 주려고 애쓰는 경우가 적지 않고, 이상하게도 소재가 다양하지 않더라구요.
그리고 끝으로 최근에 웹소설 작가들도 많이 옵니다. 물론, 아주 잘 나가는 웹소설 작가들은 굳이 올 필요가 없지만, 웹소설 쪽도 이젠 레드오션이라 거기서 자리를 못 잡은 작가들이 드라마로 오는 경우가 꽤 있는 편입니다.
그런데 쉽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웹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웹소설(현판의 경우)을 드라마로 각색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웹 소설이 다루는 욕망은 매슬로우의 욕망이론으로 설명하면, 가장 아랫단계인 생리적 욕구가 주류를 이룹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 생리적 욕구도 포함하지만, 그 위의 안전의 욕구와 사회적 욕구까지 아우릅니다. 채워넣어야 할 내용들이 많은데, 그것은 새 작품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일 때가 많습니다(이런 일에 신인 드라마 작가들이 끌려 들어가 고생고생하다가 엎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한다는 건 슬픈 현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 스타일이 드라마적이지 않습니다. 웹소설은 드라마처럼 상승 구조를 갖기 어렵습니다. 수백회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상승구조를 가지면 스토리가 감당이 안 되고, 일찍 종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주인공이 고난을 통해 성장하기 보단, 각성으로 얻어진 능력으로 유능하게 일처리를 끊임없이 해나가는 스토리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다양한 직종이 드라마라는 장르에 입문할 때 겪는 애로사항을 정리해 봤는데요.
자신의 장점이 꼭 장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 드라마의 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꼭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때는 백지에서 비기너적 자세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시작을 해놓고, 장르의 규칙을 배워가면서 자신의 특장점을 녹여넣는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장르로 갈아탈 때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장르에 대한 존경심을 갖는 것입니다.
저 정도는 나도 쓸 수 있다는 오만함은 작가를 실패로 이끌 뿐입니다. 새로 도전하는 그 장르 안에는 날고 기는 선수들이 즐비합니다. 그들과 싸워서 톱이 되어야 그 장르에 도전하는 의미가 생기는 것이고, 그런 각오로 들어가야 최소한의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아무리 자기 장르에서 자신이 최고라 할 지라도, 다른 장르에 도전할 때는 그 장르에 대한 존경심과 더불어 맨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사람의 겸손함과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덧붙여 인내심과 적절한 멘탈 관리가 필수입니다.
다른 장르에서 오신 분들은 조금 해보다 안 되면, '내 길이 아닌가벼'하고 돌아가기 쉽습니다.
드라마를 길에 비유한다면, '멀고도 험한'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아름다운' 길입니다.
쉽게 포기할 것 같으면 시작을 안 하시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시작하신다면, 인내심을 가지고 길게 보시고, 흔들리지 않게 멘탈을 잘 관리하시면서, 장르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기본부터 차근차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