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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Jan 22. 2024

원 포인트 레슨 06 : 각색/리메이크

각색/리메이크

나는 드라마 작가가 되기 전에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썼었다. 

그 시절, 어느 신문사 신춘문예에 당선이 됐던 단편 하나가 판권이 팔려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그때 연락을 해온 감독에게 나는 직접 각색을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감독은 껄껄 웃으면서 내게 걱정할 것 없다며 방송이나 잘 보라는 말만 했다. 

아니, 각색을 하고 싶다는데 걱정할 게 없다니, 이 무슨 대화가 이렇단 말인가.


전화를 끊은 그 순간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현실이 됐다.  


시사회에 초대받아 갔는데,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견디기 힘들었다(고개를 들 수 없었다가 더 어울리는 표현이지만, 그렇게 쓰면 드라마를 안 봤다는 오해를 살 수도). 누가 저런 형편없는 원작을 썼지 하고 관객들이 두리번거리며 원작자인 날 찾을 것만 같았다. 감독이 드라마를 틀기 전에 각색자인 드라마 작가는 소개하면서도 원작자인 나를 소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이 고마움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드라마 상영이 끝나자마자 나는 감독에게 분노한 표정으로 달려갔다. 타이틀 롤에서 내 이름을 빼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감독은 그런 내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내게 어떻게 봤냐고 물었다.


순간, 나는 잘 봤다고, 말했다. 그것도 아주.


왜 그런 멍청한 대답이 나왔는지 지금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원작료가 이미 입금된 상태였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렇게 원작을 '묻지마' 각색당한 경험(!)은 내가 향후 드라마 작가로서 원작을 각색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90년대 중반에 나는 일본 드라마에 빠져 있었는데, 당시에 보던 일본 드라마와 차원이 다른 드라마 한 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하얀 거탑>이었다. 그 드라마의 마지막 편을 보고 펑펑 울었던 나는 그 드라마를 리메이크해 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 잡혔다. 이어 그 작품이 야마자키 도요코라는 신문기자 출신 작가의 원작임을 알게 되었고, 4권이나 되는 소설을 읽은 뒤 그 욕망을 실현시키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야마자키 도요코 에이전트로부터 받은 대답은 절대 불가였다. 초장부터 대차게 까인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도요코 작가는 일본에서 방영되는 본인 원작의 방송 대본을 모두 검수하기 때문에 각색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서 각색 제안이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다는 것이었다.


순간, 열심히 써서 검사받을 테니 허락해주면 안 되겠냐고 사정하고 싶었지만,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해서 참았다. 지금은 그렇지만 미래에 나도 훌륭한 작가가 될지도 모르는데, 괜히 그런 흑역사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나는 도요코 작가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저는 도요코 작가님의 팬입니다. 선생님이 쓰신 <불모지대>, <대지의 아들>, <화려한 일족> 등 한국에 번역된 모든 작품을 다 읽었습니다(실제로 편지를 쓰기 전에 수십 권에 달하는 작품들을 모두 읽었다). 특히 <대지의 아들>이란 작품이 좋았고... 중략.... 저는 소설가 출신으로 제 어쭙잖은 작품이 각색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선생님께서 해외에 각색을 허락하지 않은 이유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중략.... 작가의 작품은 곧 작가 정신의 자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식이 해외로 나가 미아가 되길 어느 작가가 원하겠습니까.... 중략..... 저는 각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원작의 향기를 잘 살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게 각색할 기회를 주시면, 제 자식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각색을 하겠습니다.  


편지를 보내고, 한 달쯤 지났을까? 나는 몹시 흥분한 일본 에이전트의 전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도요코 작가가 해외는 처음으로 각색을 허락하셨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이름 없는, 단막 몇 개와 특집극 정도의 집필 경력밖에 없는 작가인 나에게.


잠깐, 여기서 각색과 리메이크의 개념을 정리하고 다음을 이어하기로 하자. 각색은 원작이 소설이고, 리메이크는 원작이 드라마나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하얀 거탑>이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일본 소설의 각색인 것이다(한국판 하얀 거탑이 만들어진다고 하자, 후지 TV에서 일본판 드라마에서 나온 창의적인 장면을 가져다 쓰지 말 것을 정식으로 요청해 오기도 했다).


각색/리메이크는 원작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원작을 더 원작답게 만드는 것이다.


각색물이나 리메이크물에 대한 기자나 평론가의 평을 보면, '새로운 게 없다', '새로운 시도가 없다', '새로운 해석이 없다' 등 새로운 뭔가 없다는 얘기가 정말 많다. 때문에 작가가 각색/리메이크에 도전할 때 어떤 새로운 것을 넣어야 할지 고민하고, 심지어 괴로워하기까지 한다. 작가 딴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넣어서 작품 속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고 싶은 것인데 절대 그러지 말기 바란다.


그것은 원작을 망치는 길이고, 자신의 작가 이력을 훼손하는 일이다. 작가는 원작을 왜 비싼 돈을 주고 사는지에 대해서 먼저 성찰해야 한다. 돈을 주고 산 것을 왜 가져다 쓰지 않고, 굳이 새로운 것을 집어넣느냐 이 말이다.


작가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원작이 어떤 매력이 있어서 사람들을 사로잡았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매력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가급적 원작에 나온 설정과 캐릭터, 사건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가야 한다.


원작은 그 자체로 하나의 화합물 같은 거라, 그 안의 요소들이 바뀌면 이상한 물질이 되어버릴 공산이 크다. 실제로 수많은 각색/리메이크들이 뒤로 가면서 산으로 가는 경우를 많이 봤을 것이다. 처음에는 작가 자신도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갈 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의 작은 균열이 끝에 가서는 건물의 붕괴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원작자가 아니라 다른 작가가 쓰는 것이기에 같은 설정과 캐릭터, 사건을 그대로 갖다 쓴다고 해도 이야기가 조금씩 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럴 때 그것을 바로 잡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놔두면 나중에 정말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럴 때는 약간의 무리수를 두더라도 이야기의 터닝 포인트를 반드시 지켜주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쉽게 말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데, 중간에 옆으로 길을 샜을 지라도 대전이나 대구는 반드시 들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무사히 부산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삼천포로 빠지는 것을 수수방관했다가 나중에 부산으로 돌리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어쭙잖은 재해석 따윈 하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거라는 사실을 알려줬으니, 이젠 원작을 더 원작답게 각색/리메이크하는 방법을 말하겠다.   


각색/리메이크 = 현지화 + 시의성 + 최소한의 보강


현지화. 


<하얀 거탑>은 60년대 말에 나온 소설이고, 그 책에서 다루는 의학은 그 당시 최첨단 의술에 해당하는 위암 수술이었다. 이후 2000년대 초반에 각색된 일본 드라마는 폐암을 다루었다. 나는 조사 끝에 2007년 한국에서 가장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고 있던 간암을 다루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의학체계였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의학체계가 서로 달랐던 것. 알고 보니, 일본의 의학은 네덜란드를 통해서 난학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의학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던 것이고, 우리나라는 개화기 때 미국 선교사를 통해서 들어왔던 것이다(이 부분은 내가 제중원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다뤘는데, 이 시기의 리서치를 하던 중에 소재를 얻었다). 일본은 외과과장을 중심으로 수직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비교적 수평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두 체계를 적절하게 섞어서 이질감을 들지 않도록 해야 했다. 만약 일본 의학체계로 곧이곧대로 밀어붙였다면 어색했을 것이고, 우리나라 체계를 고집했다면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놓치면서 가다가 이야기가 산으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시의성.


왜 하필 이 소설을 각색하느냐 하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하얀 거탑>이라는 작품이 의학물인 동시에 정치물이라 생각했다. 나는 병원 안에서 일어나는 정치가 시청자들에게 보편적으로 느껴지길 바랬다. 자신이 속해 있는 회사, 관공서, 학교 등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 기시감과 공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게 하고 싶었다. 결국, 그 작업은 시의성을 획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내가 속한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권력 다툼에 관한 이야기로 말이다.  


최소한의 보강.


원작 소설은 시간을 두고 주인공이 외과과장이 되기까지의 1부와 의료소송으로 몰락해 가는 과정의 2부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를 각색한 일본 드라마는 당연히 2개의 시즌으로 나눠서 제작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시즌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의 스토리 라인으로 만들어야 했다. 주인공은 같지만 약간은 이질적인 두 개의 스토리를 하나의 스토리처럼 보이게 하는데 나는 근 한 달을 고민해야만 했다. 그리고 주인공의 애인의 캐릭터도 살짝 바꾸었다. 원작에서 그녀의 캐릭터는 매우 도발적이고 진취적인 그런 캐릭터였는데, 그런 캐릭터를 그대로 썼다가는, 어떤 면에서 주인공보다 더 돋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철없는 현재 아내와는 대척점에 있는, 성숙하면서도 때론 모성애까지 느껴지게 하는 캐릭터로 바꿨다. 그리고 드라마가 좀 더 다이내믹하게 보이게 하려고 주인공의 욕망이 원작보다 더 강력하게 묘사했다.


이렇게 소설 <하얀 거탑>을 각색하면서 원작의 향기와 주제를 살리는데 나름의 노력을 했다. 그 결과, <하얀 거탑>은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드라마의 완성도면에서도 평단과 대중 양 쪽에서 인정을 받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원작자 야마자키 도요코 작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인터뷰에서 본인의 소설이 영상화된 것 중에 어느 작품이 제일 좋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의 <하얀 거탑>이 최고였다 말씀하시기도 했다.  으하하하.



몇 년 전 어느 작가 워크숍에서 오랜만에 후배 작가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후배가 고민을 상담해 왔다. 지금 어떤 작품을 각색하는 중인데 정말 힘들다.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 바꿔보는데, 그 어떤 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 자꾸 바꾸려 하는 거지? 내가 이 말 한마디 해줄게. 안 바꾸는 것이 바꾸는 거야. 그러니까 바꾸지 마. 네가 고민해야 할 가장 첫 번째는 어떻게 하면 안 바꿀까 하는 고민이야.


그러면서 <하얀 거탑> 각색 과정을 얘기해 줬다. 그리고 각색/리메이크에 실패한 여러 작품을 분석해 줬다(하지만 이곳에선 실패작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동료 작가들과 원수 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 각색/리메이크에 실패한 작품들은 하나 같이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거나 이상하게 재해석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성공적인 리메이크의 예로 <굿 닥터> 얘기를 후배에게 해줬다.


<굿 닥터>가 미국에서 처음 리메이크가 시도될 때 미국 작가팀은 무대를 병원이 아닌 의과대학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바보 같이. 나름 실력 있는 작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본을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파일럿을 만드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왜? 바꿨기 때문에.


그리고 <굿 닥터>는 두 번째로 리메이크가 시도됐는데, 크리에이터가 <닥터 하우스>의 데이비드 쇼어였다. 이 고수는 우리나라 <굿 닥터>를 1,2회만 보고 리메이크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손에 의해 만져진 미국판 <굿 닥터>는 당당히 정규 편성을 받았다.


내가 한국판과 미국판 1회를 비교해서 봤는데, 거의 바꾼 것 없이 똑같았다. 역시 데이비드 쇼어는 선수였다. 내가 보기에 그는 딱 한 군데를 바꿨는데, 주인공의 형제가 죽는 장면이었다. 한국판에서는 주인공의 형이 주인공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죽는데, 미국판에서는 동생이 그런 식으로 죽는다. 나는 이 바뀐 장면을 보고, 약간 소름이 돋았다. 이런 것이 바로 화룡점정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통 형의 죽음은 동생으로서 책임이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동생이 죽으면, 형으로서 동생을 케어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강하게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트라우마에 더 강력하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고수의 각색/리메이크는 90점짜리 원작을 살짝 터치만 함으로써 100점으로 만든다. 하지만 하수의 각색/리메이크는 90점짜리 원작을 완전히 분해했다가 감당을 못해서 빵 점 짜리로 만들고 만다.


그러니 제발, 각색/리메이크할 때 새로운 설정 따윈 자제하고, 어떻게 하면 오리지널에 가깝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기 바란다. 막상 해보면 알겠지만, 원작의 오리지널리티가 풍부한 각색/리메이크는 결코 쉽지 않다.


아, 그리고 그 후배는 내 충고대로 오리지널에 가깝게 각색/리메이크를 해서 무사히 방송을 마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페이스 북에 올린 집필 후기에서 내 조언이 결정적이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또한 이는 말로만 끝나지 않고, 굳이 나를 불러내어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주기까지 했다.


여러분은 굳이 내게 맛있는 거 안 사주셔도 된다. 대신 뻘짓하지말고 원작에 존경심을 갖고  잘 각색/리메이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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