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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May 26. 2024

이작가가 읽어주는 작법책 03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


3. 웅장한 스케일 속 소소한 이야기(The Big Picture)


역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들이 공통으로 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거대한 배경 아래 소소한 이야기를 펼쳐갔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스케일 큰 이야기에 매혹된다. 거대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의미 있는 이야기. 거기에 다향한 사회계급까지 등장하면 금상첨화다. 이야기 속 소재뿐 아니라 등장하는 인물도 다양할수록 좋기 때문이다. 


현대 소설은 주인공이 자신과 벌이는 싸움을 묘사하기보다는 거대한 조직이나 힘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스칼렛의 사랑과 야망을 그리고 있다. 그냥 태평성대에 한 여주의 사랑과 야망과는 차원이 다른 몰입감을 제공한다. <죠스>를 보면 여름 휴양지에서 거대한 식인 상어의 습격을 다루고, 그를 처지하려는 주인공의 사투를 다루고 있다. 여름 바다에서 자연산 광어를 낚으려는 얘기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대중들은 스케일이 큰 스토리를 원하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서 알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와 감정이다. 


물리적 스케일이 크면, 그에 따른 감정적 스케일도 크다.  


대중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감정적 스케일이다. 


헐리우드의 대부분의 블록버스터가 결국엔 가족주의를 다루는 것이 다 이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스케일이 크면 같은 종류의 감정이라 할 지라도 뻥튀기가 된다. 


혹자는 이를 도박에 비유해 '판돈'이 커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매우 정확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이혼을 다루려고 해도 재벌가의 이혼을 다뤄야 한다. 위자료 천만원 짜리 이혼과 천억 짜리 이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자세를 다르게 한다. 액수가 크면 욕망이 확실히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눈물의 여왕>이 그렇지 않은가. 또한 교육열을 다루려면 <스카이 캐슬>처럼 상위 1프로에서 하거나, <슈룹>처럼 궁중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보통의 이혼이나 평범한 집에서 교육열을 다루면 안 되는 것인가?


된다. 


스케일에서 핵심은 바로 물리적 스케일이 아닌, 감정의 스케일이기 때문이다. 


이혼이라면, 주인공 입장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로 인해 삶이 얼마나 무너지는가, 남들이 볼 때는 비록 적은 위자료지만 주인공에게는 얼마나 큰 돈인가, 얼마나 강력한 반대를 물리치고 한 결혼인가 등등으로 감정적 스케일을 재벌급 이혼의 느낌으로 키워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 판에서는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대통령 선거처럼' 다루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4. 잃어버린 에덴 동산(The Golden Country)


베스트셀러에서 황금 나라는 주인공들이 원치 않게 떠났고, 어떻게든 다시 돌아가려고 애쓰는 진정한 의미의 고향이며, 소설의 기본 토대로 반복 사용된다. 


황금 나라는 베스트셀러의 맥박을 뛰게 만드는 지상낙원이다. 주인공은 황금 나라를 늘 동경하고 그리워한다. 많은 독자들도 황금 나라가 가진 후회와 열망이라는 감정을 공감한다. 우리 또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 조금씩 잃어버린 각자의 유년시절, 순수성, 꿈, 성적인 순수함 등 중요한 것을 놓친 것을 후회하고 또 그것을 다시 얻을 수 있길 소망하기 때문이다. 


'황금 나라'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장소인데, 억압적인 전체주의 체제의 현실이 아닌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상징한다. 그곳은 초목이 무성하고 깨끗한 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이 가능한 장소로, 윈스턴이 원하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어린 시절의 향수가 있는 기억의 장소이며, 현실을 벗어나 가고 싶은 심리적 피난처이기도 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스칼렛의 고향 타라이다. 존 그리샴의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에서는 미첼과 애비 부부의 순수한 열정으로 살았던 로스쿨 생활 시절이었다. <대부>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마이클이 미국을 떠나 머물던 이탈리아의 전원 생활이었다. 


왜 베스트셀러마다 '잃어버린 에덴 동산'이라 할 수 있는 '황금 나라'가 나오는 걸까? 


그것은 이야기의 기준점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식으로 전개가 된다. 그 욕망을 채우기 시작하기 전 상태, 영웅서사 관점으로 말하면, 보통 세상을 말한다. 이 보통 세상에서 욕망을 향해 특별한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인데, 어느 순간 주인공은 이 보통 세상(황금 나라)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일 수도 있고, 인간적으로 가장 힘든 순간일 수도 있고, 또는 죽음을 앞두고 일 수도 있다. 그때가 참 좋았지. 그때로 되돌아 가고 싶어. 등등. 


황금나라라는 기준점에서 멀리 왔으면 왔을수록 회한에 대한 감정의 스케일이 커진다. 그러면 대중들은 주인공에게 더욱 강하게 감정이입을 하고, 더 가열차게 응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황금나라(잃어버린 에덴동산, 보통세상)을 설정할 때는 매우 꼼꼼하게 해야 한다. 



5. 전문가 못지않은 전문지식과 정보(Nothing but the Facts, Ma’am) 


'사실만 말해 주세요(Nothing but the Facts, Ma’am)'는 과거 TV시리즈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군더더기 다 빼고 필요한 정보만 달라고 할 때 쓰는 표현이다.  


대중들에게 필요한만큼만 정보를 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은 알고자 하지만, 가르쳐 주는 것은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작가로 하여금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꼭 설명을 해야할 때, 우리 선수들은 '녹여 넣는다'라고 한다. 즉, 이야기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넣어서 대중들이 부지불식간에 정보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자주하는 얘기인데, 제임스 클라벨이 <쇼군>을 쓰면서 썼던 방법이 압권이다. 작가는 일본을 배경으로 쓰는 소설에서 '다도'에 대한 설명이 꼭 필요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칫 독자들이 복잡한 일본의 다도에 대한 설명을 읽다가 책을 던져버릴까과 걱정이 되었다. 


제임스 클라벨은 소설 중간에 성과 성이 전쟁을 벌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다도'를 설명했다고 한다. 공격 명령만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전투를 벌일, 그런 양 진영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간 지점에서 성주와 성주가 만나 차를 마신다. 그리고 그때 작가는 다도에 관한 내용을 녹여 넣었다. 독자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작가가 다도에 대한 참교육을 시키는 줄 모르고 그 부분을 순식간에 읽어내고 말았다고 한다. 


고수는 보통 이렇게 한다. 


소설에서도 이럴 진대, 드라마에서 정보 설명은 오죽하겠는가. 드라마에서는 보다 쉽고 간결하게 정보를 전달해야만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작가가 공부한 것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시청자가 궁금해 하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료 조사를 너무 열심히 한 작가는 공부한 게 아까워서 그런지 필요하지도 않은 내용을 굳이 욱여넣기도 한다(망생이들이여, 작품은 작가가 공부한 것을 자랑하는 곳이 결코 아닙니다!) 

자신이 공부하고 조사한 내용들을 가차없이 버릴 수 있어야 좋은 작가가 된다. 


대중들은 어떤 정보들을 작품을 통해서 보길 원할까?


대중들이 원하는 정보는, 내부 정보, 최신 정보, 베일에 가려진 정보, 가십거리, 비밀 정보다. 독자들은 전문가의 안내를 받으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생경한 곳을 구경하길 좋아한다.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에서는 최고 권력을 휘두르는 법률회사의 내부 사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줬고, <인형의 계곡>에서는 미국 쇼비즈니스의 배후에서 일어나는 배신과 속임수를 폭로했으며, <붉은 10월호>에서는 핵잠수함의 이모저모와 함께 강대국 간의 긴장요소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방식으로 소개되었다.  


덧붙여...


드라마를 쓰면서 가장 최악의 수는, 시작하자마자 시청자에게 정보를 교육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좋게 받아들이는 시청자들도 물론 있지만, 교육이 시작되는 순간 진저리를 치며 드라마에서 하차를 하는 시청자들도 있다. 시청률 싸움인 드라마에서 초장에 하차하는 시청자들은 드라마 흥행적으로 볼 때 크나큰 손실이다. 


오래 전에 나온 드라마인데, <메디컬 탑팀>에서는 시작하자마자 '메니컬 탐팀을 소개합니다'하면서 탑팀에 대한 소개 영상을 몇 분에 걸쳐서 보여주는 바람에 시청자들이 다른 채널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아 흥행에 대실패를 했다. 가장 최근에는 디즈니에서 방영한 <지배종>이 있는데, 시작하자마자 한효주가 나와서 브리핑을 오랜 시간에 걸쳐서 하는데, 모르긴 몰라도 그때 시청자들이 많이 빠져나갔음은 안 봐도 비디오이다(내가 그랬다).  


그런데 망생이들의 공모 출품작을 보면 이런 식으로 본인 드라마의 설정을 먼저 알려주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설정이 문장 하나 정도로 심플하면 모를까, 구구절절이 설정이 이어지면, 심사위원은 그 즉시 원고를 내려놓을 공산이 크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 설정(세팅)에 들어가는 주인공을 소개하고 묘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인물에게 충분히 감정이입이 되었을 때 게임의 규칙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시청자들은 저 게임 안에 주인공이 들어가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을 보라.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 집중적으로 소개한 뒤, 그를 '오징어 게임'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는가. 게임의 규칙은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온다. 


<피라미드 게임>도 그렇다. 


주인공이 어느 고등학교로 전학을 온다.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 소개를 하고, 학교 분위기와 학생들을 충분히 소개한 뒤, '피라미드 게임'이 시작되지 않는가.  



6. 내밀한 곳을 들여다 보는 재미(Secret Societies)


대박 작품마다 들어있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비밀결사(Secret Societies)이다. 여기서 비밀 결사라 함은 일종의 '이너 서클' 또는 '그들만의 리그'라고 하는 것이다. 


비밀결사란 이런저런 이유로 나름의 규칙, 의식, 서약, 은밀한 행동을 만듦으로서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고립시킨 단체를 말한다. 각 집단의 규약은 세상으로부터 회원을 더욱 고립시킨다. 대체로 이 배타적인 집단들은 각자가 규정한 의식과 저으이, 의무, 언어, 심지어 형사법을 가지고 특정 영역에서 권력을 휘두른다. 


우리는 모든 사회집단의 가장 내밀한 곳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엘리트 집단이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선택된 극소수만이 은밀한 의식을 거쳐 들어가는 그런 집단 말이댜. 우리의 상상 속에서 그들은 집단의 규약과 의복양식, 행동양식 등을 완벽하게 마스터해 누가 봐도 그 특별한 비밀결사의 회원인 것을 알 수 있거나 그집단에 가입하기 위해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 낼 대가를 치른다. 그 집단은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공동체로 경호원과 굳은 표정의 보초병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다. 


겹겹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가장 깊숙한 곳으로 가면 돈 콜리오네(대부)나 교황의 심복(다빈치 코드), 최고 법률회사 사장(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최신 핵잠수함의 엘리트 함장(붉은 10월호)과 상어 사냥꾼(죠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비밀결사를 드라마에서도 당연히 찾아볼 수 있다. 


<스카이 캐슬>에서 엘리트 의사들이 모여사는 사택 타운, 그 안에서 묘사되는 교육시장, <블랙독>에서 보여지는 정교사와 기간제 교사들의 세계, 그외 수많은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재벌가의 모습 등 말이다.  


이들은 독자에게 배타적이고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세계를 폭로한다는 점에서 대중문화에 세운 공로를 인정받는다. 내가 선정한 소설들처럼 정의로운 개인이 비밀결사의 비인간적 편견에 맞서서 싸우는 것을 그린 책은 더 큰 공로를 인정받는다. 



7. 도시 대 시골 (Bumpkins versus Slickers)


어떤 이들은 스토리는 둘 중 하나라고 말한다. 


주인공이 떠나는 이야기거나 돌아오는 이야기, 인사이더가 아웃사이더가 되거나, 아웃사이더가 인사이더가 되는 이야기, 또는 시골 촌놈이 서울로 오거나, 도시 뺀질이가 서골로 내려가거나. 


이런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영웅서사 구조를 따르고 있고, 이 책에서 소개한 12권의 초대형 베스트셀러에 당연하게도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 


영웅서사 구조는 기본적으로 헐리우드에서 말하는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 스토리 라인을 따른다. 


물 속에서 평화롭게 살던 물고기가 뭍으로 나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곧장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그것은 대중들에게 강력한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이다. 


즉, 시골이라는 안온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도시라는 차갑고 경쟁적인 곳으로 온 물고기는 과연 어떻게 살아갈까? 도시라는 최첨단의 편리한 곳에서 시골이라는 낙후된 환경으로 떨어진 물고기는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이것은 시골과 도시라는 상징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앞서 말했던 인사이더가 아웃사이더가 되고, 아웃사이더가 인사이더가 되는 이야기로 치환하면,


<피라미드 게임>에서 군인신분인 아버지 때문에 새로운 학교로 전학온 주인공은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스카이 캐슬>에서도 시골에서 상위 1프로의 의사들 커뮤니티로 편입된 주인공은 다가오는 각종 난국들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하다못해, 한국에서 별 걱정없이 잘 살던 주인공이 해외여행(물 밖)을 떠났는데, 시작부터 소매치기를 당해 돈과 여권을 모두 잃어버렸는데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이야기도 이 '도시 대 시골' 이야기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 '도시 대 시골' 스토리의 핵심은 물과 뭍의 대비처럼, 이전과 이후의 환경이 극단적일수록 빛을 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왕자와 거지>도 이 이야기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고, 평범한 직장인이 재벌가 자제와 연애를 하는 로맨틱 코미디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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