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3 : 세상의 모든 서사 구조
파트3 : 세상의 모든 서사 구조
이제 스토리의 기본적 요소와 캐릭터에 대해 알아야 할 내용들을 마치고, 서사구조에 대한 얘기를 할까 한다. 나는 이 서사 구조를 다루는 파트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대중적인 서사 구조들을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다. 이 서사구조들을 익힘으로써 당신은 스토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만, 스토리텔링의 귀재가 되려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당신이 왜 서사구조를 공부해야 하냐면, 당신은 지금껏 독서(특히 고전)을 그다지 많이 안 했기 때문이다.
가령, 어렸을 때 <왕자와 거지>가 재밌어서 동화책으로 수십번 읽었던 아이가 몇 년 후에 청소년판으로 다시 그 책을 읽고, 나중에 성인이 되어 다시 완역판으로 읽었다 치자(물론 그 사이에 에니메이션으로도 보고, 영화로도 보았을 것이다), 그는 <왕자와 거지>의 핵심인 '신분이 뒤바뀌는 스토리'를 좋아하는 것이고, 그런 류의 스토리가 나오는 족족 감상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작가가 됐을 때, 그는 자연스럽게 '신분이 뒤바뀌는 이야기'를 쓰게 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스토리이고,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그 스토리에 적합한 서사 구조가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작가는 서사에 대한 별다른 공부없이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 기술을 구사했을 것이다.
나는 스토리텔링을 하나의 언어라고 비유하는 것을 즐기는데, 그런 차원에서 나는 이런 작가들을 네이티브 스피커라고 생각한다.
습작기 시절, 나는 이야기를 정말 잘 만들고 싶어서 친구들과 고전 읽기 모임을 꾸렸었다. 작가 선배나 선생님들이 해준 '고전에서 길을 찾아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던 것이다. 고전 모임은 시작부터 좌절을 안겨 주었다. 그 많은 고전들 중에서 무엇부터 읽어야 하고, 또 어떻게 읽어야 하는 줄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글 잘 쓰기 위한 목적성을 가지고 읽자니 도저히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게다가 고전을 읽으라고 했던 어르신들도 정작 고전을 읽지 않고, 그 위 어르신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단순히 전달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결국, 몇 권을 읽으며 헤매다가 나는 친구에게 고전 읽기 모임을 중단하자고 했다. 하지만 고전의 매력에 푹 빠진 그 친구는 내 제안을 거부하고, 고집스럽게 고전 읽기 모임을 강행했다. 고전 속에서 반드시 길은 찾겠다면서.
그 결과, 몇 년 뒤 나는 작가가 되었고, 그 친구는 고전 읽기 지도교사가 되었다.
고전 읽기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고전은 읽어야 한다. 다만, 어떤 것을 읽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나는 당신이 고전을 읽겠다고 한다면, 어릴 적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아동판을 두꺼운 완역판으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내겐 그런 책이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레미제라블>의 완역판이었다).
이야기를 잘 만들려면, 지금부터 고전을 많이 읽어서 '길을 찾아야'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 말은 이런 식으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야기를 잘 만들려면 이미 고전을 많이 읽었어야 한다고.
그렇다면, 이야기를 잘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토리텔링이라는 언어를 마스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네이티브 스피커로 태어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토리텔링이라는 제 2 외국어를 문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은 분명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니기 때문에 후자의 방법을 택해야 한다.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문법은 바로 서사구조이다.
서사구조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와 공부는, 어린 시절부터 고전을 제대로 읽어오지 못한 당신이 네이티브 스피커의 수준으로 올라가게 만들,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 지도 모른다.
내가 고전 읽기 지도 교사가 안 된 이유는, 시드 필드의 <시나리오 워크북>에서 3막 구조를 읽히고,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영웅, 신화,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에서 영웅서사 12단계를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이 두 권의 책은 그 동안 단순히 '기승전결'이나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등으로 구조를 짜던 나를 완전히 개안시켜 버렸다.
이후 나는 이 두 가지 구조 이론 말고도 블레이크 스나이더의 <세이브 더 캣> BS2, 블라디미르 프로프의 러시아 민단 31단계 등 다양한 이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격파하기 시작했다.
그 서사구조들을 지금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당신에게 가르쳐 주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세상의 모든 서사구조'를 하나씩 아작을 내보자.
수많은 서사구조 공식 중에서 최고는, 뭐니뭐니해도 영웅서사 구조 12단계이다. 조지프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신화 속의 영웅의 여정 패턴을 크리스토퍼 보글러가 스토리텔링을 위해 12단계로 정리한 것 말이다.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자신의 책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스토리텔링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고대 신화의 패턴에서 일탈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스토리는 조악한 농담에서부터 지극히 고상한 문학에 이르기까지 영웅의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이 말에는 '그 스토리가 재미있다면'이란 단서가 필요하다.
의외로 '영웅의 여행'의 관점에서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런 이야기들은 대개 재미가 없다. 근데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들을 영웅서사구조로 바꾼 뒤 보면, 대체로 재미있어 진다.
바로 이것이 영웅서사구조의 마법이다.
왜 그런 것일까?
영웅서사구조는 인간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때부터 오랜 세월 진화해서 만들어진 가장 완벽한 플롯이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신화가 서로 입을 맞추지 않았음에도 비슷한 패턴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이는 욕망을 성취하는 과정(스토리)에 있어서 어떤 흐름대로 됐을 때 가장 재미있어하는 방식(플롯)으로 끝없이 수정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다양한 스토리텔링 패턴을 배우게 될 텐데, 그 패턴들의 기준점은 바로 지금부터 배우게 되는 영웅서사구조임을 명심하고, 영웅서사구조 12단계의 뽕을 뽑기 바란다.
영웅서사 12단계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져 있다.
보통세상 > 모험에의 소명 > 소명의 거부 > 정신적 스승 > 첫관문의 통과 > 협력자, 적대자, 시험 > 심연에의 접근 > 시련 > 보상 > 귀환의 길 > 부활 > 영약을 가지고 귀환
이게 뭔 소린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조금 지나면 뭔 소린지 명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일단 이번 글에서는 12단계에서 5단계까지만 배우고 익힐 것이다.
3막 구조는 이야기를 세 토막으로 나눈다, 기승전결은 이야기를 네 토막을 나눈다. 그리고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는 이야기를 다섯 토막으로 나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패턴에서 1막과 기(起)와 발단은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같지 않다. 2막은 승전(承轉)이고, '전개-위기-절정'이다. 3막은 결(結)과 결말과 같은 것이다. 이 세 가지 패턴은 이야기의 본체인 2막부분을 세분화하는 데서 차이가 있다.
당신이 지금 1막(기 또는 발단)을 써야 한다고 치자, 무얼 어떻게 쓸 것인가, 좀 막막하지 않는가? 무엇부터 시작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2막으로 넘어가야 할지 깝깝하지 않은가?
그럴 때 망설임없이 영웅서사구조의 처음 5단계를 쓰면 모든 근심이 해결된다.
다양한 서사이론을 연구한 일본의 작법 이론가 오스카 에이지는 도입부를 쓰는데 있어서, 영웅서사구조 1~5 단계보다 좋은 도구는 없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백번 천번 옳은 말이다.
1막(기 또는 발단)은 영웅서사구조에서는 5단계까지이다. 즉, 1막은 보통세상 > 모험에의 소명 > 소명의 거부 > 정신적 스승 > 첫관문 통과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다.
1. 보통세상 - 주인공이 사는 세상에 대해 알려주고,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꿈(목표, 해야할 일)이다. 또한 주인공과 동일시하거나 연민을 하면서 감정이입을 하게 해야 하며, 동경할만한 요소로 매력도 부여해야 한다.
2. 모험에의 소명 - 주인공에게 미션이 전달 된다. 그 미션은 주인공이 꿈을 이루기 위해셔 해야만 하는 것으로, 수사물인 경우 사건이 맡겨지는 것이고, 로코에서는 특별한 이성을 만나는 순간이다. 이 모험에의 소명은 주인공의 목표(꿈)를 명확하게 한다.
3. 소명의 거부 - 주인공은 망설이거나 공포를 드러낸다. 이 단계는 두려움에 관한 것이다. 수사물에서는 주인공이 사건을 맡지 않으려고 한다. 로코에서는 주인공의 연애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망설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망설이거나 거부하는 이유가 매우 합당해야 한다.
나는 왜 스토리마다 소명을 거부하는 부분이 나와야만 하는지 궁금했었다. 소명을 거부 안 하고 바로 미션을 수락하면 되지 않는가. 나의 의문에 대해 보글러의 책은 제대로 된 해답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보글러에게 메일을 써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영웅서사를 알게 된 뒤로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도입부(1막)을 영웅서사로 분석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소명의 거부가 없이 다이렉트로 스토리가 이어지는 영화나 드라마가 재미가 덜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럴까? 고민하고 궁리하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다.
'보통 세상'에서 우리는 주인공과 동일시하거나 연민하면서 감정을 이입하고 있었는데, 그의 입장에서 모험이 오는 순간, 두려운 거라... 그런데 그때 주인공이 소명을 거부하면... 우리 마음 속에서 이런 말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나라도 그러겠다'.
이렇게 마음 속으로 맞장구를 치면서 지금 진행 중인 스토리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불신의 자발적 정지'라고 한다. 주인공의 거부 행동에 동의하면서, 이야기가 가짜일 거라는 불신이 자발적으로 정지되면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소명의 거부는 다시 말하면, 너라면 어떡할 건데 묻는 것이다. 그 답은 나라도 거부하지.
즉, 소명에의 거부는 이야기의 몰입을 돕는 심리적인 장치인 것이다(크리스토퍼 보글러에게 내가 알게 된 사실을 알려줘서 증보판에 보완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여기서 잠시, 당신이 바보 같은 질문을 댓글로 남길끼봐 예상 큐앤에이를 하나 남긴다.
매번 사건이 던져지는 시리즈 수사물의 경우에도 매번 소명 거부가 있어야 하나요?
그렇지 않다. 시리즈물의 경우 대개 파일럿에만 소명의 거부가 있다. 가령, 닥터 <하우스>의 파일럿을 보면, 하우스는 환자를 보라는 원장의 요구(모험에의 소명)을 거부하지 않는가. 하지만 결국 소명을 받아 들이고, 매번 환자를 받아서 에피소드 100개 이상을 가지 않는가.
4. 정신적 스승 - 정신적 스승은 주인공이 소명을 받아 들이게 돕는 역할을 한다. 로코에서는 보통 베프가 그런 역할을 한다. 니가 꿀릴 게 뭐가 있어, 당당하게 만나. 이런 식으로 자극해서 남자를 만나게 한다. 정신적 스승은 사람이 아닌 경우도 많다. 때론 정신적 스승이 어떤 신문 기사나 정보가 될 수도 있는데, 결국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메시지이든 소명을 받아들이게 하면 그것은 정신적 스승인 것이다.
다시 말해, 소명의 거부를 거둬 들이고,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게 만드는 모든 것이 정신적 스승인 것이다.
5. 첫관문의 통과 - 보통 첫관문의 통과라고 하지만 나는 '돌파'라는 표현을 좋한다. 이야기가 더 힘이 있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첫관문을 돌파함으로써 이야기는 2막으로 넘어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여기서 첫관문은 안방에서 거실로 나오는 그런 문이 아니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세상의 문이어야 한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문일 때 드라마가 재미있어진다., 가진 재산을 모두 팔아버리거나, 잘 다니던 학교나 직장을 그만 두거나, 연인과 이별 선언을 하거나 하고 2막으로 가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는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물고기에게 1막은 물이었다면, 2막은 뭍인 것이다.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와서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물 밖인 2막으로 나온 주인공을 궁금해 하고 여정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도 하고, 불신의 자발적 정지도 했지 않은가.
당신은 앞으로 단막의 도입부를 쓸 때 영웅서사 도입부 5단계를 이용해서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미니 시리즈 1화를 쓸 때도 이 5단계를 활용해야 한다. 보통 미니 시리즈 1회는 긴 시리즈의 도입부이기 때문에 이 5단계로 구성된다는 사실은 안 비밀.
자, 그럼... 이제부터 여러분을 반복숙달을 시켜서 몸에 체화되게 하기 위하여 다양한 예시를 들어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