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트루비의 이야기 22단계로 체크하자
드디어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당신은 이야기의 방향성을 잡는 법과 주인공이 갖춰야 할 자격을 배웠으며, 이야기를 세우는 법을 배웠다. 또한 구조를 탄탄하게 하는 법을 배웠고, 스토리를 변주하고 차별화하는 법을 배웠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제대로 작옹하고 있는지 체크 리스트를 통해서 점검하는 것이다. 방향은 맞는지, 주인공의 욕망과 선택은 결말까지 일관되는지, 적대자는 주제를 놓고 주인공과 충분히 대립하는지, 그리고 마지막 선택이 이야기 전체의 가치를 증명하는지 말이다.
존 트루비는 그의 명저 스토리 마스터 클래스(The Anatomy Of Story)에서 훌륭한 이야기 속에서 반복적으로 반복되는 22단계를 제시했다. 이 22단계는 플롯의 배열이 아니라, 이야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한 질문들로 이루어진 체크리스트에 가깝다.
주인공은 정말로 결핍에서 출발했는가?
그 결핍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이야기 끝에서 해소되어야 할 문제로 기능하고 있는가?
주인공의 욕망은 외적 목표와 내적 필요로 따로 설명이 가능한가?
적대자는 단순한 방해자가 아니라, 주제의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인가?
결말에서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은 처음의 선택과 어떤 대비를 이루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다 보면, 당신이 이제껏 만들어왔던 스토리를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싶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스토리텔링은 바로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1단계 : 자기발견, 필요, 욕망
솔직히 스토리를 만들면서 처음부터 자기 발견이니, 필요(Need)니 욕망(Want)이니 하는 걸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처음 떠올린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시작해서 어느 정도 스토리의 윤곽이 나왔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많은 작가들이 이런 거 생각하지 않고 쓰고, 또한 상업적으로 어느 정도 성과도 보이지만, 그 작품이 소위 띵작이라고 하는 명작에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이 기초적인 질문을 소홀했기 때문일 것이다.
욕망은 스토리 전반을 통해 주인공이 해야 할 일, 즉 외적 성취를 뜻하고, 필요는 주인공이 외적 성취를 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정신적인 것을 말한다. 자기 발견은 주인공이 아직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이야기 끝에서 자신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는 순간을 말한다. 즉, 자기 발견은 욕망이 아니라, 필요가 진짜 원하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당신이 어떤 얘기를 만들었던 간에, 그 이야기에는 이야기에는 자기발견, 필요, 욕망 등이 반드시 들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호한 형태로 보이거나 숨겨져 있을 공산이 크다. 때문에 당신은 이 세 가지 요소를 당신의 이야기에 분명하게 추출하여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이 스토리를 완성해 가는데 등대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이 세 가지 요소들은 단계가 진행되면서 다시 한 번씩 강조된다).
<테이큰>에서 브라이언이 원하는 것(욕망)은 액션물 답게 단순하다. 납치된 딸을 구하는 것. 그 과정을 통해서 브라이언에게 필요한 것은, 이혼으로 밀려나 있었던 아버지의 가족으로서의 존재 증명이다. 자기 발견은 결말에서 그가 특수요원에서 진짜 아버지의 역할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즉, 딸을 구한 뒤 귀국해서 엄마를 만나게 해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의 욕망은 초반에는 어린 아이답다. 학대 받는 이모의 집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이 욕망은 호그와트에 가서는 소속의 욕망을 바뀌며, 볼드모트와의 대결로 갈 때는 정의를 위한 욕망으로 바뀐다. 해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 발견이다. 해리포터의 정체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을 갖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존재인 것이다. 해리는 마법사의 돌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서 자기 발견을 한다.
<겨울 왕국>에서 안나의 욕망은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첫눈에 반한 한스와 결혼을 하려한 것이다. 안나의 필요는 진정한 사랑에는 희생으로써 얻어진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자기 발견은 마지막에 엘사를 향해 몸을 던지는 순간이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여주 유하연의 욕망은 계약결혼을 무사히 끝내곤 채무를 해결하고 엄마를 돌보는 것이다. 필요는 자기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자기 발견은 거짓 결혼이 폭로된 뒤 모든 것을 잃은 남주가 프로포즈를 해왔을 때 받아 들이는 것이다. 남주 입장에서 보면, 욕망은 계약 결혼을 통해 스캔들을 수습하고 이미지 관리를 하는 것이다. 필요는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자기 발견은 폭로 이후 자신의 커리어와 이미지를 모두 잃더라도 여주를 선택하겠다고 맘 먹는 순간이다.
2단계 : 망령(Ghost)과 이야기 세계
망령은 과거의 사건이 주인공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현재 주인공 어깨 위에 망령이 올라탄 상태라고 보면 된다. 망령 대신 트라우마라는 용어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트라우마는 과거의 사건이고 그 트라우마가 현재의 선택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는 상태가 바로 망령인 것이다. 따라서 이 망령은 곧 주인공의 성격적 결함이라 달리 말할 수 있다. 때때로 이 망령은 트라우마 없이도 작동 가능하기도 하다. 말하자면, 원래 성격이 그렇게 생겨 먹었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야기의 세계는 주인공의 망령과 욕망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도록 설정해야 한다. 주인공을 괴롭히고 압박하고 선택을 강요하는 그런 세계여야 한다. 또한 주인공의 성격적 결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세계이기도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관과는 다른 의미이다. 존 트루비의 이야기 세계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압박 구조를 보여주는 곳의 의미라면, 세계관은 이야기가 벌어지는 곳의 논리와 규칙을 말한다.
<테이큰>에서 망령은 딸의 성장기에 함께 있어주지 못한데다 이혼으로 인해 가족에서 밀려났다는 상실감이다. 그의 망령은 딸에 대한 과도한 보호 또는 집착을 드러난다. 이야기의 세계는 은퇴한 뒤에도 딸이 사는 곳 근처를 떠나지 못하는 브라이언의 삶이다. 그는 아버지로서 존재감을 증명해야 한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는 버림받은 아이라는 사실(망령) 때문에 학대받는 현실을 타개하지 못하고 있다. 이야기의 세계는 해리는 이모 부부와 또래 사촌으로부터 학대를 받으며, 먼지가 폴폴 날리는 계단 밑 골방에서 살아가는 현실이다. 이 세계는 해리의 결핍과 무력감을 극대화한다.
<겨울왕국>에서 망령은 안나는 어린 시절 사고에 대한 기억이 지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왜 엘사가 왜 궁 안에서 고립돼 있는 알지 못한 채, 안나는 상실감과 그리움을 안고 성장한다. 이야기 세계는 안나는 여왕 즉위식이라는 사회적 무대에서 갑자기 세상과 사람들을 한꺼번에 마주하게 되는 상황이다. 이 세계는 안나가 충동적으로 결혼을 결심하는, '금세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 된 사실에 설득력을 준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망령은 여주의 경우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파혼 당한 경험에서 오는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일 수 있을 것이다. 남주의 경우는 철저하게 포장된 이미지로 살아왔던 탓에 어떤 안 좋은 상황에서도 이벤트로 돌파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야기의 세계는 여주는 삶의 터전인 동사무소이고, 남주에게는 연예계이지만, 남주가 드라마 촬영차 동사무소로 오면서, 이 공간은 두 사람의 공통된 동사무소가 이야기 세계가 된다.
3단계 : 약점과 필요
당신은 모든 주인공에게는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약점은 주인공의 여정에 강하게 영향을 끼칠수록 좋다. 존 트루비는 여기서 약점을 심리적 약점과 도덕적 약점으로 세분화한다. 심리적 약점은 주인공 스스로를 파괴하는 결함이다. 두려움, 회피, 집착, 왜곡된 신념처럼 주인공의 선택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내적 문제이다. 반면 도덕적 약점은 이야기 초반에 주인공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1단계에서 언급됐던 '필요'가 다시 등장한다. 1단계에서 필요가 다소 막연한 느낌이었다면, 이 단계에서 명확하게 정리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필요를 구체화하는 망령과 약점이 새롭게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즉, 필요는 주인공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망령으로 인해 생긴 약점을 극복하는 일인 것이다.
여기까지 정리가 되면 이야기는 분명해진다. 주인공이 욕망을 좇아 나아가지만, 망령으로 인한 약점이 그의 발목을 잡고, 필요는 그 약점을 넘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진짜 목적지로 가게 만든다.
<테이큰>에서 브라이언의 심리적 약점은 특수임무와 이혼 등으로 딸의 성장 과정에 함께하지 못했던 과거에서 기인한다. 그는 이미 한 번 가족을 잃은 상황에서, 자칫 딸을 완전히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이 두려움은 과거의 상실이 만들어낸 망령이다. 이 심리적 약점은 도덕적 약점으로 이어진다. 브라이언은 딸을 사랑하지만 과잉 통제를 하며, 그로 인해 딸에게 상처를 준다. 필요는 브라이언의 강력한 보호자로서의 아버지가 아니라 가족의 일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의 심리적 약점은 버려졌다는 기억에서 비롯된 낮은 자존감이다. 반면, 도덕적 약점은 나오지 않는다. 그의 필요는 낮은 자존감에서 시작된 수동성을 극복하고,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서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겨울 왕국>에서 안나의 심리적 약점은 자라면서 사랑을 받지 못한 탓에 사랑에 대해 곡해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약점은 그로 인해 엘사와 다투고, 왕국 전체를 얼려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필요는 안나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여주의 심리적 약점은 가난으로 파혼당한 경험에서 오는 자기 자신의 가치와 결혼이라는 제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여주에게는 도덕적 약점이 나오지 않는다. 한편, 남주의 심리적 약점은 연예인 생활의 위기는 이벤트 등으로 덮을 수 있다는 오만이고, 도덕적 약점은 그로 인해 남에게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여주는 그녀 스스로가 사랑을 받을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고, 남주는 사랑은 이벤트가 아니라 신뢰와 책임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4단계 : 촉발하는 사건
촉발하는 사건은 '모험에의 소명', '플롯 포인트 1' 그리고 '기폭제' 등의 이름으로 거의 모든 서사 구조에 들어 있는 요소이다. 이는 주인공을 기존의 삶에서 끌어내, 욕망을 향해 나아가게 각성을 시키는 사건을 말한다.
<테이큰>에서는 딸이 파리에서 납치 당하는 사건이고,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해리에게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입학 통지서가 날아오는 것이고, <겨울 왕국>에서는 안나가 한스와 결혼하기로 맘먹는 사건이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는 남주가 스캔들을 덮으려고 여주에게 계약결혼을 제안하는 것이다.
5단계 : 욕망
욕망은 주인공이 이야기 속에서 구체적으로 얻고자 하는 외적 목표를 말한다. 욕망은 반드시 눈에 보이고, 성취여부가 명확하며, 결말에서 성공이냐, 실패냐, 판정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단지,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식의 다짐은 스토리 상에서 욕망이 아니다. 그보다는 '대통령이 되겠다', '누굴 죽이겠다'는 식으로 결과가 명확히 드러나는 목표가 욕망인 것이다.
좋은 이야기에는 보통 한 가지 분명한 목표(욕망)를 가지고 있다. 다만 여러 목표가 나올 때는, 낮은 수준의 목표에서 점점 난이도가 높은 쪽으로 가는 점진적 구성을 해야하고, 그것은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즉, 작은 목표 -> 중간 목표 -> 최종 목표 순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테이큰>같은 액션 스릴러에서 주인공의 욕망(목표)는 지극히 단순하다. 납치된 딸을 구해 오는 것.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이모 집을 벗어나는 것, 마법학교에 적응하는 것, 마법사의 돌을 노리는 볼드모트와 대결하는 것 순으로 목표가 진행된다. <겨울 왕국>에서 안나의 욕망은 언니 엘사를 찾아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참고로 엘사는 자신의 저주를 푸는 것이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여주의 욕망은 계약 결혼을 무사히 마치고 돈을 받는 것이다. 남주는 역시 계약 결혼을 무사히 마치는 것인데, 그는 그로 인해 스캔들 문제를 해결하고 이미지도 지키는 것이다.
6단계 : 조력자
조력자는 주인공의 욕망을 대신 수행해 주는 인물이 아니다. 조력자의 핵심 기능은 주인공이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지점까지 가게 만드는 존재다. 조력자는 정보를 주고, 능력을 보완해 주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막아주며, 때로는 위험한 선택을 부추기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는데, 결정은 언제나 주인공의 몫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테이큰>에서는 딸을 구출하러 가기 전에 적대자의 정보를 알아봐주는 옛동료가 있고, 파리 현지의 동료(나중에 적대자로 변함)가 있고, 또한 돈 주고 고용한 알바니어 통역사도 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론과 헤르미온느 같은 친구도 있고, 해리를 마법학교로 인도하는 해그리드가 있으며, 덤블도어 같은 멘토형 조력자도 있다.
<겨울 왕국>에서는 크리스토프와 울라프가 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이들이 안나가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는 게 아니라, 틀리도록 방치해서 큰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점이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여주에게는 동사무소 직원과 어머니 등이 있을 것이고, 남주에게는 형제 같은 매니저가 있을 것이고, 펜클럽 회장도 있을 것이다.
7단계 : 적대자와 미스터리
적대자는 주인공의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스토리에서 적대자는 단순히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다. 적대자는 주인공의 욕망과 세계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힘이며, 주인공이 끝까지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반대편 논리이다. 그래서 좋은 적대자는 주인공보다 힘이 세거나 똑똑해서가 아니라, 주인공이 아직 깨닫지 못한 약점과 진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기 때문에 위협적이다.
또한 적대자에게 미스터리가 연결될 때 스토리가 훨씬 강력해진다. 적대자가 처음부터 분명하게 드러나면, 이야기는 단순한 해결 게임이 된다. 하지만 적대자가 감춰져 있거나, 적대자를 잘못 오해하고 있거나, 조력자인지 적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때 스토리는 훨씬 긴장감이 증폭된다.
<테이큰>에서 적대자는 국제 인신매매 조직으로 명확한다. 즉, 단순한 해결 게임이다. 하지만, 어디에 잡혀있는지 모르는 딸을 찾아가는 미스터리와 정해진 시간 안에 찾아야 한다는 타임 리미트가 결합되어 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적대자는 볼드모트이다. 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처음에는 스네이프 교수가 적대자로 오인을 받지만, 나중에 퀴렐 교수가 볼드모트임이 드러난다.
<겨울 왕국>에서 적대자는 한스인데, 처음에 그는 조력자로 등장하지만 나중에 적대자임이 밝혀진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적대자는 파파라치, 기자, 연예계 시스템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미스터리를 가미한다면, 계약 결혼의 진실을 아는 누군가로부터 협박을 받는 상황을 넣으면 긴장감이 올라갈 것이다.
8단계 : 적대자/가짜 조력자
주인공을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인공의 욕망을 왜곡하거나, 잘못된 선택으로 이끄는 존재를 말한다. 이들은 주인공에게 물리적 위협을 가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선택을 지연시키거나, 도덕적 비용을 치르게 만드는 일을 주로 한다.
<테이큰>에서는 옛동료인 프랑스 경찰이 가짜 조력자이다. 그는 도와주는 척하면서 시간을 지연시키고, 미행까지 붙인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퀴렐 교수인데, 그는 신뢰할만한 인물로 보이지만 사실은 볼드모트가 빙의한 인물이다. <겨울 왕국>에서는 한스가 바로 가짜 조력자이다. 안나를 사랑하고 걱정해주는 인물로 나오지만 사실은 왕국을 정복하려는 야욕을 가졌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는 매니저나 소속사 대표가 가짜 조력자로 등장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들은 남주에게 가장 신뢰받거나, 계약 결혼 프로젝트 자체를 제안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9단계 : 첫 번째 발견과 결심 : 변화된 욕망과 동기
말은 좀 어려울 수 있지만, 이 단계는 사실 매우 간단하다. 첫 번째 발견이라는 것은 주인공에게 처음으로 새로운 정보가 제공된다는 것이다. 이 정보는 필연적으로 주인공에게 어떤 결심을 하게 되는데, 그 내면에는 변화된 욕망과 동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차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첫 번째 발견 외에 결심과 그 결심의 배경으로 변화된 욕망과 동기까지 굳이 알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물론 몰라도 글을 쓰는데 커다란 지장을 초래하진 않는다. 사건은 여전히 이어지고, 장면도 만들어 질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를 얻은 이후에 동기와 욕망이 변하고, 그 때문에 어떤 결심을 했는지가 이해된다면, 이후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어지는 사건들에서 일관성을 생기고, 갈등을 증폭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최초의 사실 발견은 주인공이 적대자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다. 이 발견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주인공의 결말까지의 여정이 결정되며, 이후 계속되는 사실 발견은 점점 중요해야 하며 강도도 세져야 한다. 그래야 클라이막스에서 카타르시스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 발견들이 과거에는 한 편의 영화에서 두세 개 정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7개 이상 발견되고 있는 추세이다. 적으면 루즈해지고, 많으면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지는 것이다.
<테이큰>에서 브라이언은 납치범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옛 특수요원 동료에게 감정을 부탁한다. 동료는 그에게 목소리 주인공인 적대자에 대한 정보(사실 발견)을 준다. 순간, 그 적대자를 찾기 위한 결심이 서고, 딸을 구해야 한다는 다소 막연한 욕망에서 적대자를 먼저 찾아야 한다는 욕망으로 변화한다. 딸을 구해야 한다는 동기는 변화하지 않는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는 첫 번째 발견으로 해그리드에게 이마의 흉터가 볼드모트에 의해 생긴 것이며, 그가 부모님을 죽인 장본인이란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일 수 있다. 이전의 욕망은 단지 학대받는 이모집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지만, 이 순간 그의 욕망은 막연하나마 볼드모트와의 대결로 변화하고, 그의 동기는 부모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다는 것이다. 결심은 호그와트에 입학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만, 해리는 이미 입학을 결심하고 해그리드를 따라왔기 때문에 표현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첫 번째 발견이 진짜 첫번째 발견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그도 그럴 것이 결심이 드러나지 않고 모호하기 때문에 이어지는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실 발견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를 얻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정보가 주인공의 행동을 바꾸는가이다. 따라서 이 장면은 BS2에서 말하는 '주제 명시'에 가깝다.
해리는 악에 대항하기에는 너무 힘이 없고, 아직까지는 매우 수동적이다. 이후 스토리는 마법을 배우고 스포츠를 즐기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호그와트 일상을 그린다. 이 과정을 통해 해리는 사회화되며 능동적으로 바뀐다. 그러다 해그리드와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셋 달린 개가 지키는 것(마법사의 돌)은 덤블도어와 니콜라스 플라멜에 관계된 일이라는 정보를 얻게된다. 이것이 실질적인 첫번째 사실 발견이라 할 수 있다. 해리는 니콜라스 플라멜에 대해 조사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학교 생활을 잘하겠다는 것에서 미스터리를 풀겠다는 욕망의 변화를 가진다. 또한 그것의 동기는 해리가 수동형 인간에서 농동형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겨울 왕국>에서는 엘사가 왕국을 얼려버리는 사건으로 인해 안나는 엘사의 '통제하지 못하는 힘'에 대해 알게 된다. 안나는 얼음성에 스스로 갇힌 엘사를 구하러 가기로 결심하는데, 언니에게 사랑을 인정받고 싶었던 욕망은 언니를 구해야 한다는 욕망으로 바뀌고, 동기는 자기 때문에 언니가 그렇게 됐다는 자책 때문이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는 무늬만 결혼인 줄 알고 계약 결혼을 허락했던 여주가 남주에 의해 혼인 신고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면 좋을 듯하다. 여주는 음모에 말려들었다는 각성을 하게 되고, 어떻게든 혼인 신고를 취소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욕망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 돈을 받는 것에서 혼인 신고를 취소해야 한다는 쪽으로 변화하고, 동기는 현실적인 문제를 타개에서 자칫하면 인생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경각심으로 변화한다.
10단계 : 계획
새로운 정보를 얻었고 결심했으니 이제 주인공은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 첫번째 계획은 실패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세계의 진짜 규칙을 모르고 있고, 적대자의 규모, 능력 그리고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의 약점 또한 극복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계의 목적은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복잡하며, 적대자가 예상보다 강력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테이큰>에서 브라이언은 딸의 부숴진 핸드폰 속 사진에서 납치범 일당의 얼굴을 알아낸다. 공항으로 간 그는 범인을 잡으려 하지만 죽고 만다. 납치 조직의 핵심으로 가는 길이 처음부터 막힌 것이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투명 망토를 선물로 받자마자 도서관으로 니콜라스 플라멜에 대한 자료를 찾으러 간다. 하지만 호그와트 관리인에게 들켜 실패하고, 본인은 가까스로 빠져나오게 된다.
<겨울 왕국>에서 안나는 말을 타고 엘사를 찾아나섰지만, 추운데다 말까지 도망가자 오두막으로 피신하게 된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여주는 사기에 의한 혼인 신고라며 가정법원에 취소 소송을 내려고 하지만, 딸의 결혼으로 행복해하는 부모를 보자 마음이 흔들린다. 게다가 소송을 시작하면, 남주는 물론 자신도 사회적으로 매장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주는 소장을 들고 법원까지 갔지만 차마 제출하지 못한다.
11단계 : 적대자의 계획과 치명적인 반격
이 단계에서 이야기의 주도권은 잠시 주인공에서 적대자로 넘어간다. 주인공이 첫 번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때 적대자는 그보다 한 발 앞서 있거나, 혹은 주인공의 동향을 파악하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적대자는 주인공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사실이 드러나야 하고, 적대자의 계획과 반격이 주인공에게 치명적이어야 한다.
<테이큰>에서는 적의 존재가 압도적인 두려움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는 관문 돌파 형식이기 때문이다. 적대자의 계획은 후반부에 드러난다. 딸을 경매에 붙여 부자의 성노예로 팔려고 하는 것, 치명적인 반격은 경매장에서 브라인을 잡아서 죽이려하는 장면이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육체를 잃은 볼드모트는 퀴렐의 몸에 기생하며 호그와트의 상황을 파악하며, 마법사의 돌을 찾는 동시에 스네이프가 의심을 받도록하고, 해리를 제거하려고 시도한다.
<겨울 왕국>에서 한스는 엘사와 안나가 모두 무력해진 순간, 권력을 장악한다. 또한 안나를 죽게 내버려 두고, 엘사를 처형하려고 한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로맨스 드라마는 설정상 압도적인 적대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남주와 여주의 계약 결혼 생활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가 적대자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결혼에 의심을 품은 어느 적대자(방송국 피디)가 둘의 부부생활을 밀착 취재하는 리얼리티 예능을 제작하는 것이 적대자의 반격이 될 수 있겠다.
12단계 : 행동
이 단계는 전체 스토리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영웅서사에서 '시험'이나 BS2에서 재미와 놀이에 해당한다. 이 방식은 앞 선 단계들인 '발견(결심) - 계획 - 반격'의 반복으로 보통 구성되며, 점차 강도가 세지면서 14단계인 겉보기 패배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주인공은 점점 어려운 미션을 해결해 가면서 세계의 규칙을 몸으로 배운다.
<테이큰>에서 브라이언은 현지의 옛 동료의 비협조를 무릅쓰고, 범죄 소굴로 찾아가 적들을 해치우고 고문하며, 악의 핵심으로 접근한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는 론, 헤르미온느와 함께 호그와트의 규칙을 어겨가며, 마법사의 돌을 찾아나선다. <겨울 왕국>에서 안나는 크리스토프와 함께 얼음 산으로 향하며, 늑대의 공격을 받는 등 난관을 헤쳐나간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는 여주와 남주가 계약 결혼 속에서 부부의 리얼리티 관찰쇼를 찍으며, 둘 사이의 아슬아슬한 선을 유지해 나간다.
13단계 : 조력자의 공격
조력자의 공격은, 자칫하면 조력자가 주인공이나 적대자를 물리적 공격을 하는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런 공격이 아니다. 적대자를 감당할 수 없어 좌절하거나 주저하는 주인공을 다시 싸울 용기를 갖도록 '자극(내면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때 주인공은 조력자에게 받은 조언, 충고, 압박 등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결과는 다음 단계인 '겉보기 패배'이다.
<테이큰>에서는 브라이언이 매음굴에서 구출한 딸의 옷을 가지고 있는 여자가 조력자이다. 마약에 중독된 초췌한 모습의 그녀는, 그 자체로 브라이언을 자극하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헤르미온느가 해리에게 제한 구역에 들어가라고 자극한다. <겨울 왕국>에서 안나는 숲속 요정에게 심장에 얼음이 박혀있는데, 그것을 녹이려면 진정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크리스토프는 안나를 위한답시고 한스에게 데려다 줘서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는 리얼리티 쇼가 진행되는 와중에 둘이 각방을 쓴다는 소문이 돌자, 소속사 대표는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한 방에서 생활한다는 내용을 확인시키는 에피소드를 기획한다. 주인공들은 한 방을 쓰는 것처럼 꾸며놓고 지인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하면서 집 구경을 시켜준다. 이후 시작된 회식에서 남녀 주인공은 술이 취한 채 안방에 함께 들여보내진다.
14단계 : 겉보기 패배
이 단계는 이야기의 중간점 이후, 본격적인 추락이 시작되기 직전에 위치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주인공이 이겼거나(겉보기 승리) 혹은 완전히 졌거나(겉보기 패배)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진짜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한 상태다. 작법 어록 중에 절망을 주기 전에 희망을 주고, 희망을 주기 전에 절망을 주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겉보기 패배 또는 승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감정적으로 제대로 고점을 찍거나, 저점을 찍어야 한다.
<테이큰>에서는 브라이언이 파리 인신매매 조직의 근거지를 급습하지만, 딸은 이미 다른 곳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절망적인 상황인, 거짓 패배의 순간이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해리의 퀴디치 경기에서 살해될 뻔하는 위기(거짓 패배)를 맞는 장면이다. 여기까지는 마법 학교의 생활이 주 스토리였지만, 이 지점부터는 생존과 미스터리의 해결을 위한 스토리(진짜 승리)로 전개된다.
<겨울 왕국>에서는 영웅서사의 관점으로 보면, 안나가 얼음성 안으로 들어가 엘사를 만나는 장면이다. 하지만 BS2의 관점에서 보면, 얼음성 안에서 안나가 엘사를 자극했다가 심장이 얼려지는 상황인데, 이는 거짓 패배로 해석할 수 있다. 패러다임 관점에서 보면, 비가역적 사건이 일어나는 곳임으로, 안나의 심장이 얼어버린 사건을 기점으로 안나는 엘사를 데리고 오려는 스토리에서 그 자신이 살아남아야 하는 스토리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존 트루비 관점에서 보면, 한스가 안나를 가둬놓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는 둘이 얼떨결에 동침을 하게 된다. 여주 입장에서는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때부터 패러다임 이론에서 말하는 관계의 대전환이 일어난다. 가짜 결혼을 지키는 스토리에서 진짜 결혼으로 가는 스토리로 가기 때문이다. 영웅서사에서는 둘이 깊은 관계(?)가 심연의 접근으로 충분히 해석된다. BS2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둘 사이를 망쳐버린 것을 봐서 가짜 패배일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진짜 승리(진짜 결혼)으로 가는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15단계 : 두 번째 발견과 결심 : 강박 행동, 변화된 동기와 욕망
이 단계에서 주인공은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 첫번째 발견에서 이 세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후 점차 중요한 정보들의 발견으로 스토리를 상승시켜 오다가, 바닥을 치는 거짓 패배를 맛본 뒤, 주인공은 두 번째 발견을 한다. 이 발견은 문제를 이전 방식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 단계에서 주인공은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 보통 두 번째 발견은, 적대자의 진짜 정체나 목적, 문제의 규모가 상상 이상이라는 사실, 자신의 약점이 치명적이라는 자각, 지금까지의 선택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깨달음 등을 동반한다.
강박행동은 두 번째 발견에서 충격을 받은 주인공이 어떤 옳다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방법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어서 하는 행동을 말한다. 일종의 자포자기에서 나오는 행동일 수도 있다.
여기서 주인공은 새로운 욕망과 동기를 갖게 된다. 욕망은 이제 분명해 지고, 동기는 이제까지의 실패를 되돌려야겠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테이큰>에서 브라이언은 인신매매 조직이 딸에게 마약을 주사했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 그는 딸을 구하는 것은 물론, 범죄조직도 절단내야겠다는 욕망을 갖게 되고 실행에 옮길 결심을 하게 된다. 그것의 동기는 딸이 잘 못 됐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강박적으로 악당을 고문하고, 옛동료 아내를 총으로 쏴서 부상을 입히고, 인신매매 조직원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는 학교 내부에 볼드모트가 있고, 그는 마법사의 돌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해리는 마법사의 돌을 지키겠다는 욕망을 가지며, 그것은 볼드모트가 먼저 갖게 되면 마법 세계 전체가 그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라는 공포감을 동기로 한다. 해리는 교수들에게 알리지 않고 론, 헤르미온느와 함께 규칙을 어기고 금지 구역에 들어간다.
<겨울 왕국>에서 안나는 자신의 심장에 박힌 얼음은 진정한 사랑만이 녹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의 욕망은 엘사를 구하겠다는 것에서 자기 자신이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변화한다. 그것의 동기는 살고 싶다는 본능이다. 그래서 크리스토프에 의해서 왕국으로 돌아온 안나는 한스에게 강박적으로 키스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는 서로의 목적을 위해 결혼을 지켜야 했다면, 이제는 사랑을 위해 결혼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그날의 동침은 단순한 사고(?)로 치부하기로 했지만, 여주와 남주는 각각 상대방과 진짜 결혼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왜냐,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16단계 : 관객의 발견
관객의 발견이란, 주인공보다 관객이 한 발 먼저 진실을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전문용어로 '극적 아이러니'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 극적 아이러니를 사용하는 이유는, 관객을 한층 더 강력하게 이야기에 몰입시키기 위함이다. 관객은 알고 있는데, 주인공은 모른 상태에서 위험한 선택을 할 때 관객은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존 트루비의 22단계에만 있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참고로, 정보의 양이 주인공이 관객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때 미스터리라고 하고, 주인공과 관객이 똑같이 알고 있을 때 서스펜스 스릴러라 하고, 주인공보다 관객이 더 많이 알고 있을 때 극적 아이러니라고 한다.
<테이큰>에서는 서스펜스 스릴러 스타일로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의 발견이 생략되어 있다. 만약 이 작품에 관객의 발견을 넣는다면, 브라이언이 딸이 경매에 올려지는 것을 발견하기 전, 즉 경매가 벌어지는 건물에 도착하기 전에 경매 상황을 보여주면, 관객들은 브라이언에게 딸이 경매로 팔려가기 전에 구하라고 마음 속으로 소리칠 것이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관객들에게 퀴렐이 진짜 적이며, 볼드모트가 퀴렐에 빙의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준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해리는 스네이프를 계속 의심해서 관객들에게 안타까움을 선사한다.
<겨울 왕국>에서 관객의 발견은 한스가 악당이라는 사실을 주인공들보다 먼저 알아챌 때이다. 엘사를 얼음의 성에서 잡아와 가두는 것을 관객에 보여주는데, 그 다음 장면이 크리스토프가 안나를 안고 한스에게 데려다 주는 장면이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는 파파라치 연예매체에서 이들의 계약 결혼을 탐사 취재하고 있는 내용이 나오고, 그게 공개됐을 때 어떤 파급효과가 미칠지도 나온다.
17단계 : 세 번째 발견과 결심
세 번째 발견은 주인공이 적대자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이다. 즉, 주인공이 이야기에서 가장 깊고, 가장 잔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다. 여기서 결심은 적대자와 맞서 싸우겠다는 즉각적인 결정이다. 때론 이 모든 나쁜 일들이 주인공 자신에게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테이큰>에서 브라이언은 인신매매 조직의 최종 단계인 경매장에 도착해서, 딸이 경매에 올려지는 것을 본다. 그는 딸을 구해냄과 동시에 조직들을 싹 다 처단하겠다고 맘을 먹는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는 지하 거울의 방으로 내려가 볼드모트가 빙의한 퀴렐 교수를 만난다. 그는 퀴렐교수(볼드모트)에게 마법사의 돌을 빼앗기지 않을 결심을 한다. <겨울 왕국>에서 안나는 한스가 키스를 해주지 않자 배신감을 느낀다. 한스는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안나는 자신을 살려줄 진정한 사랑 크리스토프에게 달려가기로 한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는 파파라치 언론매체의 배후에 소속사 대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남주와 여주는 위기에 처하고, 남주는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8단계 : 관문, 시련, 죽을 맛보기
관문, 시련, 죽을 맛보기는 결국 같은 말이다. 영웅서사의 '귀환의 길'이고, BS2에서는 '3막 진입'이다. 주인공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상황이다.
<테이큰>에서 3막 진입은 브라이언은 악당을 협박해서 딸을 경매에서 사게 만든 뒤 데릴러 가다가 습격을 당해서 보일러실에 묶은 상태에서 시작한다. 경매를 담당하는 책임자는 브라이언을 죽이라고 한다.
<해리포터>에서 3막 진입은 해리가 마지막 방으로 들어가 돌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이제 이야기는 학교 생활이 아니라, 해리가 볼드모트(퀴럴을 대리인으로 내세운)와 직접 대면하는 결전으로 전환된다.
<겨울 왕국>에서 3막 진입은 안나가 마지막 힘을 내어 ‘진정한 사랑’을 찾아 크리스토프에게 달려가는 순간이다. 한스의 키스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사랑을 정의하려는 행동이 시작된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3막 진입은 남주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고 여주를 선택하는 순간이다. 그는 소속사의 만류, 대중의 조롱, 계약의 진실을 모두 감수하고 “그럼에도 내가 선택할 사람은 그녀”라고 선언한다.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오해를 풀고, 관계를 회복하고, 결말로 달려가는 해결의 궤도로 들어간다.
19단계 : 전투
전투는 최종적으로 적대자와 물리적으로 싸우는 것을 말한다. 영웅서사에서 귀환의 길이고, BS2에서 피날레라 할 수 있다. 화끈한 싸움을 스펙타클하게 보여줄수록 좋다.
<테이큰>에서 피날레는 브라이언이 인신 경매장에서 탈출한 뒤 딸이 끌려간 유람선에 뛰어 들어가 악당들을 모두다 처리하고, 끝내 딸을 구하는 에피소드이다.
<해리포터>에서 피날레는 해리가 볼드모트(퀴럴)과 대결을 펼치는 부분이다. 해리는 지식이나 운이 아니라, 자신의 용기와 지혜로 몰드모트라는 악을 저지한다. 해리는 이 부분에서 더 이상 나약한 아이가 아니다.
<겨울 왕국>에서 피날레는 안나가 엘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칼을 막는 희생이다. 이 행동은 진정한 사랑은 로맨스가 아니라 희생 정신임을 드러내고, 안나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피날레는 남주가 무릎을 꿇고 프로포즈하며, 동시에 여주가 ‘사치’라 여겼던 사랑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장면이다. 둘은 계약서를 찢는다. 둘은 서로의 편의에 의해서 계약 결혼을 선택했지만, 이제는 서로를 깊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20단계 : 자기 발견
자기 발견은 지금까지 주인공이 스토리를 만들어 오면서 어떻게 변했는가 하는 것이다.
<테이큰>에서 브라이언은 무자비한 특수요원에서 다시 딸바보 아빠로 돌아왔음을 깨닫는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는 더 이상 나약하고 수동적인 아이가 아님을 알게 된다. <겨울 왕국>에서 안나는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임을 아는 성숙한 인간이 된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여주와 남주는 결혼은 도구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21단계 : 도덕적 결심
도덕적 결심은 자기 발견으로 알게 된 변화된 모습으로 주인공이 그에 걸맞는 선택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테이큰>에서 브라이언은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무사히 돌아와 엄마에게 돌려보낸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해리의 도덕적 결심이라 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겨울 왕국>에서 안나는 크리스토프와 사랑을 가꾸어 나간다.
<탑배우와 동직원>은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여주와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22단계 : 다시 찾은 평정
다시 일상에 돌아왔지만, 주인공은 그대로가 아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된 것이다(더 못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테이큰>에서 브라이언은 딸을 보컬 코치에게 데리고 간다. 딸과 한층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는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마법의 세계에서 머글(인간)의 세계로 돌아간다. <겨울 왕국>에서 아렌델 왕국은 다시 평화를 되찾는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남주와 여주는 아들 딸 낳아 행복하게 산다.
이야기 22단계는 존 트루비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스토리를 깊이 통찰한 결과물이다.
존 트루비에게 스토리란, 욕망을 가진 인물이 자신을 압박하는 세계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대가를 치르며 새로운 선택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이 정의 안에는 캐릭터, 갈등, 구조, 주제, 그리고 변화라는 스토리의 핵심 요소가 모두 담겨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22단계는 새로운 공식이라기보다는 스토리를 작동시키는 요소들의 정리된 목록에 가깝다. 영웅서사, 시드 필드의 패러다임 이론, 블레이크 스나이더의 BS2에서 배웠던 질문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고, 여기에 몇 개의 중요한 관찰 지점이 덧붙여진 형태라 볼 수 있다. 즉, 완전히 다른 길을 제시한다기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서사 원리를 더 촘촘하게 점검할 수 있도록 만든 지도인 셈이다.
이 22단계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내가 이 책 전체를 통해 누차 강조해 왔듯이 유연성이다. 단계의 순서나 개수를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각 단계가 던지는 질문을, 내 이야기의 맥락에 맞게 어떻게 변형하고 선택하느냐다. 내가 이 장에서 기존 영화 세 편과 나의 자작 스토리 한 편을 분석하며 보여준 것 역시, 정답을 제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유연하게 사고하는 방식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만약 이 22단계를 포함한 여러 서사 구조를 당신의 이야기에 곧이곧대로 적용하려 든다면,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를 낳고, 결과물 역시 구조가 먼저 보이는 딱딱한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유연성이고, 그 유연함이야말로 크리에이티브의 본질이다.
여기서 나는 ‘사이드 이펙트’라는 개념을 말하고 싶다. 의학에서 사이드 이펙트란, 치료를 목적으로 한 작용과는 별개로 나타나는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말한다. 비아그라나 위고비 같은 약물 역시, 원래 개발 목적과는 다른 사이드 이펙트에서 출발해 전혀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된 사례들이다.
나는 스토리텔링에서도 이런 사이드 이펙트가 발생한다고 믿는다. 서사 구조를 엄격하게 지키려는 순간이 아니라, 구조를 이해한 상태에서 비틀고, 생략하고, 어긋나게 사용할 때, 작가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강력한 이야기의 순간이 탄생한다. 그것이 바로 서사 구조를 ‘공식’이 아니라 ‘도구’로 사용할 때 얻을 수 있는 보너스다.
그래서 이 이야기 22단계는 초고를 쓰기 전에 꺼내드는 설계도가 되기보다는, 초고를 완성한 뒤 책상 위에 펼쳐 놓는 점검표가 되어야 한다. 내가 빠뜨린 것은 무엇인가, 이 인물은 왜 여기서 설득력을 잃는가, 중간 이후 이야기가 늘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말이 왜 허전하게 느껴지는가. 그런 질문 앞에서, 지금까지 배워온 서사 구조들과 이 22단계는 분명히 강력한 힌트를 제공해 줄 것이다.
이제 이 책은 끝났다.
하지만 당신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끝)
감사합니다.
이 연재를 완결하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네요.
이 연재는 몇 달 후에 책으로 엮어져 나올 예정입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변함없는 관심 부탁 드립니다.
이제 한 동안은 미뤄두었던 창작을 남발하고자 합니다.
이기원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