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더 잘 쓰게 된다 19

모든 이야기는 프랙탈 구조로 되어 있다.

by 이기원

프랙탈 구조(Fractal Structure)


존 요크는 그의 저서 '숲속으로(Into The Woods)'에서 이야기는 프랙탈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프랙탈은 수학, 자연과학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전체의 형태가 부분 속에서 그대로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이 개념을 서사에 이런 식으로 적용한다. 하나의 스토리가 3막 구조로 나눌 수 있다면, 그 중 어떤 막이라도 3개 구조로 나눌 수 있으며, 그렇게 나눠진 결과물인 시퀀스도 3개의 구조로 나눌 수 있고, 심지어 하나의 씬도 3개의 구조로 나눌 수 있다고 말이다. 단, 씬이라는 이야기의 하부 단위에서는 한두 가지 요소는 생략되고 한다. 어쨌든 그는 이야기 안에 이야기가 있고, 그 안에 또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작동방식이 같다는 것이다.


이 프랙탈 구조 이론은 미니 시리즈나 장편 소설의 구조를 이해하거나 설계하는데 밑바탕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서사구조는 2시간짜리 영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습작 중인 많은 작가들은 미니 시리즈나 장편 소설처럼 긴 호흡의 서사를 만들 때, 과연 이런 구조들이 그대로 유효한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존 요크의 프랙탈 구조 이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본질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이야기가 프랙탈 구조를 가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2시간짜리 영화에 적용되던 서사 원리가 길이가 늘어난다고 해서 바뀌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장편 서사는 단순히 한 이야기를 길게 늘여 쓴 것이 아니다. 하나의 큰 이야기 안에 여러 개의 ‘완결된 이야기 단위’들이 중첩되어 있고, 각 단위는 저마다 3막 구조를 가진다. 미니 시리즈 같은 스토리도 그 자체로 3막 구조로 이해되고 분석될 수 있다. 하지만, 두 시간 짜리에서 각 막의 길이가 장편 서사로 갈 때 두 시간 짜리에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한 오해가 장편 서사을 만드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내가 이번 글을 통해서 확실하게 설명을 해줄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다음 내용을 뼈에 새겨 잊지 않기 바란다.


회별 러닝타임이 60분인 12부작 미니 시리즈가 있다면, 총 러닝 타임은 12시간이다. 이것을 한 편의 영화 길이에 비례해서 3막 구조로 나눈다면, 1막은 3부 끝이 될 것이고, 2막은 4부에서 9회 끝까지 6회 분량이 될 것이며, 나머지 3회 분량이 12부까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중간점은 6부 끝이 될 것이고.


하지만 이런 식의 3막 구조를 갖는 미니 시리즈는 단언컨데 단 한 작품도 없다. 물론 어떤 작가는 그렇게 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미니 시리즈는 어떻게 3막으로 나눌 수 있을까?


미니 시리즈에서는 보통 1부를 1막으로 본다. 필요한 설명이 많으면 2부까지 1막으로 만들지만, 보통 1부를 1막으로 한다. 최근에는 1부 중간 쯤부터 2막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고, 아예 1막을 프롤로그로 짧게 설명하고 바로 2막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결국 대중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재미있는 2막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1막의 용도는 2막을 보게 하기 위한 빌드업이라 볼 수 있다.


태초에 이야기가 생겨난 이래로 지금까지 1막은 점점 짧아져 왔고, 현재에 와서는 극단적으로 짧아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내가 대학 다닐 때 교양 서적으로 일리아드 오딧세이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두꺼운 책은 읽어도 읽어도 이야기가 시작이 안 되어 거의 미쳐버릴 뻔했었다. 그 책의 대부분이 1막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대학을 졸업하고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한 습작을 하면서는 '레미제라블'의 5권 짜리 완역본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충격을 한 번 받은 것이, 장발장이 성당에서 은촛대를 훔치는 장면이 2권에 나온다는 것이었다. 1권은 장발장에게 은촛대는 물론이고, 은식기까지 싸 준 신부의 일대기였다. 즉, 장발장을 용서하고 은혜를 베푼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1권의 3백여 페이지를 도입부로 할애한 것이었다. 하지만 레미제라블도 일리아드 오디세이에 비하면 약과였다.


옛날엔 왜 그렇게 써야만 했던 것일까?


감히 추측컨데, 오래 전 옛날에는 요즘처럼 스토리들이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토리의 홍수 속에서 살아온 우리는 짧고 간결한 도입부만 봐도 그 이야기가 어떤 얘기인 줄 즉각적으로 알아챈다. 하지만 스토리가 귀한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미주알고주알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으면, 2막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1막을 길게 가져가면, 대중들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스토리에서 바로 탈출하고 만다. 다른 대체재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재미있는 2막을 원하고, 그것이 길어지기를 바란다. 이럴 때 쓰는 이 바닥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재미있는 씬은 길어도 짧고, 재미없는 씬은 짧아도 길다. 따라서 작가는 2막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1막에서 주인공과 설정, 그리고 욕망을 빠른 시간 내에 세팅해야만 한다.


예전 미니 시리즈가 16부작이나 20부작이 기본이던 시절에는 1막을 4부까지 가져가는 일이 매우 흔했다. 이때는 4부까지 주인공의 어린 시절이나 백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이 일종의 국룰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최대 한 계치가 1부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이런 질문을 해온다.


'임상춘 작가는 <폭삭 속았수다>에서 어린 시절을 한참 보여줬잖아요!'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너는 임상춘이 아니잖아.'


작가가 힘을 가지면, 뭐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망생이에겐 언감생심일 뿐이다. 당신의 드라마에게 어린 시절을 넣고 싶으면, 대가가 될 때까지 꾹 참으며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몇 년 전부터 드라마 작가들이 '1막의 길이'로 인해 세대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들이 시대가 변한 지도 모르고, 1막을 길게 가져간 대본을 써왔다가 고배를 마셨다는 얘기가 수시로 들려온다. 나는 그들의 심정을 너무나 잘 이해한다. 옛날 포맷에 익숙해진 탓에 요즘 스타일로 썼다가는 작가 스스로가 본인이 쓴 스토리를 납득을 못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올드 패션 작가들의 일부는 1막이 짧아지는 현 세태를 비판하고 강도 높은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 작가들(대부분 나와 동시대의 작가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당신의 작품을 호메로스(일리아드, 오딧세이)나 빅토르 위고(레미제라블)가 봤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대중 작가는 그 시대 대중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요즘 대중들은 1막이 긴 스토리를 끔찍하게도 싫어한다.


<중증외상센터>를 보면, 중동의 어느 분쟁 지역에서 포탄을 피해 오토바이를 달리는 주인공의 프롤로그가 1막이다. 그리곤 바로 2막으로 들어가 서울의 병원에 등장한 그가 다양한 환자들에게 공격적인 의료적 처치를 해나간다.


예전 같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구조이지만, 요즘 대중들을 그런 구조를 아무렇지 않게, 아니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 들인다.


"<중증외상센터>는 원작인 웹소설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앞서 <폭삭 속았수다>에 대한 질문을 했을 법한 사람이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이렇게 친절하게 답해 보겠다.


"예전 같으면, 웹소설을 각색할 때 2막의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서 1막을 창작해서 넣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안 해도 대중들이 이해하고 다 받아준다고."


그렇다. 대중들이 드라마에서도 1막을 과감하게 줄이는 것을 용인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요즘 웹소설은 아예 1막없이 바로 2막부터 시작한다. 웹소설의 주요 소재인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회빙환하게 됐는지, 공들여서 설명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회빙환을 독특하게 잘 써야 인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아침에 눈을 뜬 주인공이 이렇게 말한다.


"아, 뭐야! 나 10년의 회귀했잖아!"


그리고 바로 2막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도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 들인다. '회빙환'으로 가는 과정을 이미 수없이 보면서 학습을 했기 때문이다. 대중의 관심은 오직 2막인 것이고, 거기서 원하는 것은 주인공이 유능함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과정이다.


주인공이 유능함으로 위기 돌파하는 것은 영웅 서사로 치면, 2막의 첫 단계인 '친구, 적, 시험'에서 시험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BS2에서는 '재미와 놀이' 부분이다. 그리고 그것은 딱 중간점까지만이다.


스토리 상에서 중간점은 다른 지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미니 시리즈나 장편 소설, 그리고 웹소설이나 웹툰까지 모든 장편 서사는, 그냥 긴 것이 아니라 2막의 시작부터 중간점까지 부분이 가장 긴 것이다. 따라서 작가들이 가장 신경써서 만들어야 할 부분이 바로 '시험'이고 '재미와 놀이' 부분인 것이다.


위에서 최근 12부작 미니 시리즈에서 1막은 1부이거나 그 이내라고 했다. 그렇다면 2막은 12부의 어디까지일까? 그것은 바로 중간점이 좌우를 한다. 중간점은 길이를 절반으로 나누는 6부 끝이 아니다. 중간점은 6부 이후로 가면 갈수록 좋다. 이것이 장편 서사의 핵심이다.


일단 스토리가 중간점을 지나면 엔딩으로 최대한 빨리 가야한다. 미니 시리즈가 하염없이 늘어지는 이유는 중간점이 너무 일찍 와서 이후 이야기를 울며 겨자 먹기로 늘일 수밖에 없을 때이다. 따라서 점점 어려운 '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거나 점점 흥미진진한 '재미와 놀이'를 하면서 최대한 중간점에 늦게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엔딩으로 가지 않으려면 중간점에 도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12부작 미니 시리즈의 경우, 중간점을 8부 끝쯤으로 잡으면, 리듬을 잃지않고 후반부를 마무리할 수 있다. 중간점이 8부 끝이면, 10부까지가 2막의 후반부이고, 11부부터 12부까지 3막인 것이다. 스토리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는 있어도, 이 비율은 미니 시리즈 구조의 기준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일단 중간점에 도달하면, 그때부터는 엔딩을 향해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웹툰이나 웹소설은 수백회를 갈 수 있는 이유는 2막에서 중간점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프랙탈 구조로 설명하면, 미니 시리즈 12부작은 1부가 1막, 2부 ~ 10부가 2막, 11부 ~ 12부가 3막인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1부는 그 자체가 1-2-3 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2부부터 8부까지는 각각의 시험 또는 재미와 놀이의 1-2-3막 구조로 중간점까지 여러번 또는 최대한 반복된다. 이 부분에서 핵심은 프랙탈이 상승하는 구조로 짜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후반부가 강력해진다. 그리고, 중간점부터인 2막의 후반부도 1-2-3막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11부터 끝까지 역시 1-2-3 막의 프랙탈 구조를 가지는 것이다.


작가의 창의성은 크리스토퍼 보글러나 시드 필드, 블레이크 스나이더도 제대로 규정하지 못했던 2막의 시작과 중간점 사이에서 나온다. 그 부분이 대중들이 가장 기대해 마지 않는 부분이다. 작가는 바로 그 부분에 승부를 걸고,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쌓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승부수이다. 그렇게 중간점까지 텐션을 유지하며 빌드업을 잘 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비교적 공식에 가까운 전개를 하면 되는 것이다. 참 쉽지 않은가!


미니 시리즈를 이렇게 정리를 해보자.


2시간 짜리 영화에서 3막 구조는 가령, 일반적인 생선과도 같다. 머리가 1막이고, 몸통이 2막이며, 꼬리가 3막이다. 비율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미니 시리즈는 어떨까? 일반 생선의 비율로 커진다면, 6배를 키워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크기의 생선이 될 것이다. 혼자 감당하기 힘든 크기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스토리는 그런 비율로 커지지 않는다. 다만 길어질 뿐이다. 어떻게? 갈치나 장어처럼. 그렇다. 영화가 붕어나 고등어라면, 미니 시리즈는 갈치나 장어에 비유할 수 있다. 생선에서 우리는 몸통을 주로 먹는다.


시즌형 드라마도 3막 구조일까?


<하우스> 같은 시즌형 드라마는 어떤가?


하우스는 100회 이상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웹소설의 구성방식과 비슷하다. 소위 1회라고 하는 파일럿이 1막이고, 그 다음부터는 주구장창 2막이 매 에피소드마다 프랙탈 구조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일단, 파일럿에서 대중들을 효과적을 후킹을 했다면, 그 다음 에피소드부터는 결국, 주인공의 유능함이고, 매번이 시험이고, 재미와 놀이인 것이다.


이렇게 2막을 무한정 길게 가져가는 스토리는 프랙탈을 상승 구조로 짜면 안 된다. 그것은 중간점을 앞당기는 치명적인 행위이다. 상승의 정점을 찍으면, 그 다음부터는 에피소드들이 밋밋해지기 때문에 시즌이 종료될 수 밖에 없다.


시즌 드라마는 섣불리 스토리를 상승 구조를 짜지 않는 대신 다른 전략을 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만든 말인 '재미의 정량화'이다. 매 에피소드마다 기본적인 재미를 충족시키는 형태를 가진다는 것이다. 다중의 캐릭터가 등장한다면, 그 캐릭터들이 매 에피소드마다 캐릭터 플레이를 제대로 한 번씩 보여준다. 그들이 해결하는 문제도 딱 한 회 안에서 해결될 수 있는 정도의 스케일만 가진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시즌형 주인공 캐릭터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앞서 주인공은 변화해야 하고, 그것이 재미의 본질이라 말했지만, 시즌형 드라마 주인공에게는 예외이다. 이들이 변하면, 그것은 곧 시즌 종료의 포석일 뿐이다. 그래서 시즌형 드라마의 주인공은 유능함으로 승부를 하는 것이다.


이는 제임스 본드 같은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캐릭터에도 해당된다. 그는 매번 본드 걸과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는 바람둥이며, 매우 유능한 특수 임무 종사자이다.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는 제임스 본드가 변하지 않나요?"


이 질문 나올 줄 알았다.


"그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는 바람둥이라는 본질을 버리고, 한 여자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하잖아. 그렇게 변하니까, 죽음으로 결말을 가져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시리즈가 끝난 거라구."


편집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프랙탈 구조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최근 스토리텔링의 경향을 함께 살펴보았다. 이러한 경향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살며, 인내심마저 고갈된 대중들이 스토리를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한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더 가속화 된 것이 대중이 편집권을 갖게 된 뒤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스튜디오에서 편집권을 가졌다. 그래서 이에 반발한 감독들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편집한 디렉터스 컷을 내놓았던 것을 기억하는가. 그런데 이제는 불행하게도 대중들이 편집권을 가진 세상이 되었다.


대중들은 FF(패스트 포워드) 버튼을 통해 영화나 드라마를 편집하면서 본다. 그들이 주로 편집하는 것은 어린 시절이나 설명적인 부분, 회상 같은 부분이다. 이런 부분을 편집하면서 보면, 한 시간 짜리 드라마를 절반 이상 줄여서 볼 수 있다.


때문에 작가는 어린 시절을 열심히 쓰는 대신, '거칠었던 어린 시절을 살았어'하고 대사 한 마디로 툭 던지고 갈 수 있어야 한다. 지루한 설명은 아예 삭제하거나, 최소화 해야 하며, 회상은 플래시백으로 대체를 해야 한다. 그래서 확보된 시간을 주인공이 유능함으로 '시험'을 돌파하고, '재미와 놀이'로 상승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해야한다. 그래야 성공한다.


주의할 점이 하나 더 있다.


대중들이 스킵하는 내용 중에는 주인공이 뭔가 배우면서 성장하는 부분도 있다는 것 말이다. 대중은 이런 성장 서사를 요즘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대중들은 그 구간을 고구마라고 부른다. 최근 대중들은 성장보다는 각성을 좀더 좋아한다. 유능함을 장착하기 위해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장하기 보다는, 원래부터 유능함을 갖췄는데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각성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되고, 점점 더 어려운 미션을 유능하게 헤쳐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은 대중들은 사이다라고 부른다.


결국, 프랙탈 구조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단순하다.


이야기는 길어질수록 느려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작동 원리를 더 많이, 더 촘촘하게 반복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그 반복은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점점 더 강해지고, 점점 더 어려워지며, 점점 더 높은 대가를 요구하는 상승 구조여야 한다. 단, 재미의 정량화를 추구하는 시즌형 드라마에서의 상승하는 프랙탈 구조를 써서는 안 된다.


지금의 대중은 더 이상 이야기를 끝까지 참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들은 리모컨을 쥐고 있고, 스킵 버튼을 누를 수 있으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 1막은 짧아지고, 설명은 압축되며, 이야기는 가능한 한 빨리 2막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작가의 대부분의 역량은 2막의 시작부터 중간점까지, 즉 ‘시험’과 ‘재미와 놀이’의 구간에 집중된다. 이 구간에서 대중이 떠나지 않으면, 그 다음은 비교적 정직하게 구조를 따라가도 된다. 정말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구조는 결코 목적이 아니다. 구조는 대중의 리듬을 이해하기 위한 지도일 뿐이다. 그 지도 위에서 어디를 질주하고, 어디를 생략하고, 어디에서 숨을 고르게 할지는 오롯이 작가의 선택이다.


지금 이 시대의 스토리텔링은 더 친절해질 필요가 없고, 더 장황해질 필요도 없다. 대신 더 정확해야 하고, 더 과감해야 하며, 무엇보다 대중이 가장 기대하는 구간에 모든 화력을 집중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그것을 몰빵이라 부르고 싶다.


그것이 프랙탈 구조가 오늘날의 작가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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