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MPER를 활용하라
이제 꼭 알아야 하는 서사구조는 다 배웠다.
서사구조는 이 외에도 3막 구조에 2막을 3등분해서 중간막을 중심으로 이야기의 대칭을 강조하는 존 요크의 '5막 구조론'과 한 편의 영화를 8개로 시퀀스로 나눠서 분석하는 폴 조셉 굴리드의 '시퀀스 어프로치', 장르별 대표작들을 거의 씬 단위로 분석해서 150개가 넘는 단계로 만든 토드 클릭의 '비트 바이 비트' 그리고 기존 영웅서사가 전제해 온 남성적 성장 서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관계 중심의 스토리'의 관점에서 신화를 재정의한 게일 캐리거의 '여성 영웅 서사' 등이 있다.
당신이 아직도 서사 구조에 목 마르다면 반드시 공부해 보기 바란다. 단,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서사 구조는 스토리를 바라보는 각각의 관점에 따라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에 배치된 터닝 포인트라는 사실이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스토리 상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볼 것인가 결정되는 것이고, 그것들이 각 단계를 지칭하는 이름이 된 것이다.
결국, 작가가 해야할 일은 자명하다. 각 단계마다 그 키워드가 던지는 핵심 질문에 대답하는 것, 바로 그 과정 속에서 스토리는 만들어진다.
하지만 당신이 이런 서사 구조들을 활용해서 결과물은 만들어 냈다고 해도, 이제 시작일 뿐,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신이 만든 스토리는 구조적으로 어느 정도 완성된 형태일 지는 몰라도, 그것이 대중들에게 소위 먹히는 컨셉이나 스토리인지 헷갈리고 불안하기까지 할 것이다.
이럴 때 도움을 될 수 있는 처방전으로 스캠퍼(SCAMPER) 기법을 소개하겠다.
스캠퍼는 1970년 대에 미국의 교육학자인 밥 에벌 이 고안한 창의적 사고 기법이다 .스캠퍼 기법은 문제 해결을 위한 7가지 질문으로, 스캠퍼는 ‘대체하기(Substitute), 조합하기(Combine), 적용하기(Adapt), 수정 · 확대 · 축소하기(Modify, Magnify, Minify),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Put to other use), 제거하기(Eliminate), 재배치하기(Rearrange)’ 라고 하는 단어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스캠퍼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스토리를 어떻게 변주하면 더 나은 결과물이 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더 길게 만들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할 것인가, 또한 더 잘 팔리게 될 것인가를 체계적으로 질문하며 스토리를 업그레이드하는 도구이다.
스캠퍼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방법론이 아니라, 유에서 더 좋은 유로 가는 개선의 방법론인 것이다. 구조가 성립된 이야기를 대상으로, 어떤 요소를 대체하고, 합치고, 과장하고,제거하고, 뒤집으면 이야기가 더 선명해지고, 더 낯설어지고, 더 강력해지는 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따라서 스캠퍼는 서사구조로 구성안을 만든 뒤 초고 작업을 하기 전에 하는 것이 좋다.
1. S – Substitute (대체하기)
대체란 스토리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를 다른 요소로 바꿔보는 것이다. 인물의 직업, 관계의 성격, 배경 공간 외에 스토리의 다양한 요소들 대부분이 다 가능하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이야기의 구조가 유지되는 선에서 대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구조를 흔들어도 결과가 좋으면 상관없겠지만, 그렇게 되면 구조를 처음부터 짜야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인물의 직업'을 대체하는 경우를 보면,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남자의 직업을 탑배우에서 스타 검사, 대통령의 아들, 대박난 스타트업 기업의 대표 등으로 바꾸면 다른 이야기처럼 보일 것이다. 가령 스타 검사라면, 사법 리스크 같은 것이 주요 에피소드로 등장할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론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또한 여주의 직업도 남자의 직업이 바뀌는대로 바꿀 수가 있을 것이다. 가령, 피의자의 딸, 청와대 하위직 공무원, 구독자가 적은 유튜버 등등.
'관계의 성격' 부분은 계약 결혼을 다른 설정으로 바꾸는 것이다. 가령, 비행기의 불시착 등으로 무인도에 고립되어 단둘이 한 달 간 같이 있어야 한다던가, 연애 관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 집에서 살아야 한다던가 하는 설정 말이다.
'배경 공간'의 대체는 인물의 직업이나 관계의 성격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다. 하지만 배경을 우선적으로 바꿔보고, 나머지를 그에 맞게 바꾸는 방법도 쓸만하다. 예를 들면, 현재 연예계에서 정치계나 법조계, 또는 의료계 등으로 배경을 바꿔보고, 다른 내용도 바꿔보는 것이다.
2. C – Combine (결합하기)
결합은 두 개 이상의 설정, 갈등, 장르 등을 결합하는 것이다. 단, 이 결합은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기보다는 흥미롭게 하거나 긴장감을 올리는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특히, 새로운 것을 추가할 때 그것이 이야기의 주제를 흔들리게 하면 안 된다.
<탑배우와 동직원>의 경우, 로맨스 드라마이지만 12부작 미니 시리즈로 만들게 되면, 뒷 부분에 힘이 빠질 확률이 높다. 때문에 로맨스에 스릴러를 결합하면, 매우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 계약 결혼 그 자체는 로맨틱 코미디 설정이지만, 그 결혼이 들통나게 되면 두 사람의 인생이 무너진다는 점에서 스릴러적 요소를 충분히 가미할 수 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폭로로 인한 대가도 커지니까.
기존 설정에 새로운 설정을 추가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령, 계약 결혼 중에 남주가 드라마에 캐스팅이 됐는데, 그 내용이 극중 여주와 계약 결혼을 하는 내용 말이다. 아마도 훨씬 재미있는 스토리가 될 것이다. 또한 남주의 사생팬이 동사무소에 발령받아서 오는 설정 같은 것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3. A – Adapt (적용하기)
적용하기는 이야기를 다른 시대, 문화, 환경 등으로 옮겨 적용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하이컨셉의 개념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침몰하는 타이타닉에서 하는 것으로 적용하면 <타이타닉>이 되고, 로빈슨 크로우소우를 화성에서 하면 <마션>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탑배우와 동직원>을 조선 시대로 가져가서 사대부집 아들과 몰락한 양반집 규수의 계약결혼으로 이야기를 꾸려가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계약 결혼을 미래 사회로 가져가면, 계약 결혼이 일상화된 사회 시스템에 대한 얘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스토리는 사랑이 아니라 생존 전략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M – Modify (변형하기)
M은 변형하기(Modify) 외에 확대(Magnify)와 축소(Minify)를 포함한다. 이것은 기존 설정이나 스토리를 유지한 채 어느 한 부분의 강도나 규모를 조절하는 변형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이 가진 결함을 극대화하거나, 어떤 미션에 있어서 대가를 크게 치르게 하거나, 사건의 스케일을 크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해당한다.
가령,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주인공의 계약 결혼이 탄로나면 이미지의 타격을 입는 정도의 설정이라면, 들통났을 때 남주는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하고, 여주는 징계를 받고 파면을 당하는 설정 정도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파파라치가 1명이라면, 플랫폼 기자, 유튜브 사이버 렉카, 사생팬 그룹 등 적대세력을 키우거나, 상황에 따라 대국민 기자회견 폭로전에서 기획사 대표에게 카페에서 알려주는 정도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5. P – Put to Other Use (다른 용도로 쓰기)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다른 용도로 쓰기'는 통찰의 영역에 가깝다. 어떤 요소를 다른 용도로 쓴다는 것은, 거기에서 다른 의미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다른 용도로 쓰기'는 설정을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의미를 전환하는 기술이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계약 결혼은 스캔들 무마용으로 급조한 이벤트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남주와 여주를 진짜 결혼으로 갈 수밖에 없는 장치로 작동한다. 가짜로 시작한 선택이었지만, 법으로 정해진 결혼이라는 제도는 결코 가벼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임이 따르는 것이고, 그 책임을 기꺼이 떠안는 순간, 진정한 결혼의 상태로 발전하는 것이다. 계약 결혼은 단순한 플롯 장치가 아니라, 결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은유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용도로 쓰기'가 주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사용될 때 이야기는 설정의 재미를 넘어서 주제적 통찰을 획득할 수 있다.
6. E – Eliminate (제거하기)
제거하기는 취사선택에 관한 문제이다. 신인 뿐만 아니라, 프로 작가도 초반에 설정을 과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넘치는 설정은 이야기를 빠르고 임팩트있게 진전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불필요한 설정을 빼거나, 뒤로 미뤄서 이야기를 잘 배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만 제거는 주제를 잘 살리고 명확하게 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
제거하기의 대표적인 예는 조력자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다. 조력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주인공의 미션은 쉽게 해결된다. 이는 스토리를 밋밋하고 지루하게 만든다. 조력자를 최소화하거나, 조력자를 적대자로 바꾸는 것이 좋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초기 설정에서 여주에게 사실은 '재벌가의 혼외자'라는 출생의 비밀 설정을 만들었다고 하자. 그러면, 스토리는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성장 스토리가 아니라, 신분 상승의 서사로 진행될 것이다. 기다란 얘기에 대한 부담과 불안으로 주제를 흔드는 설정을 남발하는 것은 좋지 않다.
7. R – Rearrange (재배치하기)
재배치는 서사구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의 순서를 바꾸거나 다시 배열하는 것을 말한다. 서사구조를 통해 만든 이야기는 아무래도 도식적이기 쉽고,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이는 구조 위에 이야기를 넣었기 때문이다. 재배치하기는 구조를 부수는 게 아니라, 이야기 안에 구조를 숨기는 행위이다. 이미 만들어진 사건을 재배열하고 추가하면서 대중들로 하여금 진짜같은 감정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탑배우와 동직원>은 여주의 결혼 불가능한 현실 제시한 뒤 남주의 스캔들 위기를 소개하고, 계약 결혼을 제안 한 뒤 계약 결혼 생활을 보여주다가, 감정이 생기는 식의 매우 전형적으로 진행된다. 이런 진행은 안정감을 주는 한편, 뻔하게 보인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계약 결혼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왜 그들이 계약결혼을 했을까 하는 의문점이 던져지기 때문에 하나의 효과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또는 아예 뒷부분을 땡겨와서 이혼 법정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서사구조와 스캠퍼를 제대로 쓰는 법
서사구조를 활용해 이야기를 만들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처음부터 서사구조를 꺼내놓고 바로 단계별로 아이디어를 채워가며 이야기를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당신이 서사구조를 쓸 때 제일 두려워하는 지점인 뻔한 스토리, 또는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를 만들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물은 구조를 수행하는 도구가 되고, 시간은 단계를 끼워맞추기 위한 장치로 전락한다. 그렇게 되면, 대중들은 이야기보다 구조를 먼저 감지하게 되고, 그 순간 스토리는 생명력을 잃고 외면 당하게 된다.
영웅서사 구조를 정리한 크리스토퍼 보글러가 말했듯이, 서사구조는 당신의 어떤 영감을 통해 만들어진 스토리의 구조적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써야 한다. 서사구조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출발점이 아니라, 점검과 정렬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이미지, 한 문장 한 장면, 혹은 '이런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감정이다. 그것이 씨앗이라면, 그것을 싹으로 틔운 뒤 최대한 마음껏 자라게 한 다음, 서사구조라는 거름도 주고, 가지치기도 해주는 것이다.
당신이 만든 이야기를 앞에 놓고, 그 위에 다양한 서사구조를 꺼내놓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주인공은 제대로 가고 있는가, 중간점은 어디쯤이 좋을까, '재미와 놀이' 부분을 어떻게 하면 더 흥미진진하게 할 수 있을까?
작가는 질문을 하는 존재이고,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작가가 좋은 작가이다. 만약 당신이 작품에 대해
질문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면, 서사구조는 작품을 업그레이드하기는 커녕 오히려 족쇄가 되기 십상이다.
가장 좋은 결과물은 구조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스토리가 아니라, 구조가 감춰진 스토리이다. 이렇게 스토리가 업그레이드 되었다면, 그 다음 스캠퍼 이론을 꺼낼 차례가 된다.
서사구조가 이야기를 ‘성립’시키는 도구라면, 스캠퍼는 그 이야기를 차별화하고 날카롭게 만드는 도구다. 즉, 서사구조가 이야기의 뼈대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라면, 스캠퍼는 그 위에 붙은 살과 피부, 표정을 바꾸는 작업에 가깝다.
스캠퍼의 핵심도 결국, 서사구조처럼 질문이다. 그 질문은 작가의 경험과 태도, 가치관, 그리고 사유의 깊이에서 온다. 같은 이야기를 두고 어떤 작가는 '이 설정을 더 극단으로 밀어붙일 수 없을까?' 묻고, 어떤 작가는 '이 관계를 완전히 뒤집으면 어떻게 될까?' 묻는다. 이 차이는 기법의 차이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서사구조와 스캠퍼는 누구에게나 같은 결과를 주지 않는다. 같은 질문 목록을 들고 있어도, 작가마다 던지는 질문의 순서와 강도, 그리고 집요함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바꿀 때 당신이 원하는 스토리를 향해 가는 가이고, 그것은 질문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진다.
서사구조와 스캠퍼는 정답을 제시하는 공식이 아니다. 그것들은 당신이 스토리를 향해 던지는 질문을 위한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결국,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은 스토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작가이고, 그가 내리는 선택과 판단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