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더 잘 쓰게 된다 17

세이브 더 캣...

by 이기원

우리는 앞에서 두 가지 다른 관점에서 서사를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첫째, 영웅서사는 ‘캐릭터의 여정’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만드는데 최적화된 도구라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신화라는 것이 인간의 구전의 구전을 거치며, 주인공의 여정이 의미를 가지도록 끊임없이 각색되어 온 경험적 스토리텔링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둘째, 시드 필드의 패러다임 이론은 ‘주제를 바탕으로 한 구조 설계’라는 관점으로 이야기를 바라본다.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를 바탕으로, 주제에 관한 여러 질문과 대답을 시간 위에 정교하게 배치하는 논리적 설계도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제대로 이해하면, 당신은 작가적 시점에서 스토리를 상상하고 설계하는데 꽤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대중의 시점에서 스토리를 바라보는 시점을 장착한다면 어떻겠는가? 그러니까, 대중들이 좋아하는 요소로 서사를 구성할 수 있다면, 당신의 이야기는 한층 더 대중적 소구력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 스토리는 작가가 만들어 내지만, 그것은 작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라는 타자 앞에서 완성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대개 플롯을 분석하지 않고, 주제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딱 두 가지일 뿐이다. 감정과 재미. 그들은 웃었는가? 울었는가? 설렜는가? 불안했는가? 긴장했는가? 마음이 무너졌는가? 다시 일어날 희망을 느꼈는가? 이런 감정들은 결국, 재미로 수렴된다.


이 두 요소가 없다면, 주인공의 여정이 아무리 훌륭하고, 구조가 좋아도 대중은 외면한다.


때문에 이제 당신은 블레이크 스나이더의 BS2를 익혀야 한다. BS2는 그의 명저 <세이브 더 캣(Save the Cat)>에서 주창한, 비트 시트 15개의 연결로 만든 서사구조이다. 비트는 이야기의 최소 단위인데, 블레이크 스나이더는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스토리적 핵심 요소로 비트를 정의해 사용하고 있다(참고로, BS2는 The Blake Snyder Beat Sheet를 의미한다).


BS2는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이 비트는 대중에게 어떤 감정이나 재미를 주는가? 왜 지금 이 타이밍에 이 감정이어야 하는가? 이 비트에서 감정이 제대로 증폭 되었는가? 대중은 이 비트에서 어떤 감정적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


BS2를 3막 구조로 나눠보면, 총 15개 비트가 1막에 5개, 2막에서 7개, 3막이 3개이다. 이것은 영웅서사 12단계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같거나 비슷한 지점은 기준점이 되고, 다른 지점은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아이디어 발화점이 된다. 또한 이 두 가지 서사구조를 패러다임 이론의 포인트들에 매칭을 하면, 구조적으로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일단, BS2의 15 단계를 알아보기 전에 질문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할 지도 모를 당신의 입을 긁어주고 가겠다. 패러다임 이론과 BS2는 영화를 텍스트로 해서 뽑아낸 이론인데, 미니 시리즈와 그보다 길거나 짧은 스토리에 적용해도 되는 건가요?


당연히 된다. 내가 영웅서사에 관한 얘기를 할 때 인용했던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말을 이렇게 바꿔 보겠다.


"모든 스토리텔링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패러다임 이론이나 BS2의 패턴에서 일탈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스토리는 조악한 농담에서부터 지극히 고상한 문학에 이르기까지 패러다임 이론이나 BS2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앞으로 소개될 서사구조에도 똑같이 해당되는 문장이다.


나는 스토리텔링에 대해 '감성공학'이라는 말을 즐겨쓴다. 이율배반적인 이 단어의 조합을 쓰는 이유는 공학의 절대적인 규칙성이 감성이라는 단어의 수식을 만나 유연해질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이 곳을 통해 여러 스토리텔링 공식을 소개한 바 있다. 그것을 전형적인 이과적 마인드로 스토리에 적용하면 논리에만 입각한 보고서처럼 될 것이고, 문과적 마인드로만 한다면 감정만 요동치는 비논리적인 감상문이 나올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작가의 이 두 가지 사고의 중간 어느 지점에서 완정되는데, 그것은 작가의 색깔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초급 작가들은 이 균형추가 어느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서사구조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자, BS2가 제시하는 서사 구조를 유연하게 받아들여 보자.


1. 오프닝 이미지


한 마디로 말해 '이야기의 첫인상'이라 할 수 있다. 한 컷의 이미지일 수도 있고, 주인공의 첫 등장 씬일 수도 있고, 주인공을 설명하는 하나의 시퀀스일 수도 있다. 즉, 오프닝 이미지는 '첫장면'이라는 의미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다. 여기서 작가는 스토리의 분위기, 장르, 스타일 등을 보여줘야 하고, 앞으로 변화해야 할 주인공의 초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영웅서사에서는 보통 세상이 시작 부분이고, 패러다임 이론 역시 1막에서 첫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테이큰>의 오프닝 이미지는 '딸을 끔찍히도 사랑하는 아빠'이다. 첫 장면은 주인공 브라이언이 꾸는 딸에 대한 꿈이다. 꿈 속에서 주인공 브라이언은 딸의 다섯 살 생일 파티를 해주고 있다. 이어 꿈에서 깨어난 브라이언은 전자제품 샵에서 선물을 사고, 집에서 정성껏 포장을 한 뒤, 전처와 살고 있는 딸을 만나러 간다.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갓난 아기인 해리 포터가 이모 집 앞에 버려지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이어 초등학생이 된 해리가 이모 식구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은 장면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당신은 갓난 아기 해리 포터가 버려지는 장면을 오프닝 이미지라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그 장면을 건너뛰고, 먼지가 폴폴 날리는 계단 밑 골방에 살며 이모 식구들에게 학대를 받는 장면을 오프닝 이미지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장면을 묶어서 '갓난 아기 때 이모 집 앞에 버려진 해리가 커서 학대를 당한다'라고 오프닝 이미지를 생각할 수도 있다.


모두 정답일 수 있다. 하지만 창작자의 시선을 보면, 두 번째가 더 정답에 가깝다. 만약 당신이 해리 포터를 쓴다고 했을 때, 오프닝 이미지를 두 번째 경우로 잡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계단방 밑에서 살면서 학대받는 해리의 스토리로 오프닝 이미지로 시작해야,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를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갓난 아기 시절 버려진 해리가 오프닝 이미지가 되면, 그 다음 파트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점프해야 하기 때문에 발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갓난 아기가 나오는 프롤로그는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일까? 창작자 입장에서 추측컨데, 학대 받는 해리 포터를 좀더 비극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갓난 아기 때 버려지는 백 스토리 씬을 넣은 것일 것이다. '갓난 아기 때 버려진'이란 수식어를 '초등학생 해리 포터가 이모 식구들에게 학대를 당한디' 앞에 붙이기 위해서 말이다.


<겨울 왕국>의 시작은 아렌델 왕국의 백성들이 호수에 언 얼음을 잘라서 옮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왕국의 공주들인 어린 엘사와 안나가 눈놀이를 하다가 사고가 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에서는 오프닝 이미지를 찾는 것은 비교적 쉽다. 얼음을 자르는 첫 장면은 그저 이야기가 펼쳐지는 왕국의 배경 묘사 정도일 뿐이라 굳이 이 첫 장면이 오프닝 이미지라 우기기는 쉽지가 않다. 따라서 이 영화의 오프닝 이미지는 눈장난을 하다가 '어린 엘사와 안나에게 닥친 운명의 장난'이 될 것이다.


<탑배우와 동직원>의 결말은 주인공 유하연이 진짜 결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작은 결혼과는 전혀 상관이 없거나, 결혼이 불가능한 상황이면 좋을 것이다. 다소 뻔한 내용이지만, 이런 것은 어떨까? 유하연이 선을 보는 장면인데, 상대방 남자는 여주에게 학벌이나 집안 재력 등을 물으며 자존감을 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대중들은 여주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효과가 있는 동시에 이 스토리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지 충분히 암시가 될 것이다.


2. 주제 명시


주제 명시는 영웅 서사나 패러다임 이론에서 굳이 말하고 있지 않는 부분이다.


주제 명시는 ‘이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무엇에 관한 것인가’를 노골적으로, 또는 은근슬쩍 미리 말해주는 부분이다. 그것은 대사일 수도, 장면일 수도 있다. 주제 명시라고 해서 반드시 주제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주제에 '관련된 것'이면 된다.


<테이큰>에서는 프랑스 여행을 허락한 브라이언이 딸을 공항으로 데려다 주는 차 안에서 하는 대화에서 나온다. 딸이 그에게 나라를 위해 특수임무를 했던 때가 그리웠냐고 묻자, 아버지는 망설임없이 자신은 딸이 더 그리웠다고 말한다.


테이큰은 전직 특수요원이 목숨을 걸고 납치된 딸을 구하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소중한 딸이라는 아빠의 고백이 주제를 명시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오프닝 이미지 다음 아니라 1막 끝부분에 나온다. 하지만 주제를 명시하는, 주제와 관련된 내용은 첫 장면 딸의 꿈을 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이큰> 같은 액션물은 이렇게 주인공 스스로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지만, 보통의 경우는, 주변 인물이 주인공에게 말하지만, 주인공 또는 대중들이 그 의미를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깨닫기도 한다. 때문에 당신이 작품을 쓸 때는 '주제를 암시하는 내용'을 이야기 서두에 잘 매설해 놔야 한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주제 명시는 호그와트 숲지기인 해그리드가 해리를 마법학교에 입학시키기 전에 둘의 대화에서 나온다. 볼드모트가 해리의 부모를 죽이고, 해리마저 죽이려 했지만 죽이지 못했다는 얘기에서, 그때 해리는 깨닫지 못했지만, 장차 그의 목표가 볼드모트를 죽이는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겨울 왕국>은 엘사의 마법으로 인해 머리를 다친 안나를 부모가 데리고 숲 속의 트롤을 만나러 간다. 트롤은 안나가 가지고 있는 엘사와의 마법의 기억을 지우는 것으로 치료를 해준다. 그러면서 하는 말. 공주의 힘은 점점 커질 것이다. 통제를 배워야 한다. 두려움은 공주의 적이 될 것이다.


이후 엘사는 자신의 힘을 통제 못하고 왕국 전체를 얼려버리고, 두려움 때문에 고립되는 선택을 하지만, 결국 두려움 보다 강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게 된다.


<탑배우와 동직원>은 소개팅에서 망신을 당하고, 자존감이 바닥난 상태에서 돌아온 여주가 '결혼은, 나 같은 사람한테는 사치'라고 말하는 것 정도가 좋을 것 같다. 그때 그 얘기를 들은 친구 또는 엄마가 이런 말을 해주면 어떨까 싶다. 세상에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은 없어, 라고.


3. 설정


영웅서사의 '보통 세상'과 패러다임 이론에서 플롯 포인트 1 이전의 1막을 BS2에서는 '오프닝 이미지 - 주제 명시 - 설정'으로 나눈다. 그런데 설정이라는 것이 주제 명시 뒤에 나온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설정은 오프닝 이미지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즉, 그 '설정' 안에 오프닝 이미지와 주제 명시가 있는 것이다. 즉, 설정은 그 부분에서 세팅이 시작된다는 게 아니라,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보통 세상이나 1막 전반부처럼, 주인공의 현실과 함께 꿈이나 목표, 캐릭터적 결함이 드러난다. 또한 주인공이 앞으로 해야할 일이 제시된다. 그리고 극을 이끌어가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소개된다.


<테이큰>은 오프닝 이미지부터 설정을 해 들어간다. '딸바보'인 브라이언 밀즈는 혼자 살고 있다. 그는 남은 여생을 딸 근처에서 보내고 싶을 뿐이다. 한 때는 잘 나갔던 특수요원이었지만, 현재는 은퇴한 상황이다. 하지만 팝스타의 경호에서 보여지듯 아직 쓸만한 실력이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해리는 이모집에서 학대를 받으며 살고 있다. 해리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겨울 왕국>은 엘사와 안나는 매우 우애좋은 자매였으나, 눈장난 사고로 인해 언니는 홀로 고립된 생활을 시작하고, 동생은 그런 언니를 그리워하면서 자라난다. 이렇게 자매애가 결핍된 상태에서 부모마저 죽어 결핌이 심화된다.


<탑배우와 동직원>은 동직원 유하연은 서울 변두리 동사무소의 9급 공무원이다. 남주는 탑배우인데, 드라마 촬영차 동사무소에 왔을 때 만났다. 여주는 결혼을 갈망하지만, 엄마가 아픈데다 집이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해있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4. 기폭제


기폭제는 영웅서사에서 모험의 소명, 패러다임 이론에서 플롯 포인트1이다.


블레이크 스나이더는 이 부분에서 '주인공에게 인생을 바꿀 정도로 큰 계기가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고 했다. 이 사건은 말 그대로 다음 2막으로 넘어가는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


<테이큰>에서는 기폭제가 두 번 연이어 온다. 한 번은 딸이 프랑스 여행을 가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할 때이고, 다른 한 번은 괴한의 습격을 받은 딸이 아버지 브라이언에게 전화를 했을 때이다. 물론 둘 중에서 어느 하나만 기폭제로 봐도 된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마법학교로부터 입학 통지서가 오는 것이다.


<겨울 왕국>에서 기폭제는 엘사의 즉위식이 있던 날, 안나와의 갈등으로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하고 왕국 전체를 얼려버리는 사건이다. 영웅서사 관점에서 보면, 엘사가 왕국을 얼려버리고 사라지고 난 뒤이다. 언니를 찾으러 가는 모험에의 소명을 받는 순간 말이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기폭제는 탑배우가 스캔들을 무마하기 위해서 여주에게 계약 결혼을 제안하는 순간일 것이다. .


5. 토론


토론은 영웅서사에서 '소명의 거부 - 정신적 스승'에 해당한다. 영웅서사에서는 소명을 거부한 뒤 정신적 스승 역할을 하는 물리적, 정신적 계기를 통해 2막을 접어들지만, BS2에서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결심을 하고 2막으로 넘어간다고 설명하고 있다.


<테이큰>에서는 딸의 유럽 여행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기폭제라면, 딸이 자리를 박차고 나간 뒤 브라이언과 전처와 다투는 것을 토론이라 할 수 있다. 영웅서사로 보면, 여행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 모험에의 소명이고,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소명의 거부이며, 전처와 다투는 것이 정신적 스승인 것이다. 결국 브라이언은 몇 가지 주의사항과 함께 딸의 여행을 허락하고 만다. 딸이 프랑스로 떠나는 것이 2막이다.


딸이 납치되는 상황이 기폭제라면, 특수요원 시절 동료에게서 정보를 얻는 것이 토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브라이언이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는 것이 2막의 시작일 수 있다.


어느 것이 진짜 기폭제일까 생각하는 것도 앞으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좀더 유연하게 생각해서 기폭제 또는 모험의 소명이 두 번 반복된다고 봐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기폭제가 기폭제 답게, 토론이 토론답게 엣지있게 씌여지는 것이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영웅서사 스타일로 해석하면, 입학 통지서라는 소명이 오자 해리가 거부하는 게 아니라 이모 부부가 소명을 받지 못하게 방해를 하는 식으로 거부를 행사하고, 이에 정신적 스승으로 해그리트가 직접 입학 통지서를 가져옴으로써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한다. BS2로 보면, 해그리트가 입학 통지서를 직접 들고와 해리와 이모 부부와 함께 토론을 한다.


<겨울 왕국>에서는 언니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항변(토론)하고 말을 타러 나가는 장면이다. 영웅서사적 관점에서 보면, 안나는 소명의 거부를 하지 않고, 정신적 스승도 거치지 않은 채 언니를 찾으러 떠난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는 계약결혼을 받아들이지 말지 가족 회의를 한다면, 그것이 바로 토론일 것이다. 또한 영웅서사적 관점에서 보면, 계약 결혼 제안이 너무 황당해서 거부하는 것이 '소명의 거부'이며, 이후 집이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는 것이 '정신적 스승'의 역할을 하는 것일 것이다.


6. 2막 진입


2막진입은 영웅서사의 '첫관문 통과'와 패러다임 이론에서 '2막'과 같은 것이다.


주인공은 드디어 물 속에서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브라이언 밀스는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고, 해리 포터는 마법학교에 들어가게 되며, 안나는 안온한 왕국을 떠나 얼음의 성으로 향한다. <탑배우와 동직원>의 유하연은 탑배우와 결혼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7. B 스토리


BS2에만 있는 B스토리는 영웅서사나 패러다임 이론이 지향하는 메인 스토리를 보완하는 서브 스토리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메인 스토리가 주인공 중심의 사건, 목표, 갈등 중심으로 이야기의 골격을 만든다면, 서브 스토리는 그 골격에 감정, 관계, 주제적 울림이라는 살을 붙여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B 스토리는 바로 그 서브 스토리이다.


B 스토리는 '2막 진입'부터 다음 '재미와 놀이' 사이에만 있는 거라 생각하면 안 된다. 이곳에서 시작해서 끝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해야 한다. 메인 스토리와 서브 스토리를 섞어서 서사를 설명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시작점만 알려준 것이다. 메인 스토리와 서브 스토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변화하고, 성장하는데, 그것까지 구성 단계에서 고민할 필요는 없다. 구성 단계에서는 메인 스토리만으로 세팅을 한 뒤 스토리의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서브 스토리를 화학적으로 섞어야 한다.


<테이큰>의 B 스토리는 없다고 판단해도 된다. 액션 스릴러는 종종 B 스토리없이 행동 중심의 서스펜스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테이큰에 B 스토리가 있다면, 장르적 쾌감이 현저히 줄었을 것이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B 스토리는 론과 헤르미온느 등과 쌓아가는 우정에 관한 스토리라 할 수 있다. <겨울 왕국>에서 B 스토리는 안나가 크리스토프를 만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배워가는 과정이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는 계약 결혼이 진짜인 줄 아는 탑배우의 어머니와의 관계 시작일 수도 있고, 결혼한 뒤 편입하게 된 상류 사회의 어느 인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8. 재미와 놀이


영웅서사의 '친구, 적, 시험'은 BS2에서 'B 스토리 + 재미와 놀이'에 해당한다. 패러다임 이론에서는 핀치1에 해당할 수도 있지만, 핀치1의 기능이 중간점에 도달하기 전에 스토리를 콕 찝어서 부스트해주는 것이라 볼 때 '재미와 놀이'가 어느 정도 지난 뒤 핀치1이 나오는 게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설명한 바 있지만, 2막은 너무나 다양한 재미의 변수로 인해 정밀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부분은 작가의 재능이 그 어느 곳보다 필요한 곳이다.


BS2와 영웅서사를 섞어서 설명하면, 이 부분은 B 스토리가 메인 스토리에서 가지를 쳐서 시작되고, 주인공은 친구와 적을 만나거나 알게 되며, 놀이 또는 시험이라는 도장(미션)을 격파해 나가며 재미를 주는 곳이다.


재미있는 씬은 길어도 짧고, 재미없는 씬은 짧아도 길다, 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부분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말이다. 2막을 시작해서 중간점에 도달하기까지 대중들이 가장 재미를 느끼는 것이고, 이곳에서 재미에서 실패를 한다면 많은 대중들이 실망하고 떠날 수밖에 없다.


<테이큰>은 프랑스에 입국한 브라이언이 전직 특수요원의 경험을 바탕으로 매음굴에 도달하는 데까지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들이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해리포터가 경험하는 마법학교의 이모저모이다. 해리는 기숙사를 배정받고, 마법 수업을 받으며, 쿼디치라는 경기에 선수로서 활약도 하고, 금지된 구역도 탐험한다. <겨울 왕국>은 안나는 크리스토프와 순록 스벤과 함께 엘사가 있는 얼음 성으로 가면서 늑대들로부터 추격을 당하기도 하고, 울라프도 만나는 등 모험을 한다.


<탑배우와 동직원>은 가짜 부부 생활에서 오는 로맨틱 코미디의 재미가 폭발하는 구간이다. 두 사람의 어색한 동거가 주는 재미, 계약 결혼을 들킬 뻔하는 위기 넘기기, 부부로 외부행사에 나갔다가 예기치 못하는 소동에 휘말리는 등 다양한 재미가 부각되는 것이다.


9. 중간점


중간점은 패러다임 이론에서 중간점과 정확하게 같으며, 영웅서사에서 '심연에의 접근'과도 같다. 패러다음 이론에서는 중간점을 이야기의 대전환 점을 말하고, 영웅서사에서는 가장 큰 시련을 준비하는 지점이라 표현하다. 이를 합치면, 큰 시련이 오기 전의 대 전환점이다.


BS2에서는 여기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는데, 중간점은 이후에 나오는 '절망의 순간'과 쌍을 이룬다고 하는 것이다. BS2에서는 이 중간점에서 주인공은 거짓 승리를 하거나 거짓 패배를 한다고 한다. 이 말 뜻은 모든 게 잘 될 것처럼 보이거나, 망할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은 이후 '절망의 순간'에서 진짜 패배 또는 진짜 승리가 된다는 것이다.


<테이큰>에서는 브라이언이 매음굴을 급습해서 악당들을 처치하고, 딸의 옷을 입고 있는 여자를 구출한다. 거짓 승리의 순간이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해리의 퀴디치 경기에서 살해될 뻔하는 위기(거짓 패배)를 맞는 장면이다. 여기까지는 마법 학교의 생활이 주 스토리였지만, 이 지점부터는 생존과 미스터리의 해결을 위한 스토리(진짜 승리)로 전개된다.


<겨울 왕국>에서는 영웅서사의 관점으로 보면, 안나가 얼음성 안으로 들어가 엘사를 만나는 장면이다. 하지만 BS2의 관점에서 보면, 얼음성 안에서 안나가 엘사를 자극했다가 심장이 얼려지는 상황인데, 이는 거짓 패배로 해석할 수 있다. 패러다임 관점에서 보면, 비가역적 사건이 일어나는 곳임으로, 안나의 심장이 얼어버린 사건을 기점으로 안나는 엘사를 데리고 오려는 스토리에서 그 자신이 살아남아야 하는 스토리로 바뀌게 된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는 중간점에서 둘이 얼떨결에 동침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패러다임 이론에서 말하는 관계의 대전환이 일어난다. 가짜 결혼을 지키는 스토리에서 진짜 결혼으로 가는 스토리로 가기 때문이다. 영웅서사에서는 둘이 깊은 관계(?)가 심연의 접근으로 충분히 해석된다. BS2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둘 사이를 망쳐버린 것을 봐서 가짜 패배일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진짜 승리(진짜 결혼)으로 가는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10. 악당이 다가오다


패러다임 이론으로 보면, 중간점 이후의 이야기이다. 이를 영웅서사로 보면, 주인공에게 닥친 '시련'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보통 주인공은 '심연에의 접근'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고, 그 대가를 치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BS2의 관점에서 볼 때는 '악당이 다가오다'인데, 여기서부터는 주인공을 위협하는 온갖 유무형의 위협(악당)들이 옥죄어 온다. 유형이라 함은 사람, 조직, 사회적 압력 등이고, 무형이라 함은 트라우마, 주인공의 내적 결함, 관계적 갈등 등이다.


중간점 이후에 주인공은 한층 더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련 또는 다가오는 악당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테이큰>에서 브라이언은 인신매매 조직의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크고 조직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신분이 노출되고, 조직원들이 그를 쫓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다. 파리의 옛 동료가 그를 방해하고 막으려고까지 한다. 그런 와중에 시간은 점점 부족해 진다. 이에 브라이언은 점점 더 과격해지고, 이는 그를 위험 속에 빠뜨린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는 스네이프가 돌을 노린다고 오해하며 사건에 깊이 개입하고, 규칙들을 어겨가며 점점 위험한 상황으로 들어간다. 또한 볼드모트가 돌을 얻으면 부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결국, 그는 친구들과 돌을 지키러 나서게 된다.


<겨울 왕국>에서는 안나의 얼음 저주가 심해져 생명이 위태로워지고, 왕국은 영구 동결 상태에 빠지며, 한스는 비밀리에 권력을 장악할 준비를 하며 왕국의 위기를 키운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는 둘의 감정이 점차 가까워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결혼 계약서가 발목을 잡는다. 또한 파파라치의 그림자가 서서히 가까워지고, 주변 인물, 직장, 팬덤 모두가 여주와 남주 사이에 균열을 만들기 시작하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11. 절망의 순간


'절망의 순간'은 주인공이 심리적·상황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이다. 따라서 BS2에서는 이 지점을 ‘모든 것을 잃은 순간’이라 부른다. 패러다임 이론으로 보면, 절망의 순간은 플롯 포인트2 바로 직전에 오는 핀치2 지점이다. 영웅서사로면 전 단계 '악당이 다가오다'에서 이어지는 ‘시련’의 연속이라 볼 수 있겠다.


중간점에서 거짓 승리 또는 거짓 패배를 보여줬다면, 절망의 순간은 그 반대쌍에 있는 진짜 결과를 보여주는 비트이다. 이때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죽음의 기운'이다. 실제 죽음이 아니어도 좋다. 관계의 죽음, 꿈의 죽음, 자존감의 죽음, 커리어의 죽음 등 어떤 형태든 “진짜로 끝났다”는 느낌이 나야 한다.


<테이큰>에서는 브라이언이 천신만고 끝에 인신매매의 본거지에 도착해서 딸을 찾았지만, 딸을 놓치고 또한 자신이 악당들에게 잡히는 순간이 바로 절망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해리, 론, 헤르미온느가 마법사의 돌을 지키기 위해 금지된 문을 통과해 각종 시험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절망의 순간이 온다. 거대한 마법 체스에서 론이 희생해 쓰러지고, 헤르미온느는 뒤를 막기 위해 남고, 결국 해리 혼자 마지막 방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점이다. 친구들 없이 홀로 거악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겨울 왕국>에서 절망의 순간은 한스의 정체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안나가 얼어붙는 위기에 놓여 간신히 성으로 돌아오지만, 한스는 키스를 거부하고, 자신의 야망을 드러낸 뒤 안나를 차갑게 방에 가둔 채 죽도록 내버려 둔다. 동시에 한스는 엘사에게 거짓으로 안나의 죽음을 전가하고, 엘사의 처형을 명령함으로써 왕국과 자매 모두를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절망의 순간은 그들의 계약 결혼이 만천하에 폭로되는 지점이 될 수 있다.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과 내부자의 제보가 합쳐져, 둘의 계약서 내용까지 언론에 까발려지고, 여주는 ‘사기 결혼녀’, 남주는 ‘이미지 조작 스타’로 매도당한다. 둘의 관계 역시 최악으로 치닫는다. 서로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계약 결혼이 오히려 서로의 인생을 망쳐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절망의 순간은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면 비극”인 지점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거기서 끝내지 않는다. 바로 그 밑바닥에서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3막의 클라이맥스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BS2에서는 절망의 순간 뒤에 반드시 ‘영혼의 어둠의 밤’을 둔다. 주인공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결심, 새로운 전략, 새로운 자신으로 다시 일어나는 구간이다.


12. 영혼의 어두운 밤


절망의 순간이 ‘외부의 세계가 무너진 순간’이라면, 영혼의 어두운 밤은 ‘내부의 세계가 무너진 순간’이다. 패러다임 이론으로 보면 플롯 포인트 2가 시작되기 전 상황이다. 이 부분에서는 대개 주인공이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마지막 결단을 내린다.


영웅서사로 보면, 여기까지가 시련이다. 따라서 영웅서사의 시련은 BS2의 '악당이 다가오다 + 절망의 순간 + 영혼의 어두운 밤'인 것이다. BS2에서 시련을 세분화한 이유는 BS2가 의미나 구조보다 '감정의 흐름'에 더 중점을 둔 이론이기 때문이다. 영웅서사의 시련에 해당하는 부분을 세 단계에 걸쳐서 점층적으로 구성하면, 클라이막스에서 훨씬 더 큰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테이큰>에서 영혼의 어두운 밤은 브라이언이 딸을 이제 더 이상 찾을 수 없다고 믿는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아니, 나올 수가 없다. 브라이언은 캐릭터적으로 절대 포기를 모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몰리적으로 그를 포기시킬 순 있어도, 정신적으로 절대 그를 포기시킬 수 없다. 때문에 '영혼의 어두운 밤' 구간은 적어도 테이큰에서는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영혼의 어두운 밤은 해리가 혼자가 된 이후의 짧은 정적이다. 도망칠 수도 있고, 돌아설 수도 있지만 그는 돌아서지 않는다. 그는 비록 두렵지만 이제는 닥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겨울 왕국>의 영혼의 어두운 밤은 안나가 방에 갇혀 죽어가며 완전히 좌절하는 순간과 엘사가 안나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모든 의지를 잃는 순간의 합이다. 안나는 진정한 사랑이 한스일 거라 믿었지만 그것이 거짓이었다는 걸 깨닫고, 엘사는 자신 때문에 동생이 죽었다고 생각하며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잃는다.


<탑배우와 동직원>의 영혼의 어두운 밤은 폭로 이후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무너져 있는 구간이다. 여주는 ‘사치’라고 생각했던 사랑을 손에 넣을 수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잃었고, 남주는 그나마 유지되던 스타로서의 삶이 완전히 붕괴된다.


'영혼의 어두운 밤'이 지나고 BS2는 다음 단계인 '3막 진입'으로 넘어가지만, 패러다임 이론은 그 사이에 플롯 포인트2를 둔다.


BS2는 감정 중심의 구조이기 때문에 굳이 사건(플롯 포인트2)을 명시하지 않고, 바로 3막으로 진입한다. 하지만 패러다임 이론에서는 구조적 명확성을 위해 '영혼의 어두운 밤' 끄트머리에 플롯 포인트2를 두는 것이다. 패러다임 이론은 이 지점에서 '눈에 보이는 사건'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테이큰>에서 플롯 포인트2는 딸을 찾으러 나가다가 습격을 당한 뒤 정신을 차렸을 때 수갑을 찬 채 매달려 있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죽기 일보 직전, 브라이언은 자신을 죽이려던 악당들을 모두 죽인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해리가 거울이 있는 마지막 방에 도착하는 순간이다. 이제 볼드모트(퀴렐)과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겨울 왕국>에서는 엘사가 감옥을 부수고 탈출해서 폭풍 속으로 나가는 장면이다.


나의 졸작(?) <탑배우와 동직원>에서는 남주가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계약 결혼을 인정하고, 여주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상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영웅서사에서는 이 지점에서 '보상'을 둔다. 영웅서사는 여정의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체 그 시련을 겪고서 뭘 얻었는데?'에 대한 대답을 해줘야 한다. 여기서 보상은 지식이나 진실이 될 수도 있고, 깨달음이 될 수도 있으며, 당연히 물리적인 어떤 승리가 될 수도 있다. 영웅서사 관점에서 볼 때 보상이 없으면, 시련은 그저 고문이 될 뿐이고, 이야기는 허무해지고, 뒤따라 오는 '귀환의 길'이 맥빠지기 때문이다.


<테이큰>에서 '보상'은 조금은 빈약해 보이지만, 인신매매 경매장에서 악당을 협박해서 딸을 사게 만드는 것이 보상일 수가 있다. 딸을 거의 되찾은 것 같은 순간이니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보상은 딸을 구출한 뒤 포옹을 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웅서사적 관점에서 볼 때 보상 뒤에는 '귀환의 길'과 '부활'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스토리는 딸을 구출하는 보상을 얻은 뒤 스토리는 공항에 딸을 데리고 입국하는 '영약을 안고 귀환'으로 넘어간다. 이는 창작자인 뤽 베송의 선택일 수도 있다. 딸을 구하는 것으로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는데, 다시 귀환의 길과 부활을 넣으면 군더더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말이다. 그래서 보상에서 바로 영약을 가지고 귀환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13. 3막 진입


3막 진입은 주인공이 영혼의 어두운 밤에서 얻은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지점이다. 패러다임 이론으로 보면, 플롯 포인트2 이후, 3막의 해결로 돌입하는 순간이며, 영웅서사에서는 ‘귀환의 길’이라 할 수 있다.


BS2에서 중요한 것은, 3막 진입은 단순히 사건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에 의한 ‘해법’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그 해법은 외부에서 떨어지는 선물일 수도 있지만, 가장 강력한 경우는 주인공이 변화한 결과로 스스로 만들어내는 해법이다.


<테이큰>에서 3막 진입은 브라이언은 악당을 협박해서 딸을 경매에서 사게 만든 뒤 데릴러 가다가 습격을 당해서 보일러실에 묶은 상태에서 시작한다. 경매를 담당하는 책임자는 브라이언을 죽이라고 한다.


<해리포터>에서 3막 진입은 해리가 마지막 방으로 들어가 돌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이제 이야기는 학교 생활이 아니라, 해리가 볼드모트(퀴럴을 대리인으로 내세운)와 직접 대면하는 결전으로 전환된다.


<겨울 왕국>에서 3막 진입은 안나가 마지막 힘을 내어 엘사에게 달려가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스스로 증명하려 하는 순간이다. 한스의 키스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사랑을 정의하려는 행동이 시작된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3막 진입은 남주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고 여주를 선택하는 순간이다. 그는 소속사의 만류, 대중의 조롱, 계약의 진실을 모두 감수하고 “그럼에도 내가 선택할 사람은 그녀”라고 선언한다.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오해를 풀고, 관계를 회복하고, 결말로 달려가는 해결의 궤도로 들어간다.


14. 피날레


피날레(Finale)는 주인공이 변화한 모습으로 마지막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패러다임 이론은 이전 단계에서 시작된 3막이 ‘해결’이 되는 지점이고, 영웅서사에서는 '부활'에 해당된다. 여기서는 주인공은 결론을 말’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 좋은데, 그것이야 말로 화려한 부활이 아닐까 한다.


<테이큰>에서 피날레는 브라이언이 인신 경매장에서 탈출한 뒤 딸이 끌려간 유람선에 뛰어 들어가 악당들을 모두다 처리하고, 끝내 딸을 구하는 에피소드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브라이언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변화해서 마지막 문제를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스토리를 통해서 주인공은 변화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변하지 않았다. 딸의 사랑하는 마음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고, 그의 특출한 전투 능력도 원래 갖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변화에 예외가 있다. 액션물이나 시리즈 캐릭터의 경우, '변화'를 '유능함'으로 대체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때 '변화'에 버금가는 감동 또는 카타르시스를 주려면, 캐릭터의 유능함이 매우 탁월해야 한다. <테이큰>의 브라이언 밀즈,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처럼 말이다.


<해리포터>에서 피날레는 해리가 볼드모트(퀴럴)과 대결을 펼치는 부분이다. 해리는 지식이나 운이 아니라, 자신의 용기와 지혜로 몰드모트라는 악을 저지한다. 해리는 이 부분에서 더 이상 나약한 이후 덤블도어의 설명은 ‘주제의 정리’이자 관객의 감정적 정산 역할을 한다.


<겨울 왕국>에서 피날레는 안나가 엘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칼을 막는 희생이다. 이 행동은 진정한 사랑은 로맨스가 아니라 희생 정신임을 드러내고, 안나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피날레는 남주가 무릎을 꿇고 프로포즈하며, 동시에 여주가 ‘사치’라 여겼던 사랑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장면이다. 둘은 계약서를 찢는다. 둘은 서로의 편의에 의해서 계약 결혼을 선택했지만, 이제는 서로를 깊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15. 마지막 이미지


마지막 이미지는 오프닝 이미지와 수미쌍관 대칭을 이룬다. 오프닝 이미지가 ‘변하기 전의 주인공’을 보여줬다면, 마지막 이미지는 ‘변한 후의 주인공’을 보여줘야 한다. 영웅서사적 관점에서 보면, 바로 '영약을 가지고 귀환'이다.


<테이큰>의 마지막 이미지는 딸과 함께 귀국하는 브라이언이다. 이 장면은 딸을 공항에서 프랑스로 보내는 모습과 대칭을 이룬다. 물론, 맨 마지막 장면은 딸을 보컬 코치에게 데리고 가는 모습이지만, 이는 보너스 장면이라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해리포터>의 마지막 이미지는 해리가 마법학교 호그와트를 떠나 다시 더즐리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그는 더 이상 나약한 소년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아이로 성장했다.


<겨울 왕국>의 마지막 이미지는 왕국이 다시 따뜻해지고, 엘사와 안나가 행복해지는 장면이다. 자매는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숙해졌다.


<탑배우와 동직원>의 마지막 이미지는 둘이 진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이다. 이번 결혼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홍보성 이벤트 결혼이 아니라, 지인들만 불러서 비공개로 하는 스몰 웨딩이다. 그들은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 보너스 장면으로 몇 년 뒤 쌍둥이를 낳은 부부가 육아를 하며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 들어갈 수도 있겠다.


이렇게 영웅서사구조와 패러다임 이론, 그리고 BS2를 서로 비교분석해 보았다.


세 이론은 하나의 이야기에 대해서 서로 다른 관점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은 어떻게 변하는가,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그리고 대중은 언제 어떻게 감정을 느끼는가. 이 세 가지 관점이 하나의 스토리 안에서 맞물릴 때, 이야기는 구조적으로도 설득력을 갖추고, 감정적으로도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중 하나를 ‘정답’처럼 쓰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성격과 작가의 의도에 따라 유연하게 겹쳐 쓰는 것이다. 서사 이론은 이야기를 가두는 틀이 아니라, 더 멀리 데려가기 위한 지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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