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재래시장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한 시기이다. 각종 자연산 봄나물이 이때다 하고 우르르 몰려 나와있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생명력을 느낄수 있는 만큼, 온실에서 규격화 되어 자라온 아이들이 늘어서 있는 마트 진열대를 볼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동물원 우리 안의 동물과 세렝게티 초원의 동물의 활기가 다르듯 노지 제철 채소와 하우스 재배 채소의 생명력 역시 다르다.
냉큼 집어온 취나물은 손질하고 데쳐 씨앗소스에 버무린다. 냉장고 서랍에서 굴러다니던 콜라비로는 생채나물을 했다. 콜라비 자체가 달기에 식초만 잘 골라 쓰면 따로 감미료를 넣지 않아도 충분히 감칠맛이 난다. 건강식이라며 매실청, XX효소를 들이 붓는 레시피가 돌아다니던데, 숙성을 시키고 발효를 시켰더라도 원재료는 당류이다. 건강을 위해 챙겨먹을 음식은 되지 못한다.
드디어 봄 채소의 왕이 돌아 왔다. 두릅. 생긴것도 왕관같은 것이 왕이라 불릴만 하다. 맛나게 생긴 열매도 아니고, 가시가 돋아 있다. 심지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시기도 한정적이고 적절한 조리를 하지 못하면 씁쓸할 뿐인데 도대체 누가 이 식물을 처음으로 먹을 생각을 했을까. 게나 성게를 먹을 생각을 했던 사람도 참 대단하다. 잔뜩 가시가 돋힌 밤도 마찬가지. 용기있는 누군가의 모험으로 인류의 식문화의 폭이 한층 넓어졌으리라 생각한다. 지나친 의미부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독이라도 있었으면 자칫 생명을 잃었을 수도 있을 일이다.
하지만 이해가 가기도 한다. 먹을 것이 많아진 지금이야 별미라 부르며 즐겁게 먹지만, 하우스재배나 식료품의 수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대에는, 4,5월은 지독하게도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배를 채워주거나, 탄수화물을 공급해 줄만한 구황작물은 한참전에 동이 나고, 밭에는 갓 자란 풀때기가 그나마 조금 보이는 때가 4, 5월. 마리앙투아네트가 아니니 그렇다고 해서 케이크나 고기를 먹지는 않았을 터. 눈에 보이는 조금이라도 먹을수 있을 법한 것들을 채취해 먹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밭을 넘어 산으로 가, 산나물을 캐어 먹지 않았을까.
이렇게 두릅과 인류의 식문화의 발전, 한반도의 농경문화까지 생각하며 두릅을 다듬고 마리네이드해 이 계절 저만의 별미 메뉴를 만들었다. 혹시 모를 일이다. 먼 훗날 누군가 '아니 어떻게 두릅이랑 딸기를 같이 먹을 생각을 한거야' 라며 혀를 내두를지 누가 알까.
집어온 머위순으로는 매년 이맘때 우리집 식탁에 곧잘 오르내리는 머위쌈장을 만들었다. 한동안 또 든든히 식탁을 지켜줄 녀석. 밥에 비벼먹어도 맛있고, 쌈을 싸먹어도 맛있다. 함께 집어온 참나물로는 맑은 두부국을 끓인다. 갈색, 또는 흰색이 많던 겨울의 식탁이 초록빛으로 가득해지고 있다.
미팅이 있어 홀로 연희동에 마실을 나갔다가 날씨가 좋아 산책을 하고 온날. 정신이 들고 보니 연희동에서 합정역까지 걸었다. 꽃과 연트럴파크에 취해 무작정 걸었다. 생각 정리도 할겸.
정말 오랜만에 작업실에 손님이 와서 차린 저녁 밥상. 있던 재료들로 휘리릭 만들어 줬는데도 새로워하고 즐거워하니 다행이다. 초딩입맛들에게는 장벽이 높을 듯했던 두릅도 잘 먹고 가주었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두릅 딸기 마리네이드의 반응이 뜨거웠다. 봄의 절정을 느낄 수 있는 한 그릇이라 자랑하는 메뉴이다.
촬영용으로 베이글도 필요하겠다, 마침 발효종에 밥을 준 참이라 오랜만에 빵을 굽기로.
늘 캄파뉴만을 구웠기에 베이글은 처음이라 이 곳 저 곳에서 마음에 드는 레시피를 찾아보다 보니 오랜만에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 빵은 구워본 적이 많지 않고, 오븐에서 나와 완전히 식기 전까지는 도무지 완성품을 가늠할 수 없기에 눈감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기분으로 만들곤 한다. 다행히 처음인데도 잘 구워졌다. 구워지는 동안 빵다운 냄새가 풍겨날 때부터 기대만발이었다.
이렇게 완성된 베이글은, 4월의 퇴근길 마크로비오틱 브런치 클래스 촬영용으로 썼다. 머위된장과 레몬두부스프레드를 바르면 이게 또 참 잘어울린다. 캄파뉴에는 워터소테 양배추 샐러드와 씨앗소스 취나물무침, 딸기를 올렸다. 우리집 상비반찬이 되었다는 증언이 쏟아지는 당근퀴노아 샐러드는 바게트샌드위치로 만들었다. 촬영한 덕분에 빵파티가 열렸다.
최근 마크로비오틱과 식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 많아지면서 마크로비오틱을 통해 조금 더 다양한 클래스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지고 있다. 이번 브런치 클래스는 그 첫발걸음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채식이라고 하면 사찰음식이나 샐러드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겠지만, 마크로비오틱과 채식을 추구하면서도 충분히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건강한 몸을 만들겠다고 퍽퍽한 닭가슴살을 먹으며 음식을 만들고 먹는 즐거움을 잃는 삶은 삭막하기 그지 없다. 현미밥에 간장과 김만 곁들여 먹는 삶도 마찬가지이다.
첨가물 없이 자연스럽게 발효시킨 빵을 만드는 빵집에 들러 아침에 구운 바게트와 호밀빵을 사 온다. 초록빛이 가득한 봄날의 장터에 들러 장도 봐왔다. 손을 씻고 앞치마를 두르고는 손에 물을 묻혀가며 나물을 다듬어 본다. 스피커에서는 좋아하는 라디오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나물이 뻣뻣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데친 나물을 짜기도 하고, 양배추가 익어가는 냄새에 황홀해 하기도 한다. 맛을 볼때에는 후추를 뿌려보기도 하고 그대로 먹어보기도 하며 아현동 작업실 배 최강 맛난 샌드위치 조합 대결을 펼치기도 한다. 주로 현미밥이 오르던 식탁에 오늘은 빵들이 올라오고, 그 위에 올라간 재료의 조합은 조금 생소할 수도 있다(베이글에 머위라니). 하지만,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재료를 고르고, 재료를 대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마포구의 작은 작업실에서 요리를 할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날들이 쌓이고 이런 음식과 시도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며 조금이나마 식문화와 음식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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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