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세상모든엄마는위대합니다

by 혜윰

어렸을 적 우리 엄마는 늘 바빴다.


아빠가 박사학위를 따러 유학을 갔을 때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한국에 와서는 본인의 직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도내 어디든 발령이 나는 공무원이었으니 출퇴근 시간은 늘 길었다. 집에는 할머니 뿐 아니라 아빠와 나이 차이 많은 막내 삼촌도 함께 살았다. 물론 나와 동생도 있었다. 게다가 전문직 시험이며 석사며 박사까지 한다고 늘 분주했다. 직업인에, 아이둘 엄마에, 맏며느리 - 말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호칭이 여럿이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고등학교 졸업 할 때 까지 아침으로 과일 한 조각이라도, 소풍 날이면 김밥 한줄이라도 늘 손에 쥐어 주셨다. 저녁은 할머니가 차리시기도 했지만 메인 요리는 늘 엄마가 집에 급하게 들어와 차리셨다. 엄마는 늘 에너지가 넘치고 쾌할했지만 입에는 구내염을 10개씩 달고 살았고 소파에 앉기만 해도 잠이 드셨다. 나는 그런 엄마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슈퍼 우먼 컴플렉스에 갇힌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바락바락 우기며 엄마 인생을 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 엄마는 대체로 멋있었다. 늘 긍정적이었고, 늘 열심이셨고, 늘 당당했다. 할머니께도 아빠에게도 우리에게도 사랑 받고 존경 받는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엄마였고, 직장에서도 꽤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전업을 엄마로 둔 아이들이 부러운 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기억 하지 못하는 유년 시절에는 엄마가 출근 하는 길에 땡깡을 부리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고 한다. 자모회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은 엄마한테 조금은 서운했고, 고3 때 컴컴하게 불어 꺼진 집으로 들어오는게 서럽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본인 일을 사랑하는 엄마가 좋았다.


엄마는 나의 엄마이자 멘토였고 롤모델이었다.

지금도 가장 훌륭한 인생 선배다. 전업이었어도 좋았겠지만, 전업이이길 바랬던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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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과 워킹맘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많이 본다. 남편과 똑같이 대학 교육을 받은 80년생 엄마들에게조차 전업이 되는 것이 더 '나은 미덕'이라는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전업도 옳고 워킹맘도 옳다. 아니, 전업도 워킹맘도 아이의 인생을 본인이 원하는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아이는 독립적 인격체로서 본인의 삶을 살테고, 그건 엄마가 일을 했느냐 안 했느냐와는 무관하다. 어차피 자식은 잘 되면 본인 덕, 잘 안 되면 부모탓이다. 전업을 엄마로 둔 아이가 잘 안 되면 '엄마가 일을 안 해서' 라고 말을 할테고, 워킹맘을 엄마로 둔 아이가 잘 안 되면 '엄마가 일을 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이 사회의 '정답'이 엄마가 집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엄마가 일을 해서' 라는 탓이 더 부각 될 뿐이다.



‘엄마’는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엄마의 모습을 살아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일을 열심히 하는 엄마 밑에서 자랐음에도 나는 늘 넘치게 사랑 받는다고 느꼈고, 우리만큼이나 본인 인생도 사랑하는 엄마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엄마는 엄마라는 것만으로도 위대하고 대단하다. 직업이 있든 없든, 돈을 벌든 안 벌든, 생명을 낳아 키운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요즈음에는 슬프게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지만, 보통의 상ㅇ식으로는) 자식을 가장 사랑하는건 엄마다. 집에 있든 일터에 있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 같다. 다만 아이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 어떤 삶의 가치를 가르치고 싶은지가 다를 뿐이다. 아기의 모습에 정답이 없듯 엄마의 모습에도 정답은 없다. 나는 상대적으로 워킹맘에게 가혹한 한국에서, 내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한번도 일을 놓지 않고 당신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이른 엄마가 있어서 든든하다. 늘 옆에 있어주고 모든 걸 함께 해준 엄마가 있어서 든든한 친구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바르고 당당하게 컸고 때로는 부재했던 엄마를 원망하며 삐뚤어지지도 않았으며 트라우마가 생기지도 않았다. 나는 워킹맘 밑에서 자라면 ‘이렇다더라’하는 사회 통념의 반증이고 싶다. 워킹맘도 전업도 결국은 그냥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일 뿐이다.



육아에는 답이 없다. 엄마가 되는데에도 답은 없다.

어떤 엄마든 행복하기 위해,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 삶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몸이 부서지게 노력하니까. 어렸을 적엔 엄마를 슈퍼 우먼 컴플렉스에 빠진 불쌍한 사람으로 보기도 했는데, 엄마가 되어보니 모든 엄마는 슈퍼 우먼 컴플렉스에 빠진 불쌍하고도 위대한 사람들이다. 나는 구내염이 5개가 난 상태로 어제 밤 11시까지 윤우를 재우고, 회식이 있던 신랑이 집에 들어오길 기다리다가 대화를 나누고, 새벽 4시에 깨서 1시간을 우는 윤우를 안고 잠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윤우의 첫 수유를 하고 아침잠을 재우고, 중간에 일어나 한시간 넘게 우는 윤우를 달래고, 이모님께 어젯밤과 오늘 아침 윤우의 상태를 세세히 말씀드리고 학교에 왔다. 그까짓 공부가 뭐라고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냐는 남의 말은 듣지 않으려고 한다. 35년을 열심히 산 인생을 하루 아침에 버려야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오만한 조언은 흘려 들으련다. 윤우가 언젠가 나처럼,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말할 날이 올거라고 믿는다. 일을 하든 집에 있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 똑같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자 하는 마음도 다 똑같으니까. 나는 오늘도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2018년 3월 9일 - 윤우 5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