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있는 눈을 녹이는 겨울비가 내린다

아직도 나는 소통이 안 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by heyrejoice

요 며칠 눈이 많이도 내렸다. 소복이 쌓여있는 눈은 이제 마냥 즐거운 대상이 아니다.

눈을 좋아하는 나는, 이제 더 이상 눈은 설렘과 기쁨의 대상만이 아니다. 어느샌가 남편의 출퇴근과, 하루의 업무를 더해주는 골칫덩이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날이 조금 포근해졌는지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집 호수에 짙게 비구름과 안개가 드리워졌다. 산과 호수, 하늘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만큼 흐려졌다.

어제저녁, 오랜만에 남편과 긴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남편과 대화를 나누면, 상대가 나를 공격하는 낌새가 느껴지면 잔뜩 움츠리고 방어적인 태세를 갖춘다그 기운이 발동하면, 이제 누가 서로에게 더 상처를 주나 내기를 하는 국면으로 치닫는다. 화를 가득 품은 채로, 진심이 아니지만 더욱 자극적으로 상대를 건드는 단어들을 내뱉는다.

어제 전반부의 대화는 그래도 나름 잘 해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컥하거나, 반박하고 싶은 순간들을 이기고 상대에게 공감하도록 노력했다. 내 생각만 하기 급급하고 끊임없이 내 이야기를 하려고 달려드는 내 모습에선, 지금의 모습도 장족의 발전이다. (아직 갈길은 멀었으나) 하지만 두 번째의 장으로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을 때, 욱여넣었던 마음이 기어코 터지고 말았다.


‘나에게 같은 말을 반복해서 훈계하거나 통제하려고 하지 말아 줘.

내가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듯한 뉘앙스는 조심해 줘. 내가 그런 느낌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급 공격태세를 갖추게 돼’


남편에게 단단히 부탁했는데, 나는 또 울컥하고 말았다. 무겁고 힘든 이야기도 웃으면서 유쾌하게 얘기하고 싶다. 왜 나는 한없이 방어적이고 심각하게 얘기하는 걸까.

어느 순간 남편과의 대화가 두렵기도 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건 내 안의 고정관념을 의식적으로 바꿔야 할거 같다. 괜찮다고, 즐겁고 따뜻하게 얘기할 수 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에너지를 많이 쏟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고 반성하게 되었다. 정작 중요한 건, 우리 둘의 부부인데, 우리를 향해 에너지를 더 쏟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정말 티키타카가 잘되는 부부의 대화를 원한다. 즐겁고 유쾌한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런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제 늦은 시간까지 길게 대화를 나눈 탓인지, 오빠의 출근길을 마중하고 나니 아침부터 허기짐이 몰려왔다.

어제저녁, 위염인 오빠를 위해 만든 들깨 순두부 탕을 뜨겁게 데워 호빵과 함께 먹었다. 뜨거운 국물이 몸안 곳곳을 채우고 서늘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거 같았다.

짙은 안개가 낀 바깥풍경이 아름답지만 처연하게 보였다.

답답하고 속상한 우리의 상황을 보여주는 거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또 눈물이 났다. 하지만 슬픔에 잠식되어있지 않을 것이다. 뜨끈한 들깨탕을 먹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다시 힘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쭈구리처럼 숨어있지 말고, 더 서로를 꼭 안아주고, 오빠를 향해 한번 더 웃어주고 그렇게 나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