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적으로 쫄보인 나에게는 남들보다 약간의 더 용기가 필요하다
해가 뜨기 전에, 정원에 물을 주거나 운동을 해야 한다. 이곳의 볕이 너무 뜨겁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뜨는 해와 이곳에 뜨는 해는 같은 해인데, 이곳에서의 햇볕은 왜 이렇게 더 뜨겁게 느껴지는 건지…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흐리니, 딱 자전거 타기 좋은 날이다.
며칠 전 산 자전거를 비가 와서 고이 모셔놓고 있었는데, 오늘이 딱 타기 좋은 날인 거 같다.
오늘 새 자전거를 꺼내, 동네 탐험을 떠나본다.
이 동네에 이사온지 한 달. 아침 산책으로 동네를 몇 번 둘러보긴 했어도, 본격적으로 동네를 둘러보는 건 처음이다.
구불구불 꺾여있는 많은 갈래길과 넓게 펼쳐져있는 논과 밭의 규모로 인해 이곳을 둘러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론 아침마다 틈틈이 산책을 하면서 동네 슈퍼나, 버스정류장은 둘러보긴 했었다. 새로운 갈래길과 멀리 보이는 동네에 가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막상 낯선 곳에 혼자서 가는 것이 두려웠다. 대부분 인적이 드문 곳이기도 했고, 혼자 다니지 말라는 오빠의 신신당부 때문인지는 몰라도, 도시에서 누비고 다녔던 것처럼 선뜻 낯선 길을 가는 것이 어려웠다.
우리 집은 정면으로 호수가 보인다. 그 호수를 끼고 정면으로 큰 산이 있고, 한눈에 호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호수 옆으로는 구불구불 언덕과 산이 호수를 끼고 위치하고 있고 듬성듬성 집들과 건물들도 있다. 호수의 뒤편 너머에는 아파트도 보이는데, 한눈에 봐도 아파트는 호수와 상당히 먼 거리에 위치해있는 거 같다.
호수를 둘러싼 건물과 환경에 대해서 나의 호기심은 날로 커져만 갔고, 오빠와 대화를 하며 그 상상력을 키워갔다. 언제는 지나가는 할머니로부터 호수를 둘러싼 길이 끊겨있어, 한 바퀴 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얘기를 듣고 실망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언젠가 호수를 한 바퀴 완전히 둘러보고 싶은 나의 목표는 커져만 갔다. 한 시간을 넘게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를 번번이 다시 되돌아오면서, 바다도 아닌데 언젠가 한 바퀴를 돌아보겠어.라는 오기가 점점 쌓여갔다. 차를 타고 한 바퀴 돌아본 아빠는 호수를 둘러싼 길이 끊겼으니, 위험한 곳에는 가지 말고 눈에 보이는 곳만 왔다 갔다 산책하라고 조언해 주시기도 했다.
미루고 미뤄서 구매한 자전거가 드디어 왔다.
날씨도 구름이 적당하니 거사?를 치를 준비가 되었다.
후줄근한 산책 복장을 던져버리고, 레깅스와 바람이 잘 통하는 후드,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비장한 마음으로 자전거에 올랐다.
풀향에 뒤섞인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청난 자유의 느낌이다.
힘차게 페달을 밟을 때마다, 내 안에 있는 에너지들이 응축되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지금 해결되지 않아 끙끙 앓고 있는 프로젝트의 답답함도 꾸역꾸역 밖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큰 차가 다니는 큰 도로는 피하며, 구불구불한 길에서 가끔씩 튀어나오는 트랙터와 차로 인해 페달을 조심스럽게 밟아갔다.
모두가 끝이라고 말한 길의 끝에 도달했다. 차가 다닐만한 길은 없었지만, 논두렁을 따라 작은 길이 있었다. 휴대폰 지도로 더듬더듬 찾아가며 작은 길을 따라갔다
문득 자전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던 예전의 나의 모습의 떠올랐다.
‘ 맞아, 스톡홀름 시내를 자전거 타고 여행했었는데… 상해와 고베에서 살 때는 자전거 타고 그렇게 온 동네를 몇 시간이며 누비고 다녔었는데… ‘
그때는 두려움보다 호기심과 용기 있는 마음이 더 컸었는데.. 그 마음은 언제 이렇게 쪼그라들었는지 모르겠다.
‘작은 시골마을을 누비고 다니는 게 이렇게 겁낼일인가? 더 낯선 곳도 자전거 타고 다녔잖아!’
두려운 마음이 없어지니 울퉁불퉁 시골길의 정겨움이 느껴지고 자연의 분주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전거 소리에 푸드덕 날아가는 새들, 낯선 무법자의 방문으로 왕왕거리는 개들, 살랑 걸리며 나부끼는 들풀들….
호수의 끝에는 꽤 큰 전원주택 단지들도 있었고, 소를 키우는 축사도 있었다. 양로원일까, 이상한 종교단체 건물은 아닐까. 멀리서 지켜보며 항상 궁금했던 건물의 정체는 숲 속 유치원이었었다. 아무도 안 살 거 같은 숲 건너편에는 그래도 듬성듬성 몇 가구의 집들이 있었고, 우리 집에서 마주 보던 거대한 숲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진 숲이었다!
차로 이동하기에는 다소 무리지만, 그래도 호수를 에워싸는 작고 구부러진 길들이 있었다.
길이 끊겨있다는 동네 할머니와 아빠의 말은 가보지 않았기 때문 일 것이다.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나니 집에서 막연히 바라보며 상상했던 호수 너머의 길들 과 풍경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생각보다 거대하지 않았고, 생각보다 멋진 곳도 있었으며, 이상하고 모호하고 궁금했던 것들이 안개 걷힌 듯 사라졌다.
가보지 않는 곳에 대한 상상으로 나는 얼마나 많이 두려워하고 있었나. 집 앞에만 콕 박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두려움으로 시도해보지 못한 기회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나는 지금도 내가 만든 집안에서 나오지 않고 동경만 하고 있지 않는가.
인생에 결정들을 해나갈 때, 후회하지 않고 도전하는 선택을 되도록이면 하려고 하지만, 천성적으로 쫄보인 나에게는 남들보다 약간의 더 용기가 필요하다.
내일도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다른 동네로 탐험을 떠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