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 가르쳐 주는 것들
오늘 아침의 텃밭을 가보니 하루 사이에 가지와 토마토가 열려 있었다.
어제 조금 내린 비 덕분이었을까. 하룻밤 사이에 열린 열매를 보니 그렇게 기쁘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정원 한켠에 텃밭을 만들었을 땐, 흙이 좋지 않아 작물이 자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아빠가 말씀하셨다.
열매를 따먹을 부푼 꿈으로 열심히 텃밭을 만든 나에게 그건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여기에 부은 비료값과, 모종값이 얼마인데… (차라리 사 먹는 게 낫다.)
흙도 흙이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 요즘 날씨도 한몫했다. 우리 집 앞에 있는 호수도 물이 많이 빠져, 주변 갈대와 풀과 땅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혹여나 강한 햇볕에 목이 말라죽을까, 해가 들지 않는 아침저녁으로 텃밭을 오가며 물을 주었다.
시들시들한 허브들을 보며, ‘조금만 힘을 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미 1차로 심은 모종들이 죽어 2차 모종을 심은 나로서는 혹여 또 죽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텃밭에 갔다.
‘아니, 자연이 알아서 키운다던데… ‘우리 집 텃밭 식물들은 내가 이렇게 마음 졸이는 걸 알까.
사실 나는 모종을 심으면 신경 쓰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쑥쑥 자라, 며칠 내에 토마토나 고추 같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줄 알았다.
‘토마토가 열리면 토마토청도 해 먹고, 토마토파스타도 해 먹고…. ‘ 마음은 벌써 먹을 생각에 부푼 나였다.
그렇게 마음 졸인 3주의 시간이 흐른 후, 오늘 드디어 열매들을 보게 되었다.
비도 안 내려 크느라 힘들었을 텐데.. 정말 기특하다.
내가 이곳에서 어울릴까. 잘 살 수 있을까. 내려와서 살기까지는 고민과 걱정이 많았다.
사실 차도 없고, 친구도 없고, 아직 이웃이랑 친해지지도 않아서 환경적으로 고립된 삶이긴 하다.
하지만 텃밭에 심은 이 작물들을 돌보면서 외롭거나 고립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내가 이사 오기 전 우려했던 것들은 사실 겪어보니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얼마나 겁쟁이 인가. 삶을 살아갈 때 얼마나 방어적인 자세로 얼마나 많은 기회들을 포기하고 살아왔던가. 안될 것들부터 미리 생각하고 내 안에 꽁꽁 숨어있지는 않았나.
정원에 있는 잔디와 잡초들을 보면 물 한번 주지 않았는데 마구마구 자란다. 예쁘게 자라는 것 신경 쓰지 않고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멀리멀리 씨앗을 퍼뜨린다. 비가 오든 않오 든, 뿌리가 내리는 곳이 돌팍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냥 자기가 내려앉은 자리에서 뿌리를 내린다.
나에게 오늘도 우리 집은 괜찮으니 편하게 있으라고, 한번 뿌리를 내려보라고 얘기한다.
앞으로의 삶과 미래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해보라고 얘기한다.
해보지 않았던 텃밭일을 해보고, 그 안에서 계절의 흐름을 지켜본다.
예전에는 하찮다고 여겼던 집안일을 하며, 마음을 찬찬히 닦아본다.
텃밭에서 수확한 바질들을 따서, 처음으로 바질 페스토를 만들고, 파스타를 만들어본다.
과거에 생산적이지 않다고, 쓸모없다고 여기던 일들을 해나가면서.. 극도의 효율성을 쫓았던 나의 모습을 깨뜨려 본다. 시, 분으로 쪼개서 살았던 나의 삶에서 2시간이 걸려 만든 파스타와, 정원을 돌보느라 오전이 훌쩍 지나가버린 이런 시간들이 아직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지도 하지만, 여기서의 삶은 나에게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도 괜찮아…’라고 얘기해준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살 수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매일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