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거 같아서
지방의 작은 시골 마을로 이사온지 3주가 지났다.
호수가 보이는 테이블 위에서 일상을 기록하기로 다짐한 지 3주 만에 첫 글을 적어본다.
머릿속으로 ‘해야지…. 빨리 시작해야지…’라고 미루고 미루다, 바람 끝으로 느껴지는 초여름의 향기가 더 이상은 미루지 말라고 재촉하는 거 같아서, 주섬주섬 글쓰기를 위해 장비를 세팅하고 쭈뻣쭈뻣 글을 적어 내려가 본다.
글쓰기.
그림 그리는 것만큼 잘하고 좋아했던 일인데, 어느 순간 평가받는 것이 두려워 장문의 글쓰기를 피하게 되었다. ‘창작’이라는 행위는 디자인 일로 충분하다고 자기 합리화하면서, 언젠가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만 품고 있었다. 평가받는 삶에 익숙한 나는, 남들은 쉽게 올리는 SNS 글조차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며, 짧은 글도 쉽게 올리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글 쓰지 않고는 못 배길걸?’이라고 6월의 따뜻한 바람이 속삭인다.
인생에 많은 변화와 도전이 있지만, 지방의 작은 전원주택에 와서 살게 된 현재의 삶만큼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바뀐 적이 있었나 싶다. 평생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았던 나에게, 결혼이라는 커다란 인생의 새로운 무대를 마주하면서 바뀐 삶의 변화. 이 집에서 살게 된 히스토리는 차근차근 풀어갈 시간이 있겠지만, 참 어렵고 힘들게 구한 전원주택이었다.
이 집은 다락방이 있는 3층 땅콩집으로(협소 주택이라고 부른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에는 작은 호수가 있다.
오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호수 뷰의 큰 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아침, 밤으로 차가웠던 바람이, 어느샌가 따뜻한 온기를 머금고 있다. 바람 끝에서 연둣빛의 풀향이 느껴진다. 어느 장소의 어떤 풀의 흔적을 안고 이곳까지, 나에게 실어다 준 것일까.
온몸을 쓰다듬는 다정한 바람이 설레어서,
이 순간을 기록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 같아서, 글쓰기 용기를 내본다.
이른 아침과 저녁엔 물기를 가득 머금은 시원한 바람이 집안 사방으로 들어온다. 정원 뒤편에 있는 산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밤이 되면 몸을 움츠리게 될 정도로 차갑다.
그 바람이 오늘 낮에는 온기를 가득 품고 나를 간지러 대니, 계절의 변화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벌써 여름이 오고 있는 걸까. 지나가는 봄의 끝이 아쉬울 뿐이다.
5월의 연두색이 참 좋다.
사계절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기이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여린 잎들이, 보드라운 촉감과, 사랑스러운 연둣빛이 참 좋다. 올망졸망 시작하는 그 순간이, 참 설렌다. 단단하고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 애쓰는 6월이 되면 나도 모르게 살아있는 작은 것들을 위해 응원하게 된다. 바람 끝의 미세하게 느껴지는 풀향이, 먼 곳에서 자기의 존재를 전해오는 것만 같다.
이사온지 3주가 되었고, 6월 첫째 주가 되었다.
아직도 집 정리가 안된 거 같다. 사야 할 것도 많고, 해야 할 정리도 눈에 자꾸 보인다. 정리가 끝나면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데, 완벽히 정리가 끝난 후에 초대하면 왠지 1년이 지나서야 초대할 수 있을 거 같다. 마음에 들게 집 정리를 끝낸 후 하고 싶은 것들도 있었는데 이렇게 미루다간 아무것도 못하게 될 것만 같다.
우야무야 미루지 말고, 그냥 저질러야겠다.
설레는 봄바람에 이끌려, 오늘 시작한 글쓰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