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만에 10kg 찐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본가에 다녀왔다. 자취 생활을 접고 본가로 내려가기. 무슨 짓을 해도 식이장애가 낫지 않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후의 방법이지만 자취 생활을 포기하기엔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한 내가 치뤄야 할 댓가가 너무 크다. 해서 일단은 이틀만 다녀왔다. 식이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도 퇴사를 한 것도 가족들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경험이 풍부한 ‘부모님께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하기 기술’ 숙련자이기 때문에 이틀 정도는 문제 없이 다녀왔다. (글을 쓰면서 부모님이 나의 글을 볼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생각해봤다. 생각만해도 어디서부터 수습해야 할 지 땀이난다.)
저번달에도 분명히 봤지만 얼굴 못 본지 몇개월이 됐다는 엄마의 이상한 날짜 계산법과 못 본지 오래되서 얼굴을 다 잊어버렸다는 엄마의 핀잔에 못 이기는 척 집에 다녀오기는 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퇴사 후 일주일은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주 편안했다. 먹고 토하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먹는 양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먹는 양이 늘어나자 체중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고 그 두려움이 체중계의 숫자로 확인되는 순간,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일주일간 너무 편안하게 지냈던 탓일까? 나을 수 있다고 자만했던 탓일까? 그 어느때보다 심하게 토하고 그 어느때보다 심하게 절망스러웠다.
‘나는 도대체 왜 직장까지 그만뒀나‘
‘나는 이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인가’
‘나는 나을 수 없구나.‘
변기 앞에서 울고 있을 때 마침 도착한 엄마의 카톡.
딸! 집에는 언제와? 맛있는 거 해줄게.
엉엉 울면서 답장을 보냈다
.“내일 갈게! 엄마!”
집에 가서도 별로 나아진 것은 없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먹기 시작해서 자기 직전까지 먹었다. 빵과 과자를 배부르게 먹고 엄마가 해주는 삼시 세끼도 모두 챙겨 먹었다. 숨도 못 쉴정도로 못 먹겠다 싶을 때까지 먹다가 배가 조금이라도 꺼져서 숨 쉴수 있는 상태가 되면 또 먹었다. 식단조절 해야한다고 탄수화물에 벌벌 떨면서 밥 없이 반찬만 먹던 딸이, 그 반찬도 휴대용 저울을 집까지 들고 와서 양을 재서 먹던 딸이 갑자기 빵, 떡, 면, 과자 등을 쉴새 없이 먹는 모습을 보자 엄마는 당황했다.
“너 그런거 안먹지 않았냐?”
“엄마 나 아파. 이제 먹어야 돼.”
그리고 엄마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극단적인 식단 조절을 하던 중에 외식하러 식당에 가서도 내가 저울을 들고 다니면서 음식 양을 재먹는 미친 짓을 할 때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나를 지켜봐주었던 것처럼 엄마는 이번에도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작년 겨울 엄마가 직접 담근 김치, 엄마와 같이 장을 보러 가서 저녁 메뉴로 결정한 닭 볶음탕, 간을 세게하지 않는 엄마의 심심한 된장찌개, 시판소스를 이용하지만 손맛이 들어간 동생의 주력 메뉴인 토마토 스파게티까지. 배불러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는 토할 수 없었다. 아니 토해내기 싫었다. 그래서 참았다. 역류하는 음식을 삼키고 또 삼키면서.
집 밥은 힘이 세다. 사랑하는 사람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직접 장을 보고 재료를 썰고 간을 맞추며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변기에 의미없이 흘려보낼 순 없었다. 엄마의 음식은 토할 수 없었다. 계획했던 이틀이 지나고 이틀이 더 지나서 혼자만의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음식을 많이 먹지만 토해내지는 않는다. 그리고 4일만에 10키로가 쪘다. 믿을 수 없겠지만 진짜다. 집 밥은 힘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