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의 첫 튜터, 제나
바이킹에는 어른들을 위한 무료 교육 프로그램인 ‘Adult Learning Program’이 있다. 그 안에는 영어를 가르치는 ESL 과정도 포함되어 있었고, 대도시에서는 유료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을에서는 1:1 튜터링이 무료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기회를 잡았다.
남편은 이미 그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었고, 그를 가르치던 튜터 제나를 추천해 주었다. 나는 곧바로 연락을 취했고, 다음 날 FCSS(Family and Community Support Services) 센터에서 제나를 처음 만났다. 간단한 인사와 소개가 오갔고, 제나는 웃으며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첫 만남부터 묘하게 따뜻했다.
제나는 아들 셋을 키우는 엄마였다. 남편을 사고로 잃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으며, 그마저도 바이킹에 정착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녀의 삶은 굴곡 그 자체였다. 원주민 사회에서 태어나 타운의 노부부에게 입양되었고, 입양가정에서의 갈등 끝에 독립해 결혼했지만,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을 겪었다. 어렵게 얻은 자녀들과 다시 삶을 이어가던 중 재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마저 기차 사고로 잃었다. 하지만 그 모든 슬픔에도 불구하고 제나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다. 교회에서도 다시 만나며 공통의 접점이 늘어났고, 함께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도시로 나가기도 했다. 영어로 진행되는 공연은 처음엔 너무 낯설고 지루했지만, 제나와 함께라면 웃고 즐길 수 있었다. 그녀 덕분에 나는 파운드핏, 요가, 탭댄스 같은 프로그램도 접하게 되었고, 시골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가 찾아왔다. 모든 활동이 중단되었고, 튜터링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그때 제나는 온라인 데이팅 앱을 통해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온타리오에 사는 그녀와 매일 영상통화를 하며 설레어했고, 나에게도 소개해 주었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내 말에 제나는 소녀처럼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온타리오로 떠났고, 며칠 뒤엔 여자친구와 함께 다시 돌아왔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제나는 달라졌다. 수업은 자주 취소되었고, 약속도 흐지부지됐다. 처음엔 그저 그녀의 연애를 응원했지만, 반복되는 취소에 마음 한켠이 서운했다. 결국 제나는 이곳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지역 교회로 옮겼고, 튜터 일을 그만둔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을 떠났다. 떠나기 전 그녀는 “우린 여전히 친구야. 언제든 연락해”라고 말했지만, 그 이후 소식은 끊겼다.
제나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특별한 사람이다. 짧지만 강렬했던 인연, 그리고 나에게 이곳의 문화와 생활을 알려주었던 첫 번째 친구.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그녀가 어디에서든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나는 지금도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