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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재능 있어! 있어...?

도무지 나를 모르겠다면 네 옆의 나를 믿어

by 정승혜 Mar 06. 2025


ep.6 너, 재능 있어! 있어...?


브런치 글 이미지 1

 

� 재쓰비 (JAESSBEE) - 너와의 모든 지금


음악과 함께 감상해 보세요 :)







'싱어송라이터'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붙이고 난 뒤, 나에게 의무가 생겼다. 음악을 만들고 만든 음악을 세상에 내놓기. 일 년에 한 곡은 내기로 했다. 나 스스로 약속했다.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힘든 일이 있다면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굳이 굳이 일을 벌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굳이 굳이"라는 말은 내 삶에 어떤 힌트와도 같았다. 내가 창작자로서 살아가는 데에 지금까지 나에게 확신을 주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저 "굳이 굳이"라는 말이었다. '굳이 굳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 건 몇 해 전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후였다.



  친하게 지내던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C 작가님이라고 알아?" '작가'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 직업은 글을 쓰는 작가였다. C 작가님은 쓰기도 하고, 그리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는 작가님이었다. 그러니까 작가라는 이름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작가님이었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작년에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셨어."라는 말. 인터넷에 이름을 검색해 보니 몇 달 전 갔던 전시의 작가님이었다. 심지어 너무 즐겁게 보고 왔던 전시였다. 동료는 전화기 너머 나에게 작가님이 하시는 워크숍에 함께 참여하지 않겠냐며 제안했다. 이제 막 EP를 만들기 시작했을 참이라, 창작욕구가 아주 뛰어나던 시기였는데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조건 그곳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렇게 잽싸게 OK를 외쳤고 작가님이 준비하는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참여했던 부분은 큰 전시에 속한 여러 개의 워크숍 중, 대중음악 워크숍이었다. C 작가님이 10년 동안 모았던 실연 사연으로 사진, 글, 사운드아트, 대중음악, 연극, 그림, 요가의 형태를 띤 작품을 대중에게 하나씩 참여형으로 공개하는 워크숍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이별을 예술로 승화한다는 컨셉이 매력적이었다. 나는 수천 개의 이별 사연 중 한 사연에 매료됐다. 다른 글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그 사연에 적혀있던 "내 신경계 곳곳에 아직도 네가 있어."라는 글만 내 기억에 아직도 생생히 남았다. 사람의 몸에서 보이거나 만져지는 속성을 벗어나 그보다 더 깊은 신경계에 헤어진 연인이 박혀있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이가 너무 많이 썩으면, 적어도 신경치료를 하기 전까지만이라도 병원에 오면 그나마 덜 아플 수 있다. 그런데 신경치료까지 하게 되는 날이면, 그건 정말이지 너무 큰 통증을 마주할 작정을 해야 한다. 썩은 충치 주변까지 모두 쇠기구로 갉아내고 깎아내야지 다시 새로운 살로 그곳을 채울 수 있다. 신경치료가 얼마나 아픈지 받아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분명 이를 쑤셨을 뿐인데 이가 아닌 뇌의 뒤쪽이 따끔한다거나 가끔은 발바닥까지 저릿한 통증이 일기도 한다. 내가 예상치 못하는 군데군데서 "나 여깄소." 묵직하게 툭 존재감을 말하는 신경세포와 전 연인과 있었던 일들이 일상에서 삐져나올 때 무력해지는 감정이 닮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신경계라는 곡을 만들었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나도 모르던 너의 작은 기억들이

너의 살결에 남아 나를 부를 때

웃으며 넘어가자 나도 그럴게

절대 의식하지 않을게


신경계 中





  그러니까 그 "굳이 굳이"의 법칙을 어떻게 알게 됐냐면, 같이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A 작가님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A 작가님은 사진작가이면서 미술작가로 활동하고 계셨다.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선배예술가였다.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우리팀은 서로 아주 많은 말들을 나눴다. 각자의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예술은 무엇인지, 성공은 무엇인지, 이별은 무엇인지. 이런 말들을 나누었다. 자연스레 나의 이야기도 꺼내놓기 시작했다. 원래 내 이야기를 남에게 쉽게 말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었지만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여러 밤을 지내다 보니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하나둘씩 풀어놓게 되었다. A 작가님은 나에게 여러 질문을 건넸다. 왜 음악을 하고 싶었는지. 내 음악이 참 좋다며, 얼마나 좋은지 아냐는 말까지. 예의상하는 말이겠거니 했는데 아니라고, 정말이라고. 그냥 내 감상평을 말할 뿐이라고 했다. 그날 들었던 칭찬은 나를 위한 말이 아닌 내 노래를 향한 칭찬이었다. 그래서인지 더 신뢰도 높은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떻게 음악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음악으로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께서 반대하셔서 대학을 갔고, 그냥 일단 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해요. 취업, 안정감, 노후 이런 것도 걱정이 되지만 그냥 나몰라라 하고 여기로 계속 왔다고 말했다. 사실 아직도 가족들은 나를 걱정한다고. 그 말에 이어서 아직까지도 이렇게 반응이 없는 거 보면, 아마 재능은 없는 것 같다고. 그러니 A 작가님은 “그게 재능 아니에요?"라며 내 말을 전면반박했다. "누가 옆에서 계속하지 말라고 했는데 굳이 굳이 계속하고 있는 것,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 되는 것 보면 그게 재능이 아닐까요?"라고. 나의 "굳이 굳이" 법칙은 이 날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사실 음악에 대한 확신과 불안은 아직까지도 나를 쥐고 흔든다. 동서 쪽에서 북동쪽,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얼마 전 친구를 만나서 비슷한 주제에 대해 말했다. 내가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자꾸 작아진다고. 그렇게 말하니까 "아니야. 난 귀신같이 알아본다니까! 재능 있는 사람들."



  너무 가까우면 시야가 뭉개지기 마련이니까. 무언가를 굳이 굳이 벌여서 하는 사람들과 시키지 않은 것들을 하면서 그 속에서 아프고 뒤틀리고 다시 펴지고 새로워지는 사람들의 말을 새겨듣고 싶어진다. 누군가에게는 비효율적 일지 모르고,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방법일지 모르겠지만. 나, 다시 굳이 굳이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진다. 자꾸 만들고 자꾸 내놓고 자꾸 나누고 싶어진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의 말을 아끼고 존중하는 방법은 내가 그 말을 진실로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시기를 헤매는 사람에게, 도무지 나를 모르겠다면 네 옆의 너를 아끼는 사람이 하는 말을 믿어보라고 전하고 싶다. 분명,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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