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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Apr 05. 2020

나는 오늘 봄을 선물 받았다.


먼지가 소복이 쌓인 필름 통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오래전에 찍어 동그란 플라스틱 통 안에 넣어두었던

눈처럼 쌓인 먼지들을 보면서 그저 오래되었다는 것만 짐작 할 수 있었다.


오늘 문득 수북이 쌓여 있는 필름을 세어 보였다.

총 10롤의 다 찍은 필름 그리고 문득 이 안에 들어 있는 추억들이 궁금했다.


스무 살 사진을 처음 배운 날

어두 컴컴한 암실 속에서 시큼 쿰쿰한 약품의 냄새를 뒤로하고

떨리는 손으로 필름을 감고 현상을 시작하던 날의 떨림

그렇게 사진에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필름 속에서 세상을 보았다.


에코백에 하나둘씩 담아 문을 열고 필름 속에

기억을 만나러 출발했다.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봄의 향기를 제대로 맡을 새도 없이

사람들과의 거리를 신경 쓰기 바빴고

얼굴은 하얀 마스크로 반쯤 가려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얼굴도

마음도 알 수 없었다.


사진관에는 수많은 사람의 필름들이 현상되어 봉투에 고이 담겨 있었다.

그 안에는 각자 소중한 이야기가 담겨 있으리라.


2시간쯤 흐른 뒤 필름을 찾으러 갔다.

10롤 중 2롤은 노출 부족이거나 무슨 연유인지 찍히지 않은 사진이었다.


밀착된 인화지 속 사진들을 보다

한 사진 속에 시선이 멈췄다.


봄이 있었다.

파란 하늘에 분홍의 꽃잎들이 너무나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너무나도 갖고 싶은 계절 바로 봄


사진 속의 봄은 언제쯤 인지 알진 못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서

손을 뻗어 만지고 싶었던 그 날의 기억이었다.


나는 오늘 봄을 선물 받았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반드시 찾아 올 눈부시도록 찬란한

우리의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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