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_어수리(moellendorffii) / 나만 가진 나
생루습 캘린더로 혜윰의 생각을 더 전해요. 달력을 캡쳐하거나 저장해서 쓰셔도 됩니다.
어수리는 미나리과의 풀로 미나리가 그러하듯 고유의 톡특한 향이 있어요. 생김새는 얼핏 곰취를 닮았는데 삶아놓으면 곤드레나물과 비슷하고, 무치면 시금치나물 같고, 맛은 한약향이 나는 당귀와 비슷해요. 산채는 사실 반찬으로 만들어 놓으면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들 때가 있는데요. 나물을 잘 모르는 사람도 어수리는 먹으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특유의 향 때문이에요. 한약재 내음과 비슷한 향은 누군가에겐 역한 거부감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삼삼한 다른 나물보다 특별하게 맛을 즐길 수 있는 매력이 되기도 합니다. 매년 봄철 많은 사람들이 어수리를 다시 찾게 되는 포인트죠.
여러분에게는 타인이 나를 기억하거나 연상케 하는 고유함이 있나요? 고유한 것들엔 생득적인 것도 있겠고 후천적으로 얻은 것도 있을 거예요. 생득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의 교집합에는 '취향'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취향도 유전적인 부분이 있단 걸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거든요.
"난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고 취향이란 게 없어!" 라고 생각하나요?
놓아버리지 마세요! 모두에게 생득적 취향, 선천적 고유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살아가면서 발견하느냐 아니냐의 차이. 그리고 성장하면서 더욱 나에게 맞는 취향을 찾아가고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점점 더 고유한 나를 만들어가는 길이라고요. 인생 전반적으로 천천히 느리게 만들어지는 대체불가능한 저만의 힘이요.
취향이라는 말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좋아하는 것들의 모임으로 떠올려보세요. 호, 불호를 파악하면 취향이 되고 나다움의 형상이 됩니다.
11월엔 입동(立冬)과 소설(小雪)이 있습니다. 보통의 수확 시기는 지났어요. 하지만 올해가 가기 전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것들도 있답니다. 내년의 수확을 위해서요.
"입동 전 송곳보리" 라는 속담 들어본 적 있나요? 추위에 강한 보리는 가을에 씨를 뿌리는데, 입동 전에는 싹이 송곳 길이만큼은 커야 겨우내 냉해를 입지 않고 건강하게 잘 클 수 있대요. 무사히 겨울을 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랄까요. 이듬해에 수확을 할 수 있게요.
늦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직 나다움을 수확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계속 수확에 대한 기대를 품고 키워볼 수 있어요. 이번 달에는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송곳만큼의 싹을 준비해봐요.
11월은 내년의 새로운 나를 수확하기 위한 파종의 달.